건강보험이 전국적으로 통합된 지 올해로 꼭 10주년이 됐습니다. 1977년 첫 도입 이후, 12년 만에 전 국민 건강보험 시대가 열리고, 11년 뒤인 2000년에 직장과 지역이 합쳐 하나의 건강보험으로 묶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아플 수 있으니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이 더 내고, 여유 없는 사람은 덜 내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게 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이 제도는 전 세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건강보험 재정적자 규모가 점점 늘면서, 곳간이 빌 날이 머지않았다는 걱정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이런 우려 속에서 나온 의료 민영화에 대한 사회적 논란과 갈등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만수씨는 평소에 앓던 허리 통증이 심해져 인근의 유명 ‘허리 전문’ 병원에 갔다가 황당한 일을 당했다. 건강보험은 취급하지 않으니 전액 본인 부담으로 치료를 받던가, 아니면 건강보험 환자를 받는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것이다. 접수창구에서 기다리던 환자들한테 물어보니 이름 꽤나 알려진 허리 병원들은 죄다 이런 식이란다. 이제 만수씨는 어디로 가야 할까?”
<의료사유화의 불편한 진실>에 나오는 미래의 불편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의료 사유화 움직임이 현실로 될 때, 이 이야기가 ‘불편한 진실’이 될 수 있음에 이 책은 주목합니다. 제주의대 박형근 교수와 경상의대 정백근 교수 등의 저자는 의료 공공성·건강 형평성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학자들입니다. 이들은 시장 중심의 의료체계가 가져올 피해가 시민들에게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외국 사례와 연구결과를 통해 살펴봅니다.
“영리병원의 원조인 미국, 태국 등에서는 일단 영리병원이 돈을 잘 벌어들인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과 태국에서 영리 병원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서민들이 체감하는 의료서비스 질은 전체적으로 나빠졌다. 태국의 경우, 일반 시민들이 이용하는 공공 병원에 견줘 민간 영리병원의 질은 월등하게 높았지만, 가격이 엄청나게 비쌀 뿐 아니라 공공 병원의 유능한 인력들이 자꾸 빠져나갔다. 미국의 경우는 영리 병원의 서비스 질이 오히려 비영리 병원보다 낮았다. 결국 개별 병원들은 수익이 늘어나 좋을지 모르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본다면 의료비 증가와 국민 건강 수준 악화라는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결국 영리화가 의료서비스의 ‘선진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가 근거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영리병원은 병원 특성과 관계없이 민간 비영리 혹은 공공 병원에 비해 행정관리 비용, 세금부담, 투자자 배당, 마케팅 등으로 의료비가 더 비쌀 수 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진료의 질 역시 예상만큼 좋아지지 않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실제 한국에 이러한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건강보험 제도 자체를 유지하기 어렵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필요한 만큼, 그 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누릴 권리가 있다.” 유엔 ‘세계인권선언’에 선포된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엄연히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인권규약 비준 국가입니다. 하지만 ‘의료 사유화’라는 망령이 떠돌고 있는 최근의 우리 사회는 이런 원칙과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