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착한경제] SBS, 국민과 흥정을 시작하다

HERI 2014. 11. 10
조회수 3941

등록: 2010.06.08 수정: 2014.11.10

지구촌의 축제 월드컵이 2010년 6월 11일 밤 11시(한국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31일간의 일정으로 개최된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1986년 멕시코 대회를 시작으로 7회 연속 본선에 진출했으며, 현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도착해 막바지 훈련에 몰두하고 있다.


그런데, 과거 월드컵과 달리 이번 남아공월드컵 기간 중에는 시청 앞 광장이나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거리 응원을 보기 어려울 것 같다. 뿐만 아니다. 동네 인근 호프집에서 편한 이웃 친구와 함께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즐기면서 월드컵을 즐기기도 어려울 것 같다. 바로 월드컵 단독중계를 선언한 SBS의 지침 때문이다.


SBS는 공공시설이나 호텔을 비롯한 영리시설 및 음식점 등에서 월드컵 경기 중계 시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FIFA가 강조하고 있는 PV(Public View)권리를 주장하면서 과거와 같이 행해지던 응원문화의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되도록 집에서 가족과 함께 유료 스포츠채널을 통해 월드컵 경기를 보라는 압력으로도 들리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SBS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활성화 된 대한민국 고유의 응원문화까지 통제하려는 이유는 뭘까? 바로, 독점계약으로 인한 비용부담에 그 해답이 있다.


지난 2006년 7월 SBS는 지상파 방송 3사 사장이 모여 합의한 ‘올림픽·월드컵 특별위원회를 통한 중계권 협상’의 원칙을 깨고, 자회사인 SBS 인터내셔널을 통해 2010~2014년 동계 올림픽, 2012~2016년 하계 올림픽, 2010~2014년 월드컵을 독점 계약했다. 그러다보니, SBS가 지불한 중계권료 역시 과도해진 것이 사실이다. SBS가 지불한 4개 올림픽 중계권료는 총 7250만 달러, 2개 월드컵 중계권료는 1억4000만 달러다. 올림픽 중계권료는 방송 3사가 제시한 금액보다 950만 달러 높아진 금액이다. 참고로, 한국이 FIFA에 지급한 2002·2006년 월드컵 중계권료는 6000만 달러로 이번 남아공 월드컵 중계권료 6,500만 달러보다 적었다.


독점계약을 성사시킨 SBS는 바로 다음 달부터 MBC, KBS와 협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나머지 두 지상파 방송사가 이전 합의된 비용을 제외한 독점 계약으로 인해 추가된 비용 부담을 회피하면서 계약은 결렬됐다. 결국 SBS는 2010년 2월 밴쿠버 올림픽 단독중계에 들어갔다. 우리나라 방송사에 전에 없던 올림픽 독점중계가 현실화 된 것이다. 사실 SBS의 올림픽 단독중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기대보다는 우려가 많았다. 지상파 방송사 가운데 가장 후발주자이자, 올림픽 등 스포츠방송에 대한 경험 역시 풍부하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외의 성공으로 드러났다. 대한민국 선수단이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리면서, SBS의 인지도를 크게 향상시켰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 중계협상은 밴쿠버의 성공으로 인해 이미 결론 나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다만, 마지막까지 지상파 방송 3사간 타협이라는 작은 이변을 기대했던 이유는 올림픽과 비교하기 어려운 월드컵의 중계권료 때문이었다. 월드컵 1개 대회 중계권료가 올림픽 4개 대회 중계권료와 맞먹는 수준인 만큼 극적인 타협을 기대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미 SBS는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자체 비즈니스 모델을 준비하고 있었고, 독점계약으로 인해 칼자루를 넘겨 준 FIFA와의 관계 악화 역시 부담이었을테다. 길거리 응원 등을 대한민국 고유의 문화로 규정하고 충분히 협상할 수 있었던 공동협상 카드를 버린 이상 FIFA가 싫어하고 민감해하는 부분을 건드릴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지난 주 SBS는 자체 비즈니스 모델 중 하나를 간접적으로나마 공표했다. 공공시설이나 상업시설에서 월드컵 경기를 내보낼 경우, 개별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보기 위해 모인 영국의 PUB을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영국의 PUB문화는 비싼 시청료로 인해 가정에서 축구 경기를 즐기지 못한 탓도 없진 않지만, 그것 보다는 영국인들 특유의 축구를 즐기는 방식으로 보는 시각이 옳다. 시작은 비싼 시청료가 원인이 되었을지언정 같은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끼리 맥주를 마시면서 호탕한 한 때를 보내는 곳이 PUB 문화의 주된 배경이기 때문이다.


또한, 스포츠 중계권료가 비싼 영국이라 할지라도 이는 프리미어리그에 국한되는 이야기다. 오히려 올림픽, 월드컵과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는 인구의 95% 이상이 볼 수 있는 무료 지상파 방송에 중계권을 우선적으로 보장한다. 현재, 이 기준을 충족하는 영국 채널은 공영방송인 BBC1, BBC2, ITV1, 채널4다. 참고로, 이번 남아공월드컵은 BBC와 ITV 방송사가 공동 중계한다.


이번 SBS 발표에도 불구하고, 호프집이나 대형 레스토랑에서 월드컵 중계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월드컵 중계방송은 수많은 가게와 거리에 울려 퍼질 것이다. 마치 크리스마스 이브날 저녁에 캐럴이 울려 퍼지듯 환호와 탄식도 끊이질 않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엔 크리스마스 기분에 아무 생각 없이 받아 들었던 가격표 바뀐 메뉴판도 함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가정집 역시 안전지대는 아니다. 최근 퇴근길에 평소엔 잘 보지도 않던 아파트 게시판을 훑어보다 황당한 게시물을 봤다. 지역 케이블 TV 공급 회사가 붙여놓은 요금 관련 공고문이었다. 요지는 지상파 방송사가 운영하는 유료 스포츠채널을 보려면 1만 원을 내란다. 올 초만 해도 유료 스포츠채널 시청에 내던 돈은 4천원이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과 월드컵을 거치면서 150%가 오른 셈이다. 대한민국 선수단이 너무 잘해도 걱정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서재교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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