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등록: 2010.07.05 수정: 2014.11.10


월드컵은 벌써 4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월드컵은 우리나라가 원정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하면서 아시아의 저력을 보여주었었지요. 아쉽게도 16강에 오르진 못했지만 세계에, 그리고 우리에게 이름을 알린 나라들도 있습니다. 북한과 함께 죽음의 조에 배치되었던 코트디부아르도 그런 나라 중 하나이죠.

 


사실 코트디부아르는 축구 팬들에게는 생소한 나라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프리미어리그에서 에이스급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디디에 드록바(맞춤법에 맞는 표기법은 드로그바입니다만, 자장면이 짜장면이듯 드록바라는 표기가 더 호감이 가는걸요)의 나라가 바로 코트디부아르이기 때문입니다. 코트디부아르의 다른 축구 선수들과 구분되는 명성을 가진 드록바가 있기 때문에 일부 축구 팬들은 코트디부아르를 '드록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게다가 드록국, 그러니까 코트디부아르는 월드컵에 출전한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첫 출전은 2006년 독일월드컵 본선으로 당시에도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었지만, 건국 이래 첫 출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감격스러워 했었지요. 그리고 이 감격은 당시 코트디부아르 내에서 벌어지고 있던 내전을 종식하는데 원동력이 됩니다.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드록바]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그 나라 사람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과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감격과, 그리고 디디에 드록바라는 위대한 축구 선수 덕분에 내전이 종식되었다고 해야 겠지요.


코트디부아르는 프랑스 식민지였다가 1960년대에 독립했지만, 2002년부터 일어난 내전으로 수만 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을 겪고 있었습니다. 내전의 원인은 '초콜릿'에 있었습니다. 북부의 이슬람 세력은 정부를 장악한 남부의 기독교 세력이 코코아를 수출한 이익을 갈취하고 있다며 구데타를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이때부터 내전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지요.


전세계  코코아 생산량의 2/3를 생산하는 서아프리카 중에서도 코트디부아르는 전세계 코코아 생산량의 40%를 생산하는, 명실상부 세계 최대 코코아 생산국입니다. 때문에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가 내전 중인 양 쪽의 전쟁 자금을 대는데 사용되면서 '피의 초콜릿'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실제로 분단 이야기까지 거론되었던 코트디부아르의 내전은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으로 종식의 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때는 2005년 10월. 디디에 드록바가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 예선에 출전하여 본선 티켓을 획득한 뒤 생중계 TV 인터뷰를 요청 받게 됩니다. 이 자리에서 드록바는 무릎을 꿇고 호소합니다.


일주일, 단 일주일 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추자고.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영웅, '검은 예수'라 불리는 디디에 드록바 (출처=로이터연합)



자국의, 아니 아프리카의 축구 영웅 드록바의 호소는 정부군과 반군을 감동시켰고, 거짓말처럼 코트디부아르에서는 내전 이후 최초로 총성이 울리지 않는 일주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년 뒤인 2007년, 내전은 종식되었습니다.


신도 포기한 것 같던 나라 코트디부아르의 내전을 종식시킨 드록바는 그후로 드록신(神)이라 불리게 됩니다. 물론 탁월한 축구선수들에게 '신'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관행(?)은 축구 팬들 사이에는 이미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드록바는 실력에 기적을 일으켰다는 의미까지 더해 '신'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축구 팬들은 또다른 별명을 선물하지요. 바로 '검은 예수'입니다.


[어린이가 살기 힘든 나라]


드록바는 그후로 꾸준한 자선 활동을 전개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자선 협회를 설립하여 자신의 재산과 첼시 구단주의 도움으로 아프리카 지역에 의약품 등 생필품과 유소년 시설 등을 지원하거나, 60억에 달하는 재산을 자국의 종합병원 건설 자금으로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드록바의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코트디부아르는 여전히 살아가기 힘든 나라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나라의 메인 아이템인 카카오와 커피는 대부분의 거래가 대기업 중심으로 발생하고 생산자에게  가장 불합리한 가격 구조를 가진 아이템이기 때문이지요.


지난해 한겨레와 세이브더칠드런이 함께 했던 캠페인에 따르면, 소규모 카카오 재배 농부들은 한해 평균 30~110달러 정도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가난이 대물림될 수 밖에 없고, 결국 코트디부아르는 특히 어린이가 살아 가기 힘든 나라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코트디부아르에서 카카오 농장의 위험한 노동 환경에 노출된 어린이는 20만명. 심지어 그중 대다수가 주변의 가난한 국가로부터 불법 인신매매로 팔려온 아이들입니다. 하루 12시간을 일하며, 농장에서 일하는 어린이 66%에게는 학교란 아예 꿈에도 꿀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희망을 품은 초콜릿]


이런 코트디부아르의 아이들의 손에 연필을 쥐어 주는 것,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도록 하는 것, 이러한 디디에 드록바의 꿈을 이루는 방법이 바로 우리 안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공정무역이 그것입니다.


합법적으로 고용된 노동자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임금을 받으며,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정당한 근무시간만큼 일할 수 있는 가격으로 카카오가 판매되면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생산자의 안녕을 고민한 무역 접근법이 바로 공정무역입니다.


하지만 공정무역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조차 공정무역이 코트디부아르같은 거대 코코아 생산국의 삶을 바꾸는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공정무역으로 소화될 수 있는 물량은 여전히 아주 적은 양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작은 단체들에 의해 공정무역으로 거래되는 양으로는 전세계의 40%을  생산해 내는 코트디부아르에게 행복을 주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코트디부아르에게 '희망'이 되지 않았을까요? 행복해 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힌트 말이지요.


그리고 이 희망을 향한 힌트를 네슬레가 잡았습니다. 작년 말, 네슬레는 자사의 대표적인 초콜릿 과자인 키캣(Kit Kat) 생산을 위한 원료를 공정무역으로 수입할 것임을 밝혔습니다. 정당하게 수입하고 당당하게 공정무역 인증을 받아 판매할 것이라고 발표했지요. 실제로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올해부터 공정무역 마크가 박힌 키캣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공정무역 마크가 부착된 키캣 (출처=네슬레)



이러한 네슬레의 선택은 수천명의 코트디부아르 카카오 농부들의 삶을 바꾸게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게다가 네슬레는 공정무역을 위해 Kavokiva라는 코코아 협동조합과 거래하게 되는데, 조합을 통해 농부들의 교육과 보건, 환경 등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을 프리미엄 형태로 지원함으로써 공정무역이 가져올 변화에 속도를 붙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조합은 이러한 프리미엄의 상당 금액을 농부의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한 서비스에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지요.


[죽이는 초콜릿 vs. 살리는 초콜릿]


코트디부아르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농부들의 피와 땀이 어린 카카오는 전쟁의 자금으로 사용되어 그 결과로 내전이 시작된 2002년 38%였던 빈곤 수준이 내전이 끝난 직후인 2008년에는 49%까지 증가했습니다.


영국 내 최고 판매를 기록하고 있는 키캣이 공정무역 인증을 받으면서, 올해에만 최소한 4,300톤의 코코아가 키캣에 제공될 것으로 보입니다. 네슬레는 코코아를 제공하는 코트디부아르의 조합에게는 1톤당 150달러의 프리미엄을, 설탕을 제공하는 벨리즈의 설탕 농가에게는 지역 사회와 농업 기술 개량을 위해 1톤 당 60달러의 프리미엄을 약속했습니다.


어떤 초콜릿은 사람을 빈곤으로 내몰고 희망을 거세하게 합니다. 어떤 초콜릿은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주고 자신의 삶을 설계하며 살아가게 합니다. 지금 당신의 손에 들려 있는 초콜릿은 어떤 초콜릿인가요?


디디에 드록바가 꾸는 꿈은 멀리 있는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김지예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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