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등록: 2011.03.01 수정: 2014.11.12


무급휴직중이던 쌍용자동차 노동자가 또 사망했습니다. 부인이 2010년 4월 자살한 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분입니다. 아이 두 명을 남기고 돌아가셔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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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465569.html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465544.html


" 해고는 살인이다." 쌍용차 노조의 파업 당시, 어느 플래카드에 쓰여 있던 글입니다. 그 때 저는 사실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습니다. 해고가 사람에게 매우 큰 충격을 주는 사건이기는 하지만, 과연 살인에 버금가는 일일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은 현재 사회에서 말이지요.


그런데 정말 해고는 살인이었던 모양입니다. 2009년 4월 이후 쌍용차 노동자 또는 가족 중 자살하거나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자꾸 생깁니다. 뇌출혈과 심근경색 등 심리적 스트레스라 원인이 된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는 사망도 이어집니다. 벌써 열 명 넘는 노동자와 가족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쌍용자동차의 해고가 도화선이 되어, 이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 셈입니다.


지난 주말 이 뉴스를 접하고, 충격에 정신을 가다듬기 힘들었습니다. 흔히 투자자나 기업분석가들에게 기업은 그저 재무적 숫자의 덩어리로만 여겨지곤 합니다. 그런데 그 숫자 뒤에는 이렇게, 사람의 삶이 들어 있습니다. 때로는 재무적 성과의 작은 개선이 이렇게, 매우 비극적인 방식으로 사람의 삶을 집단적으로 파괴하기도 합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만요.


해고가 살인인 사회. 그런데 이 사회는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요? 해고하지 않으면 되는 것일까요? 모든 사람이 정규직이고, 그 안정성이 절대로 파괴되지 않는 경영이 가능하다면 괜찮겠지만,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기업은 점점 더 심한 경쟁에 내몰립니다. 구매자는 점점 더 강한 비용절감 압력을 행사합니다. 늘 기업은 성장하고 쇠퇴하고 파산하기도 하고 새로 태어나기도 합니다. 이런 불안정성이 상수인 사회에서, 살인을 막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해답의 실마리를 '정규직 고용 안정성 강화'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서 찾는, 고용 안정성 강화 담론이 진보적 학계/정치인들의 주요 논리인 것 같습니다. 거꾸로 주류 경제학자/친기업 싱크탱크에서는 '모든 사람이 비정규직화되고 노동시장이 100% 유연해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 두 가지 담론에서 모두 부족함을 느낍니다. 고용 안정성 담론은 정태적입니다. 현재 고용되어 있는 사람들의 고용을 지킬 수는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대책이 부족합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역시 비슷한 맥락입니다. 기업이 주주의 이익을 주로 고려한 경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런 접근은 결국 잘 되더라도 일자리의 수를 줄이게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연한 노동시장 담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개인의 삶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본적 인권 및 생존권, 복지, 재교육 기회가 없는 약탈적 노동시장에 그대로 내던져지는 실업자/해고자의 처지는 고려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이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처지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답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렵습니다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혹시 우리가 지나치게 일자리 중심, 생산 중심의 담론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일자리를 갖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충분한 복지가 제공되는 사회라면, 일자리를 옮길 수 있는 충분한 교육이 제공되는 사회라면, 그런 것이 받아들여지는 문화가 존재하는 사회라면, '해고는 살인'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라는 말을 당연한 듯이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답답함을 느낍니다.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가 아닙니다. 최고의 복지는 '일과 소득과 공공서비스'입니다. 일은 일자리와 다릅니다. 음악을 작곡하는 일, 지역의 노인을 돌보는 일, 무료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배포하는 일, 내 아이를 위해 한 끼 식사를 준비하는 등, 일자리와 연계되지 않은 일은 정말 많습니다.


기업이란, 일을 잘 조직하기 위해 만든 기구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일 자체이지요. 모든 것을 '고용'의 문제로 보는 시각은, 우리의 삶을 기존 체제 안에 옭아넣고 상상력을 옥죄입니다.


기업에 모든 복지를 거는 제도는 위험하기도 합니다. 미국이 그렇습니다. 일자리를 떠나면 일과 소득이 없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의료보험이나 연금 같은 서비스까지도 사실상 사라집니다. 복지의 개별 '일자리' 의존도가 높다 보니, 어느 기업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개인간 복지 격차가 매우 크기도 합니다.


기업은 명멸하고 노동시장은 유연한 사회. 그러나 개인에게는 충분한 복지와 재교육의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 그래서 기업은 상대적으로 높은 사회임금으로 인한 노동비용 절감 효과를 누리는 사회. 동시에 개인은 '일자리'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창조적이고 모험적인 시도를 마음껏 해볼 수 있는 사회. 이런 사회는 너무 먼 꿈처럼 느껴지시나요?


by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www.facebook.com/lee.wonjae.f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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