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등록: 2010.11.16 수정: 2014.11.11



“삼류 잡지 에디터가 무슨 …”


장하준 교수(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에 대해 서울대의 한 교수가 던진 말이라 한다. ‘삼류잡지’란 장 교수가 한 때 편집자(editor)로 활동했던 ‘케임브리지 경제학 논집’(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을 말한다. 이 논문집은 경제학계에서는 왠만큼 알려진 학술지로, ‘삼류 잡지’란 표현이 적절한 지는 보는 이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런 에피소드를 신문 칼럼(경향 2007-3-20)을 통해 공개하면서 경제학자 정태인(전 청와대 경제비서관)은 “유럽에서 유명잡지의 편집자란 상상을 불허하는 권위”를 갖는다고 말한다.  장 교수에 대한 주류 경제학계의 시각이 이렇기 때문인 지, 뮈르달상 (학자에 따라서는 노벨상에 버금가는 권위를 인정해 준다 함)과 레온티에프상(최연소 수상)을 받은 장하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직에 세 차례 지원해 모두 고배를 마시게 된다. 미국 대학에서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을, 그것도 수리모형이나 계량경제학을 공부하고 와야 알아주는 국내 학계에, 유럽에서 제도주의 경제학을 한 장 교수는  ‘3류’로 보일 지 모른다.

장하준 교수의 강연에는 청중이 몰려든다. 지난해 연세대학교 위당관에서 열린 장 교수 강연.  <한겨레 김봉규 기자>


이렇듯 주류의 시각으론 대단치 않을 지 모르나 장 교수는 이미 경제위기 시대의 ‘아이콘’으로 국내외에서 확실히 떠올랐다. 과거의 그는 아니나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의장과 ‘맞짱을 뜨는’ 연사로 세미나에 초청받고, 그런 세미나에는 청중이 몰려든다. 장 교수를 인터뷰하거나 칼럼 집필을 부탁하려는 언론사가 줄을 잇는다. 그의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한글로 번역돼 나온 지 2주일 만에 베스트셀러 1위에 진입했다.


장하준 교수가 강연할 예정인 '2010 아시아미래포럼' 바로가기


장 교수를 향한 이런 열기는 그가 우리의 답답한 가슴을 열어주는 말을 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다. 평소라면 읽지 않았을 인문서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가 출간 6개월여 만에 60만부가 팔린 것이 ‘정의가 복원되길 갈구하는 사회심리’의 예후로 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영국 권위지 <가디언>이 새 책과 관련해 애드 밀리반드 신임 노동당수에게 “장 교수와 점심을 함께 하라”고 권했을 만큼, 장 교수가 경제를 보는 안목은 해외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다.


장 교수가 최근 몇 년 간 펴낸 책에서, 그리고 강연과 세미나에서 일관되게 시도하는 것은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비판과 이의 해체다. 자유시장, 규제완화, 자유무역, 주주자본주의 등 90년대 이후 우리가 듣고 믿었던 경제적 상식과 가치, 신념체계를 밑동에서부터 흔들고자 하는 것이다. 대중적 영향력이 크기에 당연히 주류 경제학계의 반론이 있을 법 하지만 잠잠하다. 장 교수가 이번에 낸 책에 경제가 잘되려면 “시장주의 경제학자와는 종류가 다른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다소 자극적으로 썼는데도 마찬가지다.


지난 해 말 출간된 <억지와 위선> (북마크) 이란 책과, 최근의 동영상 인터뷰에서 자유기업원 김정호 원장이 한 장하준 비판이 그 나마 본격적인 대응이다. 김 원장은 “장 교수는 아주 특이하게 역사적 사실을 잘 알고 이를 논거로 활용한다“며 “(주류 경제학자들은) 경제사를 잘 배우지 않는다. 수학적 모형이랄 지 추상적인 것을 배우는데”라며 “대응을 잘 못”하는 이유를 밝힌다.


사정이야 어쨌든 비판의 바람을 쐬지 않으면 이론은 도그마가 된다. 대중이 열중하는 사상은 그럴 위험이 더 높다. 사실 장 교수의 주장에 허점이 없어서 반론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김정호 원장의 반박만 들어 보아도 토론해 볼 쟁점은 드러난다. 예를 들어 김 원장은 장 교수가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19세기 미국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한 시기는 관세율이 높고 보호주의가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된 기간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당시는 국제교역보다는 철도 발달 등으로 미국 국내 시장이 넓어지고 주(州)간 관세가 없어진 것이 성장의 동력이었다는 점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장 교수는 또 ‘박정희 시대에 국가의 규제와 개입이 많았음에도 경제가 성장했다’며 국가개입의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박정희 시대는 오히려 정부가 주도해 이승만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외환시장, 노동시장 등 시장을 만들고 작동되도록 한 특수한 기간이었다고 비판한다. 등샤오핑 시기 중국 정부의 주도권이 여전히 강했지만 마오쩌뚱 생전에 비해 경제와 사회가 자유화된 것이 급속한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된 것과 비슷한 이치란 것이다.


대중은 새로운 해석을 갈구하며 심지어 ‘미네르바’를 찾아 나서기도 하는데, 주류 경제학자들은 대답하지 않고 있다. 옛 것은 흔들리고 새로운 것은 아직 오지 않은 혼돈 속에서 현실은 종전과 다름없이 돌아가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체결이 서둘러 추진되고, 부자감세 같은 정책도 강건하다. 국책연구원이나 대학에 포진한 이코노미스트들은 과거와 다르지 않은 패러다임으로 정책과 논리를 개발하고 있다.


시장과 국가는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 기업은 또 어떻게 사회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좀 더 행복한 사회가 되기 위해 어떤 성장과 분배 모델이 필요할까? 주류 경제학계가 장하준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이젠 이런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그래서, 한겨레도 장하준 교수를 세미나에 초대했다. 12월 15일과 16일 열리는 아시아미래포럼에서 장 교수는 ‘다양화하는 기업과 국가관계’에 대해 강연하고 참석자와 토론할 예정이다(홈페이지 www.asiafutureforum.org). 그의 강연이 논쟁의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이 글은 시사주간지 <한겨레21> 836호, 11월22일자에도 실렸습니다)


이봉현 한겨레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트위터 @maple_35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착한경제] 스티브 잡스 없는 애플은 가능할까?

등록: 2011.03.02 수정: 2014.11.12 지난 2월 24일 애플의 주주총회에서는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에 대한 주주들의 투표가 있었다. 1주1표제로 진행된 이 투표에서,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얻은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이사로 재선...

  • HERI
  • 2014.11.12
  • 조회수 5328

[착한경제] '해고는 살인'인 세상과 쌍용차

등록: 2011.03.01 수정: 2014.11.12 무급휴직중이던 쌍용자동차 노동자가 또 사망했습니다. 부인이 2010년 4월 자살한 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분입니다. 아이 두 명을 남기고 돌아가셔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관련기...

  • HERI
  • 2014.11.12
  • 조회수 5591

[착한경제] 기업에 혁명이 필요할 때

등록: 2011.02.24 수정: 2014.11.12 미국 유학 시절, 기숙사 근처의 친환경 유기농 마트 ‘홀푸드마켓’(Whole Foods Market)은 아내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터였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쌓여 있는 색색의 유기농 채소와 과일...

  • HERI
  • 2014.11.12
  • 조회수 5968

[착한경제] ‘복지’ 논쟁에서 느낀 아쉬움

등록: 2011.02.09 수정: 2014.11.12 자동차가 달리려면 기름을 넣어야 한다. 그러나 기름만 넣는다고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빠르고 안전하고 편안하게 움직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더욱 생각할 것이 많다. 차체가 튼...

  • HERI
  • 2014.11.12
  • 조회수 4618

[착한경제] 소셜 커머스, 3년 후에도 망하지 않으려면?

등록: 2011.01.27 수정: 2014.11.12 이원재 소장님의 글에서도 나왔듯이, 지난해는 정말 "social"한 한해였습니다. 온갖 social 들이 쏟아져 나와 다양한 개념과 결합되어 새로운 모델을 선보였기 때문이지요. 개인적으로, 그 중에서...

  • HERI
  • 2014.11.12
  • 조회수 6512

[착한경제]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살을 베어갈 수 있다? 없다?

등록: 2011.01.19 수정: 2014.11.12 정치를 좋게 말하는 사람은 드믈다. 특히 지난 달 예산국회 처럼 연례행사로 ‘난장판’ 이 벌어지면 모두들 못볼 것을 본 것처럼 한마디씩 한다. '저질' 정치인을 욕하며 자신의 고상함을 ...

  • HERI
  • 2014.11.12
  • 조회수 13048

[착한경제] 2010년의 경영 화두, ‘Social’

등록: 2010.12.30 수정: 2014.11.12 올 한 해, 나는 '사회'(social)라는 단어에 매달렸다. 사실 이 단어는 올해 기업 경영의 최대 화두라고 부를 만하다. 올해 기업 경영을 하면서 이 단어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앞...

  • HERI
  • 2014.11.12
  • 조회수 4471

[경제담론 톱아보기] – 아르헨티나는 복지 포퓰리즘이 망쳤을까?

등록: 2010.12.27 수정: 2014.11.12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복지'를 화두로 대선행보에 시동을 거는 등 복지가 성장을 밀어내고 다음 대선의 키워드가 될 전망이다. 그런데 김황식 국무총리가 10월 말 무상급식과 노인의 지...

  • HERI
  • 2014.11.12
  • 조회수 8140

[착한경제] 올해 송년회에 해야 할 건배사는

등록: 2010.12.08 수정: 2014.11.12 정부대전청사에서 공무원 1천여 명이 한꺼번에 야외로 대피하는 소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알고 보니 배수관 공사 중에 일어난 진동이었다. 마음 속에 뭉쳐 있던 불안이, 건물이 흔들리자 긴급 ...

  • HERI
  • 2014.11.12
  • 조회수 4718

[착한경제] 올해 송년회에 해야 할 건배사는

등록: 2010.12.08 수정: 2014.11.12 정부대전청사에서 공무원 1천여 명이 한꺼번에 야외로 대피하는 소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알고 보니 배수관 공사 중에 일어난 진동이었다. 마음 속에 뭉쳐 있던 불안이, 건물이 흔들리자 긴급 ...

  • HERI
  • 2014.11.12
  • 조회수 5248

[착한경제] 일본기업, 부활의 노래

등록: 2010.11.29 수정: 2014.11.12 일본 주요 기업들이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침체일로를 겪던 실적 개선 속도가 가파르다. 특히, 슈퍼 엔고시대에 거둔 실적이라 더욱 주목하게 된다. 일본을 대표...

  • HERI
  • 2014.11.12
  • 조회수 4757

[착한경제-아시아미래포럼] 중국 기업가에게는 ‘원죄의식’이 있다

등록: 2010.11.26 수정: 2014.11.12 “중국 민간기업 경영자들과 얘기하다 보면 일종의 ‘원죄의식’ 같은 게 있다는 걸 발견합니다. 다른 사람의 희생을 발판으로 사업을 일으키고, 법을 어겨가면서 돈을 번 어두운 기억 때문이죠...

  • HERI
  • 2014.11.12
  • 조회수 4560

[착한경제] 그 분이 오신다고요?!

등록: 2010.11.25 수정: 2014.11.12 대학시절, 함께 스터디를 하던 멤버 중에 똑똑하고 모범적인 선배가 있었습니다. 인자하고 현명해서 상담 신청을 하면 마치 자신의 일인냥 정성껏 조언해주곤 했습니다. 머리도 좋아서 공부를 ...

  • HERI
  • 2014.11.12
  • 조회수 5313

[착한경제] 한∙중∙일 기업은 서구보다 사회책임경영이 뒤떨어졌을까?

등록: 2010.11.23 수정: 2014.11.12 한겨레경제연구소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기업의 사회책임경영 연구를 벌써 3년째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말끔히 풀지 못한 의문이 있다. 늘 한국 언론과 기업들은 '서구에서...

  • HERI
  • 2014.11.12
  • 조회수 4522

[착한경제] 스트레스, 내 안을 보라

등록: 2010.11.22 수정: 2014.11.12 '아! 스트레스 받아' 직장인이면 일주일에 몇 번 쯤은 내뱉는 말이다. 우리는 스트레스가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에 살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필립스 헬스 앤 웰빙 지수’에 따르면 G20...

  • HERI
  • 2014.11.12
  • 조회수 4689

[착한경제] '벤처 박사' 안철수의 성공론

등록: 2010.11.18 수정: 2014.11.12 안철수(카이스트 석좌교수)는 올바른 사람이다. 그는 원래 올바른 창업가였다. 컴퓨터 바이러스백신이라는, 세상이 없던 제품을 만드는 '안철수연구소'라는 벤처기업을 세웠고, 성공시켰다. 편법 없...

  • HERI
  • 2014.11.12
  • 조회수 4526

[착한경제-아시아미래포럼]사회적기업, 국제협력에 나서야 하는 이유

등록: 2010.11.18 수정: 2014.11.12 동아시아 3국(이하 한중일)은 상당한 경제적 성장을 이뤄냈다. 20세기 중반 패전국으로 대부분의 산업기반을 상실했던 일본은 높은 수준의 기술과 생산성에 기반한 성장을 거듭해 아시아의 거의 ...

  • HERI
  • 2014.11.12
  • 조회수 5149

[착한경제-아시아미래포럼] 사회적기업, 해외원조의 새로운 길

등록: 2010.11.18 수정: 2014.11.12 동아시아 3국(이하 한중일)은 상당한 경제적 성장을 이뤄냈다. 20세기 중반 패전국으로 대부분의 산업기반을 상실했던 일본은 높은 수준의 기술과 생산성에 기반한 성장을 거듭해 아시아의 거의 ...

  • HERI
  • 2014.11.12
  • 조회수 5542

[착한경제-아시아미래포럼] 더 나은 기업이 가능하려면

등록: 2010.11.17 수정: 2014.11.11 지난 주 열린 주요 20개국 정상회의(G20)에 대해 논란도 많았지만, 나는 내심 기대를 갖고 있었다. 주요국 경영자들이 금융위기 이전의 과거 경영 관행에서 탈피하겠다는 반성이라도 하지 않을...

  • HERI
  • 2014.11.11
  • 조회수 4781

[착한경제-아시아미래포럼] 장하준이 삼류 경제학자?

등록: 2010.11.16 수정: 2014.11.11 “삼류 잡지 에디터가 무슨 …” 장하준 교수(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에 대해 서울대의 한 교수가 던진 말이라 한다. ‘삼류잡지’란 장 교수가 한 때 편집자(editor)로 활동했던 ‘케임브리지 ...

  • HERI
  • 2014.11.11
  • 조회수 6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