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등록: 2010.06.18 수정: 2014.11.10


“상반기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OECD에서 가장 높은 수준…(중략) 민간투자도 소비도 진작되고 있습니다. 아직 체감하기는 이르지만 청년 일자리도 드디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6월 14일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본격적인 경기회복기를 맞아 펼칠 정책에 대한 언급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우리 경제의 청신호와는 거꾸로 삶의 질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삶의 질 지수’를 30년째 진행해 오고 있는 ‘인터내셔널 리빙’의 올 초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삶의 질 순위는 세계 194개국 중 42위로, 지난해 32위에서 10계단 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왜 경제성장이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걸까요? 이런 의문에 대해 스위스 최고의 경제윤리학자로 알려진 페티 울리히는 <신자유주의시대 경제윤리>에서 경쟁과 이에 근거한 효율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경제에 대한 윤리적 성찰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스위스에서 옷감이 재단된다. 재단된 옷감은 화물트럭에 실려 포르투갈로 간다. 그곳에서 바지로 꿰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바지는 다시 스위스에서 판매된다. 일은 바이어의 계획대로 진행된다. 바이어는 화물트럭 한 대에 실리는 물량당 2만 프랑을 절약하게 된다. 왜냐하면 포르투갈 재봉사의 임금은 스위스 재봉사의 임금보다 더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대신 화물트럭은 1,600리터의 디젤을 이산화탄소, 유해한 배기가스, 매연으로 바꾸어놓는다. 이로 인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수면장애를 겪게 된다. 그것도 아무런 배상도 받지 못한 채 말이다.”


이 사례를 통해 저자는 경제적 합리성이 생태적 효율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경제적 합리성만을 강조할 경우 어디에선가 이성은 정지되고 만다는 판단을 합니다. 이런 결과는 결국에는 실업, 비정규직 증가, 소득격차 등의 문제로 이어지게 됩니다.


여기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원하는 경제란 도대체 어떤 경제인가. 인간이 주인이 되는, 인간을 위한 경제인가, 아니면 인간을 하나의 부속품처럼 여기는 경제인가?” 그리고 이렇게 답합니다. “인간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는 효율성 추구는 지양해야 할 일이다.”


저자는 사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경제의 양적 성장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발전된 경제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일까? 경제가 인간이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일까? 등과 같은 질문 속에서 인간의 삶이 유익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경제적 진보를 원하는 것이다.”


울리히는 “자신이 시장경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다만 인간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는 야만한 시장경제를 내적으로 개혁해 문명화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는 또 “경제윤리가 기능할 수 있다”며 “시장경제 안에서 시민과 기업, 국가가 각자의 윤리적 책임을 다할 것”을 권합니다.


자유 시장의 신화는 흔들리고 있습니다. 2008년의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는 스스로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세계는 여전히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성찰이 진행 중인 가운데 울리히의 권고를 곱씹게 됩니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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