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0.11.04 수정: 2014.11.11
이 글은 왕후이야오(王辉耀)가 상해금융법률연구원(上海金融与法律研究院)이 운영하는 <思想库>에 2010년 9월 7일자로 게재한 것이다(그러나 글이 쓰여진 시점은 2009년으로 보인다). <사상고>는 중국 싱크탱크의 현황과 고민, 제안을 다채롭게 접할 수 있는 사이트이며, 이미 몇차례 여기에 실린 글들을 ‘착한경제 블로그’에 번역게재한 바 있다. 저자는 중국과세계화 연구중심(中国与全球化研究中心, Center for China & Globalization) 주임(主任)이며, 구미동학회(欧美同学会) 부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2009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던 세계 싱크탱크 회의(Global Think Tank Summit)에 참가하면서, 본인이 느낀 바와 중국 싱크탱크의 나아갈 길에 대해 담담히 서술한 글이다. 번역은 남혜선씨께서 해 주셨다. 늘 좋은 글을 번역해 주시는 남혜선씨께 감사드린다.
중국 싱크탱크의 국제적 영향력(2)
나도 베이징에서 열린 2009년 글로벌싱크탱크서밋에 참가했다. 중국이 처음으로 주최한 이번 글로벌싱크탱크서밋을 통해 나는 중국 싱크탱크의 발전에 관해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씽크탱크는 정책 결정, 정책 연구, 자문, 정책 건의 등을 전문으로 하는 비영리기구이다. 정부의 과학적인 정책 결정, 공공정책 개선을 추진하기 위해서 현대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기구이며, 한 국가의 ‘소프트파워’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서구에서는 심지어 싱크탱크를 입법, 행정 그리고 사법에 이은 ‘제4부문’으로 보기도 한다. “국내외 경제상황의 변화와 중장기 발전상의 필요에 따라 예비 정책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고 원쟈바오 총리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중국 국내 매체들이 중국에 이미 2,000개의 싱크탱크가 있으며 이는 미국을 넘어서는 수치라고까지 말하고 있지만 그 싱크탱크들이 중국 사회와 국제 무대에서 진정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미국 펜실베이나대학교에서 발표한 <2008년 세계싱크탱크보고>의 경우 중국 내 싱크탱크는 74개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중국 싱크탱크는 아직 성숙한 발전 단계에 접어들지 못했다. 적어도 민간성, 독립성, 국제화 이 세 가지 측면에서 본다면 중국 싱크탱크의 갈 길은 멀기만 하다.
2009년 글로벌 싱크탱크 서밋(사진제공 : China Sustainable Industrial Devlopment Network)
‘참모’, ‘막료’등의 명사가 탄생하고 수 천 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중앙 조정이 중심이 되어 만든 동양식 ‘싱크탱크’와 황제를 포함한 개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문단’은 중국에서도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적인 의미의 싱크탱크는 서구 사회의 산물이다. 서구에서 말하는 현대적인 의미의 싱크탱크는 정부, 사회, 학계 사이에서 제3자로 존재하면서 예비 정책, 장기적인 발전 전략과 계획을 제공하는 공공의 브레인이다. 이런 공공성은 민간성이라고도 설명될 수도 있다. 결국 기업과 개인이 싱크탱크가 연구하는 정책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싱크탱크가 정부에 서비스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정책과 계획을 직접적으로 최종 책임지고 집행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혹은 이해관계자는 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싱크탱크의 연구원이 일단 ‘회전문’을 통과해서 실질적으로 정책을 시행하고 책임지게 되면, 신분도 학자에서 관원으로 변화한다.
현재 중국의 싱크탱크는 국책 싱크탱크와 반(半) 국책의 성격을 띤 대학 부속 싱크탱크가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국책 싱크탱크의 특성, 예를 들어보면 이런 싱크탱크의 경우 자금이 정부에서 오기 때문에 연구원들이 정부의 종신공무원편제에 속하게 되고 월급과 직위 모두 정부에 의해 결정된다. 이런 상황에서 싱크탱크는 종종 변형되고 공공성이나 민간성을 잃어버리면서 정부 정책을 홍보하고 설명하는 부처가 되어 버린다. 그러니 정부 정책에 의문을 품고 의견을 개진하거나 정부 정책을 대체할 수 있는 ‘예비 정책’을 내놓기가 어렵다. 정부의 공공 서비스 및 관리를 맡고 있는 이들이 이제는 ‘부모관(父母官)’이 아닌 ‘공복(公僕)’이 되어 사회와 국민이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메커니즘을 수립해야 한다.[1] 사회의 다양한 직종 중 유일하게 전문적으로 공공 정책을 연구하는 싱크탱크에 만약 민간성이 부족하다면, 또 제3자의 위치에 있는 공공커뮤니케이터로서의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면 싱크탱크는 정부의 ‘나팔수’가 되고 국민들의 의견은 정부의 정책 제정 과정에서 소외될 것이다.
물론 정부의 ‘나팔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싱크탱크가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다. 일정 수준의 독립성을 갖출 수 있을 때 싱크탱크는 정부 혹은 사회를 위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연구를 제공하고 정책을 건의하며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또한 싱크탱크의 근본적인 가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
2010년 10월 11일에 열렸던 중국국제경제교류중심 주최 16차 월례경제포럼(사진 : 중국국제경제교류중심제공)
우선, 싱크탱크는 그에 걸 맞는 ‘연구원’과 직업정신을 겸비해야 독립적인 연구를 완수할 수 있다. 다음으로 싱크탱크는 자금 출처의 일원화에서 벗어나 안정적이고 다양한 수입원을 확보해야 한다. 후원자의 ‘인질’이 되어 결국 그 ‘이익 대변인’이 되는 일을 피해야 한다. 동시에 가능한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공간에서 연구가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예를 들면, 관리 제도 상 연구, 자금 조달, 경영 등이 모두 분리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싱크탱크가 독립적인 제도, 환경, 문화를 유지하게 해야 한다. 마지막이 아주 중요한데 중국의 경우 아직 이 부분이 미비하다. 첫째, 정부의 정보 공포 제도가 불투명하고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비(非)국책싱크탱크들은 정보 및 수치 등의 출처가 정확한지 확신할 수 없다. 심지어는 이런 수치조차 얻지 못할 때도 있으니 자연히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하기가 어려워진다. 둘째, 정책적으로 싱크탱크에 합당하고 객관적인 지위를 주지 않고 있다. 민간 싱크탱크가 국가의 정책이 제정되는 과정 속에서 더 많은 지식 자원을 획득하게끔 하고 이를 통해 민간 싱크탱크의 발전을 격려해야 한다. 하지만 뒤를 봐줄 정부 기관을 찾지 못하면 널리 알려진 비영리조직이라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형식으로 등록을 해야 하는 게 중국의 현실이다. 셋째, 중국에는 싱크탱크의 독립성을 보장해줄 공공기금이라는 것이 부족하고 기부 문화도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다. 물론 이는 다른 분야의 비영리조직도 똑같이 겪고 있는 문제다.
그 외 중국 싱크탱크의 글로벌 의식 부족을 들 수 있다. 중국은 점점 세계화에 편입되고 있고, 이해관계도 광범위하게 확장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싱크탱크도 국제적인 시야를 갖고 국제 무대에서 발언권을 쟁취하면서 공신력을 높여야 한다. 그러나 미국 싱크탱크들이 중국 본토에 와서 발전을 꾀하고 중국 국내 사정을 면밀히 연구하고 있는 것은 우선 차치하고라도 중국과 관련된 북핵6자회담에 대해서도, 또 중국 정부가 주권을 초월한 화폐 개념을 제창하고 나온 상황에서도 중국 싱크탱크들이 ‘집단 침묵’ 상태에 있었으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2] 중국이 대국으로 우뚝 서려면 소프트파워를 수출해야 하며 그러려면 국제적인 영향력을 갖는 싱크탱크를 갖고 있어야만 한다.
현재 중국 정부는 ‘제4의 파워’라 불리고 있는 싱크탱크에 전에 없던 관심을 쏟고 있다. 글로벌싱크탱크서밋의 첫 개최는 이를 증명하는 것이며 동시에 중국이 싱크탱크의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서밋에 참여한 100 여 개의 국제적인 싱크탱크들에 대한 인정을 넘어 중국 싱크탱크의 백화제방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부모관(父母官)이란 원래 백성을 직접 다스리는 지방 관리들에 대한 존칭이었는데, 이는 고대 중국에서 관리를 백성의 어버이 같은 존재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저자는 이제는 정부의 공공 서비스와 그 관리를 맡고 있는 이들 스스로 본인들이 ‘국민의 부모’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국민의 공복’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역주)
[2] 2009년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조우샤오촨(周小川) 총재가 <<국제통화시스템 개혁에 대한 소고>>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공식 사이트에 발표했다. 이 글에서 그는 2008년 금융위기는 국제통화시스템에 리스크가 존재함을 보여준 것이라고 하면서 특정 주권국가에 얽매이지 않고 화폐 가치의 장기적인 안정성을 유지하는 국제 준비 통화, 즉 초국적준비통화(super sovereign reserve currency)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역주).
홍일표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