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등록: 2010.06.04 수정: 2014.11.10


정말 놀랍고, 무서운 "민심"이었습니다. 설마설마하고, 제발제발했었는데...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가 바뀌지 않은 것은, 그것마저 행여 야당세력이 승리에 만취하여 자신의 잘못과 한계를 무시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한, 민초들의 지혜였다고 믿습니다.


안희정 충남지사 당선자가 2일 밤 충남 천안시 신방동 선거사무실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천안/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번 선거결과를 두고 많은 이들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정권의 오만함에 대한 심판"이라고 설명합니다. 아마 그럴 것입니다. 열거하기조차 힘들고, 입에 올리기조차 부끄러운 일들이 지난 2-3년간 계속되었고, 선거가 끝난 지금까지도 쉽게 바뀔 태세가 아닐 정도이니까요. 정말 지독하고, 끔찍하다는 생각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이들을 "촛불"에 이어, "투표용지"로 징치하려 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인천시장, 강원지사, 충남지사, 경남지사, 광주시장, 대전시장, 제주지사가 바뀌었고, "진보"를 표방한 교육감들이 서울과 경기, 강원, 전북, 전남, 광주에서 탄생했습니다. 수많은 기초자치단체장들의 색깔이 바뀌었고, 지방의회와 교육의회의 권력지도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대통령이 그대로이고, 한나라당이 여전히 다수당이지만, "아래로부터의 변화", "지역으로부터의 변화"가 있을 것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 그런데, 그것은 무슨 변화이며, 어떤 변화일까요?


저는 지난 5월 4일 발행된 에서, 지역 싱크탱크들의 실태를 다룬 바 있습니다. 지역이 직면한 문제들을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는 지역 정책역량의 현실을 살펴 보고 내린 결론은 "자원 부족과 불균형"이 심각하다는 것이었고, 그것에 대한 해법은 결국 "두뇌집단간의 제도화된 협력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새로이 자치단체장이 되신 분들께 꼭 권하고자 하는 바 몇가지를 감히 적어 봅니다.


자신의 "손발"이 되어줄 사람을 찾으려는 노력만큼, 아니 그보다 몇배의 노력으로 지역경제의 활성화와 지역사회의 혁신을 도모할 수 있는 "머리"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공무원들의 업무보고가 시작되고, 선거공신들에 대한 '논공행상'이 시작되기 전에, 목표와 원칙을 분명히 다잡으시길 부탁드립니다. "반MB"는 정치적 변화의 '시작'일 수는 있어도, 그 '끝'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선 광역자치단체 산하의 지방연구원들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인천발전연구원 64억원, 강원발전연구원 84억원, 충북개발연구원 59억원, 충남발전연구원 68억원, 경남발전연구원  135억원.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은 무려 208억원, 경기개발연구원 160억원의 한해 예산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개발'이나 '발전' 패러다임에 갖혀, 국책사업 유치를 위한 제안서 작성에 급급하다는 혹평을 받고 있는 이들 연구원들을 냉철하게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곳이 아님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행여 그곳들을 그저 '논공행상'에 딱 좋은 곳 정도로 여기시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자신의 비전과 가치를, 정책의 형태로 고민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지역인재들이 모여 있는 곳, 그렇게 만들어 내기 위한 식견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길 바랍니다. 공무원들을 위한 보고서가 아니라, 시민들을 위한 보고서가 만들어진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방연구원이 지역 정책자원을 독점하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지역의 정책지식 생태계는, 관료와 지방연구원, 대학,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와 시민 한명한명에 이르기까지 넓고, 풍성해져야 할 것입니다. 이미 선거과정에서 후보단일화, 연합정부의 구성, 공동선거운동본부 등을 통해 협력과 조정의 값진 경험을 하신만큼, 그 능력을 '정책생산 구조'에서도 멋지게 발휘하시길 바랍니다. 겉만 번지르한, 껍데기뿐인 위원회들이 아니라, 훨씬더 제도화된 협력의 구조를 만드시길 바랍니다. 이를 통해 시도연구원은  자원은 나누되, 지혜는 모으는 역할을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비단 한 지역 내에서의 협력과 경쟁 구조는 아닐 것입니다. 지역의 경계를 넘어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서울에 기반을 둔 독립 민간싱크탱크들, 전국정당의 연구소들이 함께 제안과 검증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인천발전연구원-강원발전연구원-충남발전연구원-경남발전연구원이 '균형발전과 지역혁신, 시민참여를 위한 공동연구'를 구상해볼 수는 없을까요?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대형국책사업을 둘러싼 경쟁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위한 시도연구원간, 그리고 지역 시민사회와의 협력. 만약 이런 구상이 실현된다면, 결코 '자원의 부족과 불균형'을 걱정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미 희망제작소가 기초자치단체 차원의 컨설팅 사업을 많이 해오고 있고, 또 지방자치단체장 후보들과 정책협약을 맺어, 당선 이후 정책협력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사회디자인연구소가 관악구나 인천시 선거과정에 중요한 정책제안자였다는 사실 또한 주목할만합니다. 선거 승리를 위한 '정책컨설팅'이 아니라, '승리 이후'를 위한 정책경쟁과 협력의 구조를 만들어 내시길 바랍니다.개별 기초자치단체의 힘만으로 '혁신'을 성취해내긴 참으로 힘들 것입니다. 중앙정부의 국책사업에 의존하려 하고, 관성적 사업계획만 반복하려 하는 것은, 현재 조건에서 어쩌면 당연한 결론일 것입니다. 몸값은 높고, 몸은 무거운 곳들이 아니라, 현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두뇌집단을 '발굴'하고, 그들을 '선택'하는 정도의 노력과 결단은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자신의 심중을 누구보다 잘 읽어내는 '손발'을 가지셨다면, 그것은 정말 행운이실 것입니다. 하지만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라는 말이 있듯, '머리'와 '손발'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 것입니다. 부디 자신의 '손발'이 되 줄 이들을 찾으시는 노력 이상으로, 지역이 처한 현실을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는 정책역량, 그것을 갖춘 두뇌집단을 찾으시고, 만들어가시길 부탁드립니다.  이토록 무서운 민심의 힘이, 바로 몇년전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음을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민심에 반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힘은 선거를 통해 충분히 확인하였습니다. 이제 우리가 절실하게 바라는 것은 민심을 반영한 '정책'을 만들어내는 힘일 것입니다. 


중앙정부의 국책사업에 의존하려 하고, 관성적 사업계획만 반복하려 하는 것은, 현재 조건에서 어쩌면 당연한 결론일 것입니다. 몸값은 높고, 몸은 무거운 곳들이 아니라, 현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두뇌집단을 '발굴'하고, 그들을 '선택'하는 정도의 노력과 결단은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홍일표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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