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등록: 2011.09.26 수정: 2014.11.12


기원전 12세기 그리스가 ‘목마’라는 계책으로 10년 걸린 공성전을 마무리 한 트로이 전쟁은 경제가 발단이 됐다. 땅이 비옥하지 않은 그리스는 올리브와 포도나무 외에는 변변한 소출이 없었다. 해상 무역을 해야 곡식이나 옷감, 쇠붙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흑해로 가는 입구에 있는 트로이인들이 통행세를 걷고, 곧잘 물건을 약탈하자 참다 못해 운명을 건 한판 전쟁을 치르게 됐다.


세계화로 평평해진 지구의 상징이기도 한 국경을 넘나드는 금융거래에 통행세를 메기자는 제의가 속속 나오고 있다. 단기투기성 자금거래에 ‘토빈세’를 걷자는 얘기다. 이는 금융산업이 취약한 개도국의 단골 메뉴였는데, 최근에는 프랑스와 독일 같은 유럽의 경제 맹주들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또 2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도 비슷한 제안을 했다. 주장은 비슷하나 각각의 목적은 좀 다르다. 프랑스와 독일은 이를 걷어 재정위기에 신음하는 유럽을 구제하려 하고, 빌 게이츠는 개발도상국에 재정지원을 하자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컴퓨터 화면과 통신선 통해 엄청난 양의 돈들이 지구를 휘감아 돌고 있다. 지구촌에서 오가는 외환거래 규모는 지난해 하루 평균 4조 달러였다. 3년 전에는 하루 3조3천억 달러였고 2004년에는 하루 1조9천억 달러였던 것을 생각하면 늘어나는 속도도 매우 빠르다.


휴일 빼고 연간 250일 거래한다면 1,000 조 달러가 거래된다. 이 가운데 원유를 사거나 컨설팅을 해주고 받는, 즉 상품과 서비스 교역에 쓰이는 액수는 30조 달러 남짓이다. 나머지 97%는 실물과 관계없이 주식, 채권, 외환 같은 금융거래에 투자하느라 오간 돈들이다.


물론 주식이나 채권투자가 공장 짓고 종업원 고용하는 일과 관계 있고, 외환 투기 역시 통화의 가격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97대 3이라는 숫자가 보여주는 것은 ‘꼬리’(돈놀이)가 ‘몸통’(실물)을 얼마든지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투기성 자금이 갑자기 몰려오거나 빠져나가, 환율이나 주가, 금리가 널뛰기하고 나라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 때문에 최소한 치고 빠지기 식의 단기 거래에는 세금을 물리자는 것이다.


빌 게이츠가 제시한 걸 보면 국가간 금융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면 최대 2,500억 달러(약 293조원)을 걷을 수 있다. 또 오스트리아 경제연구소라는 곳에서 계산한 것을 보면 유럽에서 오가는 금융거래에 0.05%의 세금을 물리면 연간 2,150억 유로의 자금을 조달한다. 세금을 메길 수 만 있다면 유럽의 재정 위기를 타개하는 확실한 수단 하나를 확보하는 셈이다.


토빈세 부과를 놓고 경제 대국들은 두 진영으로 갈렸다. 프랑스와 독일이 적극적으로 도입하자는 쪽이고, 미국과 영국은 반대한다. 미국과 영국은 여러  반대 이유를 내세우지만, 각국이 빗장을 걸어 자신들이 경쟁력을 가진 금융부문이 위축될까 두려운 게 가장 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선택이다. 자본자유화를 완성했다는 한국 금융시장은 세계경제가 요동칠 때 마다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은 급등하는 일을 겪었다.


 외국인이 보기에 한국 금융시장은 규모도 적당한데다 유동성도 갖춰 급할 때 현금화하기 딱 좋은 곳이다. 오죽하면 아시아의 ‘현금인출기’ 란 말이 나왔겠는가? 올 여름 미국 정부의 신용등급 강등과 연이은 유럽 재정위기 국면에서도 한국의 원화는 세계에서 단기에 가장 많이 가치가 하락(환율 상승)했고, 주가 역시 낙폭이 세계적이다.


‘아시아의 금융허브’도 좋지만 언제까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국제금융의 변덕에 맡겨야 할까?  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활짝 열어젖힌 자본시장에 문턱을 만드는 일을 심사숙고 할 때가 됐다.


환율을 시장에 맡기는 자유변동환율제를 손봐 환율주권을 찾아오는 것과 함께, ‘토빈세’ 처럼 출입구에 문턱을 만드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마침 국제 사회의 분위기도 바뀌어 각국이 사정에 맞춰 자본시장에 적절한 규제를 만드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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