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등록: 2010.12.30 수정: 2014.11.12


올 한 해, 나는 '사회'(social)라는 단어에 매달렸다. 사실 이 단어는 올해 기업 경영의 최대 화두라고 부를 만하다. 올해 기업 경영을 하면서 이 단어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앞서가는 경영자라고 불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회관계망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사회책임경영, 사회적기업은 모두 '사회'를 앞세운 경영 현상이다.


어찌 보면 참 놀라운 일이다. 과거 기업은 '사회'라는 단어에 적대적이거나 관련 없는 것이라는 태도를 보이기 일쑤였다. 기업은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므로 효율성만 생각해야 하는데, '사회'에 대한 고려는 효율성을 저해하게 된다는 생각이 그 태도 밑에 깔려 있었다. 기업과 사회 사이에는 '제로섬 게임'만 존재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던 시기였다.


그런 편견은 이제 완전히 뒤집어진 듯하다. 최소한 2010년 세계적 경영 화두를 살펴보면 그렇다.


사회책임경영과 사회적기업의 대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회'는 역시 기업의 사회책임경영(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다. 기업이 당장의 재무적 성과 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도 함께 고려한 경영을 해야 장기적 경쟁력을 갖게 된다는 경영 정신이다.


일단 사회책임경영과 관련된 세계적 수준의 표준이 합의되어 완성되고 있다는 게 눈에 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국제표준인 ISO26000이 11월 발효됐다. 이런 표준의 기본이 되는 원칙 역시 확산되고 있다. 유엔글로벌콤팩트의 사회책임경영 10대 원칙에 동의하고 서명하는 기업과 기관은 한국에서 180개, 세계적으로 8천여개에 이른다.


또 지역적 수준의 사회책임경영 평가 기준도 만들어지고 있다. 한겨레경제연구소가 올해 처음 발표한 '동아시아 30'(East Asia 30)은 동아시아 맥락을 반영해 한국, 중국, 일본 기업을 사회적 책임 관점에서 공동 평가한 첫 시도다. 다우존스는 한국 사회책임경영 우수기업들을 모은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 한국판을 발표해 관심을 모으고 있기도 하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ISO26000 대응 전략을 수립하랴, 유엔글로벌콤팩트에 가입하랴, 동아시아 30과 다우존스 평가에 촉각을 곤두세우랴 바쁘다. 일부 앞서가는 기업들은 최고경영자가 나서서 사회책임경영 체계 마련에 시동을 걸고 있다.


두 번째 떠오르는 '사회'는 사회적기업(social enterprise)이다. 영리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을 넘어, 아예 사회적 성과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 조직인 사회적기업이 새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올해까지 400개가 넘는 사회적기업을 인증했다. '서울형 사회적기업'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자기 지역에 맞는 사회적기업을 만들겠다고 지원 정책을 내놓고 있다. 대기업들도 사회적기업 활동 지원에 나서고 있다.


시민사회의 사회적기업 활동도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희망제작소는 '사회혁신기업가 아카데미', '희망별동대' 등 다양한 사회적기업가 양성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두레, 아름다운가게, 아이쿱, 한살림 등 사회적 목적을 지닌 유통업체들도 더 큰 관심을 얻었다.


소셜미디어가 제시하는 새로운 경영원리


마지막이지만 사실 가장 큰 폭발력을 보여준 '사회'는 '소셜미디어'(social media)에 있다.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기존 미디어가 아니라, 지식을 소비하는 사람이 생산하기도 하고, 유명인이 미디어를 거치지 않고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기도 하는 미디어다.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등이 대표적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복귀를 발표했다. 대통령실 정진석 정무수석비서관은 140자짜리 트위터 메시지 두 개로 롯데마트의 '통큰치킨'을 철회시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500만명이 넘는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수시로 메시지를 보낸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라고도 불리는 이 '사회'는 거품까지 몰고 왔다. 페이스북의 기업가치는 12월 현재 47조원(412억달러)을 넘는다. <뉴욕타임스>와 <CNN머니>는 최근 실리콘 밸리에 소셜미디어 거품이 생기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닷컴버블이 생기던 때처럼, 소셜미디어 벤처기업에 투자금이 몰려 몸값이 치솟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열풍이 불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소셜미디어의 진짜 의미는 돈으로 계산된 가치를 훨씬 넘어선다. 소셜미디어는 기업에 새로운 경영 원리를 제시한다. 사회와의 '소통'이 바로 그것이다. 소셜미디어를 보고,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더 많이 파는 방법이 나왔다고 흥분할 일만은 아니다. 사회와 소통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서는, 소셜미디어가 가져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이 되고야 말 것이다. 근본적으로 경영을 다시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모든 거품은 흔적을 남긴다


이런 '사회' 열풍을 놓고 어떤 사람은 '거품'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의 큰 진보는 많은 경우 거품이 남긴 흔적에 기대고 있다. 1930년대 미국의 철도회사 투자 열풍은 수백 배 거품을 낳았고 거품 붕괴와 함께 많은 사람이 파산하고 자살하게 만들었지만, 결국 우리는 세계 방방곡곡이 철도로 연결된 세상에 살게 됐다. 21세기 초 코스닥과 닷컴 열풍은, 한국을 인터넷 강국으로 만들었다.


2011년, '사회'라는 화두는 여전히 거품처럼 부풀어 오를 것이다. 그 과정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위기를 맞을 것이고, 이것을 큰 기회로 만드는 기업도 생길 것이다. 물론 거품이 꺼질 때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볼 것이다.


그 모든 잔치가 끝났을 때,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사회'라는 화두는 우리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길까? 사회책임경영이든 사회적기업이든 소셜미디어든, 우리 기업에 마지막까지 남게 될 메시지는 이것 하나가 아닐까? '사회와 올바르게 소통하는 기업만이 성공할 수 있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www.facebook.com/lee.wonjae.f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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