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0.11.12 수정: 2014.11.11
10월 초, <조선일보> 1면을 보고는 큰 한숨을 쉰 일이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10월 '한중일 경제대전'이라는 제목의 시리즈를 진행했습니다. 첫 회 제목은 이렇습니다. "1등 하던 造船業, 中에 밀렸고 1등 할 생명공학, 日이 선점했다" 이 기사를 보는 순간, 내용에 상관 없이 마음이 답답해졌습니다.
동아시아에는 긴장이 끊이지 않습니다. 최근 센가쿠열도(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험악한 대립은 그 긴장에서 불거진 한 현상일 뿐입니다.
주변 열강이 긴장 상태일 때, 한국의 주권은 위협받습니다. 한일병탄 당시의 국제 정세가 바로 그랬습니다.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기보다는, 누구 편인지를 분명히 하라는 압박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균형과 평화야말로 한국에게 가장 우호적인 국제 환경입니다.
언론을 보면, 한중일 사이에는 전투 뿐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동아시아 정세를 호전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스포츠도 한국과 일본,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전투 뿐입니다.
한국 언론은 이런 상황을 부추기고 있지요. <조선일보> 시리즈가 대표적입니다. 또 여러 언론이 프랑스의 학자 기 소르망의 <가디언> 기고를 인용해 "한국이 일본 뒤쫓는 시대는 끝났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비슷하게,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제로섬으로만 보는 시각입니다.
사실 이런 게 흔히 우리 머릿속에서 발견하곤 하는 인식입니다. 인접해 있는 주변 강대국과 우리의 관계는 긴장과 경쟁 관계이고, 우리는 늘 어느 분야에서나 전투 중이고, 긴장을 절대 늦추지 말고 주변을 계속 견제해야 한다는 인식이지요.
이런 인식을 접할 때마다, 저는 남북한과의 대결 구도가 너무 오래 되어 대결적 사고가 우리 머릿속에 너무 많이 스며들어 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과 일본이 우리와 대결한다는 인식이 확산될수록, 가장 손해를 보는 것은 한국입니다.
지금 한국이 해야 할 일은 오히려, 동북아 주요 국가들과 공통의 이해관계를 계속 개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화와 협력 무드가 유지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게 한국에게 가장 유리한 주변국 환경입니다.
G20를 넘어서려면
한 겨레경제연구소가 이번에 '2010 아시아미래포럼: 동아시아 기업의 진화'를 마련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동아시아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한중일 세 나라가 먼저 나서서, 국제사회에서 가질 수 있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동북아에는 공동의 이해관계가 생기고, 이게 긴장 완화와 평화로 가는 징검다리가 됩니다.
아시아 지성과 현장 전문가들이 모여, 이런 논의를 하는 장을 마련하기로 한 것입니다. 특히 민간 전문가와 기업, 시민사회가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민간 포럼을 잘만 구성하면, 국가들의 회의체인 G20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한중일 사이에 지속적인 논의를 하면, G20보다 더 효과적으로 결론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G20보다 훨씬 유연하고, 개혁적이고, 무엇보다 실용적인 논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자리가 됩니다.
그런데 한중일 공동의 이해관계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주제야 많을 수록 좋겠지만, 가장 쉬우면서도 세 나라 모두에게 필요한 주제여야 할 것입니다.
한중일 공동의 이해관계 찾기
유력한 주제 중 하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라는 주제입니다. 일단 민간이 협력하는 것이 빠릅니다. 그러니 기업 부문이 먼저 나서는 게 좋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회적 책임이라는 주제는 경쟁 상황에 있는 기업끼리도 협력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CSR과 관련된 대부분의 논의가, 서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더욱 협력할 것이 많습니다. 서구와는 다른 방식으로 발전해 온 동아시아 기업들은, 그 사회적 책임을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국제 사회에 더 강력하고 더 모범적인 표준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 주제를 좀 더 넓히면, 동아시아 기업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찬찬히 뜯어보는, '기업이 무엇을 하는 곳인가'라는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겠습니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는 흔들리고 있습니다. 주주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중시하던 동아시아 기업의 경영 방식은, 다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2010 아시아미래포럼에서는 이런 주제를 다루려고 합니다.
동아시아, 좀 더 넓혀 국제사회에는 분명히 한국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과 일본 양자는 함께 일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국이 중간에서 조정자 역할을 하면, 국제사회에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지역공동체가 됩니다.
미시적으로 봐도 그렇습니다. 한겨레경제연구소가 한국·중국·일본 전문가들과 함께 동아시아 기업을 연구한 지 3년째입니다. 그런데 중국 전문가와 일본 전문가들은 자주 부딪쳤습니다. 중국 전문가들은 거시적 맥락, 국가 정책의 문제부터 이야기를 풀어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총론과 당위에 강합니다. 반면 일본 전문가들은 꼼꼼하지요. 각론을 중시하고, 범위가 작더라도 정확한 결론을 내리려고 합니다. 당위보다는 실용을 중시하고, 내용 없는 구호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회의에서는 늘 우리 연구소, 한국인의 ‘허브’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굳이 자임하지 않아도 자꾸 중재자 역을 맡게 됐습니다.
다시 강조되는 한국의 허브 역할
한국·중국·일본이 공동의 이해관계를 찾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중국과 미국 사이의 팽팽한 긴장에 완충장치를 만들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경제발전 수준이 서로 다른 한중일 사이에 형성된 공급사슬을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도 필요합니다. 조심스럽지만, 세 나라 공통의 과제인 북한을 둘러싼 긴장을 해소하는 데도 지역공동체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 접근을 아시아미래포럼에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12월 15~16일 열리는 첫 아시아미래포럼에는, 세계적 경제학자 아오키 마사히코 스탠퍼드대 교수가 참석해 동아시아 기업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에 대해 발표합니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대표적 경제학자 중 한 명인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금융위기 이후 다양화하고 있는 기업과 국가의 관계에 대해 강연합니다.
이 밖에 이정우 경북대 교수, 김영호 유한대 총장, 박영철 고려대 석좌교수 등의 토론이 열립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의 발표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ISO26000, 동아시아 30, 사회적기업 등 12개 다양한 분과 세션이 운영되고,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의 특강도 열립니다. 세부 세션 내용에 대해, 한겨레경제연구소(HERI)의 블로그 착한경제(goodeconomy.hani.co.kr)에서 지속적으로 알려드릴 것입니다.
* 아시아미래포럼 세부내용 확인 및 문의: www.asiafutureforum.org. 070-7425-5237.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