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등록: 2011.03.23 수정: 2014.11.12


“초과이익공유제라는… 공산주의인 지 사회주의인지… 경제학 교과서에도 없는….” 회장님의 입에서 나온 언어에 실망을 거둘 수 없었습니다. 그 내용이 ‘동반성장’과 ‘사회책임경영’ 같은 지금 한국 기업의 당면과제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도 실망의 큰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큰 실망은, 요즘 젊은이들은 좀처럼 떠올리지 않는 ‘공산주의’라는 낡은 이념을 꺼내들어 동반성장 노력을 비판하려 했다는 데서 왔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회장님의 시간은, 이제 지나가고 말았다는 사실을.


스티브 잡스의 ‘경영’과 이건희 회장의 ‘지배’


회장님의 삼성은 두 가지 문제에서 낡은 기업이 되고 말았습니다.


첫째는 지배구조 문제입니다. 회장님의 지배권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삼성인이 법정을 오갔습니다. 삼성은 안팎으로 가장 많은 법조인을 상대하는 한국 기업이 되고 말았습니다. 담배회사도 아닌 삼성이 이렇게 된 이유는 오직 하나, 얽히고설킨 지배구조였습니다. 법과 지분이 삼성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그런데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지분 0.6%만 가지고도 애플을 지키고 있습니다. 순환출자도, 복잡한 계열관계도 없습니다. 대신 그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투자자들의 입맛을 맞추고 설득하며 경영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나기도 했지만, 결국 돌아와 세계 최고 경영자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회장님이 ‘지분’이라는 안전판 뒤에서 삼성을 ‘지배’한다면, 잡스는 최전선에 서서 애플을 ‘경영’합니다. 그 앞에 삼성의 법정 공방은 너무나 초라하고 낡아 보입니다.


둘째는 비노조 경영 문제입니다. 가끔 외국 전문가들을 만나 삼성에 대해 설명하다가, 부끄러움에 턱 막히고 마는 곳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국제사회가 정한 경영원칙인 유엔글로벌콤팩트, 올해부터 발효한 국제표준 ISO26000 등 모든 사회책임경영(CSR) 관련 국제표준에서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언급합니다. 2011년 7월이면 한국 기업에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됩니다. 회사가 나서서 노조를 만들어 유지하는 비노조 경영은 어차피 끝납니다.


삼성에도 노조가 생길 것입니다. 시끄러워질 것입니다. 토론과 타협을 통한 경영에 익숙해져야 할 것입니다.


갤럭시S와 트위터에 어울리는 경영자는


이제 ‘지분’의 안전판 뒤에 숨지 않고도, 노조를 막아 직원들을 침묵하게 만들지 않고도 경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뒤처지게 됩니다. 삼성에도 위험 속에 온몸을 던져 경영하는, 그런 최고경영자가 필요한 시간이 됐습니다.


잡아야 할 화두가 많습니다. 소통의 정신을 구현할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중요합니다. 사회책임경영도 미래 화두입니다. 창조적 콘텐츠 개발 역시 그렇습니다. 그러나 회장님의 화두는 아닙니다. 갤럭시S와 트위터는, 위험에 몸을 맡긴 미래의 경영자가 만들고 사용해야 어울리는 제품입니다.


시간을 막아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간을 헉헉대며 뒤쫓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간을 앞서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글로벌 기업의 경영자는, 시간을 앞서가야 합니다. 그게 어려우면, 적어도 헉헉대면서 따라가기라도 해야 합니다.


처자식 빼고 다 바꾸고, 삼성 직원 모두 저녁회식 하지 말고 오후 4시에 퇴근해서 자기계발 하라며 ‘신경영’을 외쳤을 때, 회장님은 시간을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스웨덴 발렌베리를 방문하고 사회공헌활동을 강조하고 창조경영을 내세웠을 때, 회장님은 시간을 뒤쫓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과이익공유제’라는 단어를 듣고 공산주의를 떠올린 지금, 회장님은 시간을 막아서고 있습니다.


시간을 막아서는 경영자는, 흙탕물을 튀기며 물속의 다른 물고기들을 긴장시키는 메기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임직원들이 조개처럼 눈치를 보며 단단한 껍데기 안으로 숨도록 만들 뿐입니다. 사회의 뒷다리를 잡는 리더가 경영하는 조직은, 긴장과 생기를 잃고 관료화하기 마련입니다.


회장님, 이제 삼성을 내려놓으실 시간이 됐습니다.


초과이익공유제, 진정한 토론을 원한다면


회장님이 ‘발언이 진의가 아니었다'며 한발 물러섰다고 김순택 삼성 미래전략실장은 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초과이익공유제라는 제도는, 토론해 볼 만합니다.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습니다. 오랜 경험을 지닌 경영자로서, 회장님의 의견도 경청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왜 회장님의 발언은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건전한 토론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요? 그것 역시 삼성을 내려놓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삼성은 제가 이 글을 실은 <한겨레>에도 거액의 광고를 집행하기도 하고 하지 않기도 하면서 경영의 목줄을 쥐고 흔듭니다. 다른 언론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정운찬 전 총리가 이끌던 동반성장위원회 역시 삼성이 얼마나 참여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부도 언론도 비영리단체도, 삼성의 눈치를 안 보고는 견디기 힘듭니다. 그러다 보니 모두들 회장님 말씀을 받아쓰기에 바쁠 뿐, 토론이 성사되지 않습니다.


관자놀이에 총구를 들이댄 채 “초과이익공유제가 공산주의냐 사회주의냐"를 물어서는, 제대로 된 토론이 이루어지기 힘듭니다. 회장님의 한 마디를 모든 언론이 대서특필하는 이유는, 그 총 때문입니다.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그 총 때문입니다. 지혜가 담긴 토론을 원하신다면, 한국사회의 ‘메기’가 되고자 하신다면, 그 총을 먼저 내려놓으셔야 합니다. 삼성을 내려놓으셔야합니다.


이건희 회장님, 이제 삼성을 내려놓으실 시간이 됐습니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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