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1.08.19 수정: 2014.11.12
구글의 모토롤라 휴대폰 사업 인수 발표가 화제다. 구글이 밝히고 있는 이 기업의 목표는 “전 세계 정보를 체계화하여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구글은 인터넷 검색엔진을 만들어 이용자가 편리하게 정보를 찾을 수 있게 만들었다. 또 각종 웹 기반 소프트웨어와 이메일 및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개발해 이용자가 찾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정리하고 확산할 수 있게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모두 소프트웨어 사업에 가깝다.
휴대전화를 만드는 기업인 모토롤라의 인수는 이 목표와 잘 맞는 것일까? 혹시 검색과 웹 기반 소프트웨어에 열중하던 구글이 하드웨어에서 새로운 길을 찾으려 하는 것일까? 추측과 분석이 난무하다.
그런데 검색기업이 휴대전화 사업을 인수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논점이 이번 인수 뒤에 있다. 바로 구글이 그 동안 지켜 오던 ‘열린 생태계'를 지향하는 태도를 바꿔, ‘닫힌 생태계'를 지향하는 생산네트워크 운영 전략을 펼칠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구글은 철저하게 열린 생태계를 지향했다. 구글은 스마트폰과 관련해서는 애플에 맞서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를 개발해 보급했는데, 이 운영 체제는 무료로 휴대전화 생산업체에 보급됐다. 인터넷 검색사이트인 구글도 마찬가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와 익스플로러를 사용해서든, 애플의 iOS와 사파리를 이용해서든, 블랙베리를 이용해서든 자유롭게 구글을 통해 검색할 수 있었다. 즉 구글은 누구나 들어와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 즉 ‘열린 생태계'를 지향했던 것이다.
모토롤라 인수는 구글이 직접 보유하고 생산하는 휴대전화가 생겼음을 뜻한다. 마치 애플이 운영체제(OS)와 아이튠즈 등의 소프트웨어와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모두 직접 보유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면 이제 삼성전자나 엘지전자 같은 모토롤라의 경쟁 휴대전화 생산업체와 구글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여기에 조금이라도 장애가 생기고 구글이 모토롤라를 더 선호하는 전략을 택한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구글만의 ‘닫힌 생태계’가 구축되기 시작할 것이다. ‘열린 생태계’의 오랜 강력한 옹호자이던 구글의 전략적 행보가 방향을 틀게 되는 것이다.
열린 생태계와 닫힌 생태계는, 생산네트워크 운영의 상반된 두 가지 전략이다. 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최종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소비재는 한 기업에서 생산되지 않는다. 다양한 단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나오게 된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2만개 이상의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부분의 부품은 협력업체에서 만들어지고 최종생산자인 현대자동차는 조립 생산과 마케팅 역할을 주로 맡게 된다. 따라서 이 복잡한 생산네트워크를 어떻게 운영하느냐는 기업의 성패가 걸려 있는 중요한 문제다.
닫힌 생태계란, 많은 기술이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지휘자 기업에 의해 만들어 지는 생태계다. 대부분 주요 공급업체의 부품이 최종제품만을 위해 따로 만들어진 것. 열린 생태계에서는, 자동차, 항공, 생활가전 등에서 보이듯이, 표준화된 부품에 강조점이 있다. 이런 부품은 모듈로 합쳐진다. 이 시스템에서는, 공급자들이 혁신가 역할을 하는 게 일반적이고, 이들은 같은 제품을 다양한 고객에게 판매한다.
열린 생태계에서는 최종소비재 생산업체와 협력업체 사이의 관계가 매우 느슨하다.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납품하려는 협력업체 사이의 경쟁이 치열한 경우도 있지만, 조건이 맞지 않으면 당당하게 떠나 버리기도 한다. 이런 생태계에서는 한 개의 협력업체가 한 개의 최종소비재 기업에 묶여 있는 경우는 드물다. 협력업체 스스로 혁신의 주체가 되는 경우가 많다. 혁신적 부품 하나를 개발하면, 여러 최종소비재 기업에서 사용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닫힌 생태계에서는 둘 사이의 관계가 강력하다. 최종소비재 생산업체인 허브기업은 제품 내용에 대해 강력한 톱다운 통제를 하며, 생태계 전체를 지휘한다. 협력업체는 허브기업이 요청하는 스펙의 제품을 공급해야 하며, 이 제품은 다른 곳에서는 수요가 없는 것이다.
애플은 대표적으로 ‘닫힌 생태계’형 생산네트워크를 운영하는 기업이다. 모든 혁신의 열쇠는 애플이 쥐고 있고, 애플은 협력업체가 애플만을 위해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생산하도록 만든다. 물론 이 배후에는 애플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소비자 그룹이 있다.
과거 미국의 대표 기업이었던 GM(지엠)은 ‘열린 생태계'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빠른 성장 과정에서 지엠은 느슨하고 경쟁적인 생산네트워크 관리 방식을 도입한다. 이는 지엠의 경영사적 업적이기도 하다. 즉 ‘느슨한 협력'을 내세우고, 공개 경쟁입찰로 최저가 부품을 세계 각지에서 조달한다.
이 전략에 따라 지엠 자동차의 부품은 세계 각지에서 조달된다. 한 부품회사와 지엠이 갖는 관계의 강도가 그리 높지 않다. 이 전략 아래서, 제품에는 색깔이 없다. 제품은 수치와 매뉴얼에 따라 정의되며, 일정한 기준을 맞추는 부품이라면 세계 어디에서라도 조달한다. ‘글로벌 소싱'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사실 열린 생태계 전략이 그 핵심이라고 봐야 한다.
이 전략은 세계적으로 앞서가는 것으로 여겨지고 보편화했다. 미국 기업 성장과 효율의 동력이라고 여겨지는 전략이기도 했다.
이런 체제에서 혁신 동력과 신규 성장 기회는 협력업체에 오히려 많을 수 있다. 혁신적 엔진을 개발하면, 지엠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자동차회사와 거래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업종에서도 마찬가지다. 혁신적 모바일 소프트웨어를 하나 개발하면, 똑같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사용한다면 삼성전자든 엘지전자든 HTC든 어느 휴대전화에나 진입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엠식 생산네트워크 관리방식은 도요타 등 아시아적 방식에게 큰 도전을 받았다. 도요타의 경우 본사와 부품회사 사이의 강한 관계를 바탕으로 폐쇄적인 생산 네트워크를 끌고 간다. 핵심 부품은 모두 덴소나 아이신 같은 계열사를 통해 조달한다. 폐쇄적인 대신 서로에게 책임지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결국 도요타는 지엠을 추월해냈다.
도요타는 자동차 설계와 디자인 등에 부품회사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면서, 매뉴얼을 강조하는 지엠보다 오히려 개방적인 운영이라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지엠은 느슨하고 약한 관계를 통해 부품회사들 간의 경쟁을 부추기면 싸고, 질 좋은 부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불확실성과 거래비용 증가만을 낳고 제품 질 향상에는 도움이 되지 않은 경우도 발견됐다.
최근 제조업체들은 닫힌 생태계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이유는 ‘차별화’라는 열쇳말에 있다. 공급은 이미 차고 넘친다. 경쟁은 심화됐다. 글로벌 아웃소싱으로 저가 경쟁도 심화하고 있다. 소비자의 마음을 끌고 가격 프리미엄을 만들어내려면, 차별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열린 생태계에서는 차별화가 쉽지 않다. 차별화를 위해서는 최종소비재 기업이 자기만의 색깔에 맞게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모두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열린 계에서는 이게 어렵다. 그래서 기업들이 닫힌 생태계 체제를 선호하게 되는 것이고, 도요타와 애플이 그 성공사례를 보여주며 표준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 뿐 아니다, 소비자가전에서 네슬레는 커피메이커 ‘네스프레소'를 통해 이를 보여줬다.
마드리드 IE비즈니스스쿨의 대니얼 코스텐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닫힌 생태계를 활용해 신제품을 만드는 것은 모든 최고경영자의 꿈”이라고 말한다.
물론 닫힌 생태계의 경영의 어려운 점도 많다.
첫째, 경영 효율성의 문제다. 경영이 매우 복잡하다. 따라서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와 같은,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기업가나 기업이 존재해야 지휘가 가능하다. 최종소비재 생산기업이 이 역할을 맡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외부 충격에 의해 서플라이 체인이 손상되면 복구가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일본 쓰나미 이후 제조업체에 대한 영향이 더욱 커졌다는 비판이 있다.
둘째, 사회적 책임의 문제다. 사회적으로 보면, 협력업체에 대해 군림하고, 납품단가를 자의적으로 낮추고, 지식재산권을 포함한 혁신과 창의성을 독점하고, 신규 사업자 진입을 막는 등 요즘 흔히 지적되는 대기업 중심 생태계의 문제점도 모두 ‘닫힌 생태계' 체제에서 나온다. 사회책임경영을 통해 이를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사회의 비판에 직면하게 될 위험에 놓여 있는 게 이 닫힌 체제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대학원장은 최근 한국 벤치기업이 ‘삼성동물원'에 갇혀 있다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생태계를 더욱 열어젖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인식은 정확하지만, 추세는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 기업들는 오히려 점점 더 닫힌 생태계로 전환하고, 그 장점을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대기업이 닫힌 생태계 내에서저질러 온 횡포가 워낙 크다는 점에서 안 교수의 진단은 정확하다.
하지만 ‘닫힌 생태계’ 전략의 유효성을 당분간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엠의 열린 생태계 전략이 지엠을 결국 위기에 몰아넣은 것을 기업들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무작정 열어젖혔다가는, 애플이나 구글이나 한국 대기업들도 그런 처지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결국 대세는 최소한 일부라도 닫혀 있는 생태계로 가게 될 것이다.
물론 그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산업생태계 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갑을관계를 중심으로 재편되며 심각한 불공정과 갈등 상황을 맞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이제 사회책임경영으로 생태계 내부의 상생을 추구하는 일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산업생태계 내의 상생 노력이 시대정신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페이스북 www.facebook.com/lee.wonjae.fb
트위터 @wonjae_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