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1.08.08 수정: 2014.11.12
2011년 8월 6일, MBC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에 출연했습니다. 주제는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었습니다. 진행자인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과 시원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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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mbc.com/broad/radio/fm/economy/aod/
(홍기빈)
대한상공회의소가 현대경제연구원과 함께 기업호감지수를 조사했더니, 지난해 51.5점에서 올해는 더 하락한 50.8점을 기록했습니다. 기업들은 반기업 정서가 높아졌다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하는데, 왜 호감도가 낮고, 더 낮아졌을까요?
(이원재)
한 마디로 기업이 수출 많이 하고 돈을 많이 벌어온다고 하니까 사회에도 많은 기여를 할 것이라고 기대 수준을 높였다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실망감이 표출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기업호감지수란 국민들이 기업에 대해 호의적으로 느끼는 정도를 지수화한 것으로 △국가경제 기여 △윤리경영 △생산성 △국제 경쟁력 △사회공헌 등 5대 요소와 전반적 호감도를 합산해 산정하는 것입니다. 100점에 가까우면 호감도가 높은 것이고 0점에 가까우면 낮은 것으로 해석합니다. 긍정이면 100, 부정이면 0, 반반이면 50점을 주고 평균을 계산하는 것이지요.
추이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지수는 2003년말 30.2, 2005년말 48.5, 2006년말 50.2까지 상승. 2008년 하반기(45.6점) 부터 2009년 상반기(50.2점)와 하반기(53.8점), 2010년 상반기(54.0점)까지도 연속 상승했지요. 그러다가 2010년 하반기(51.5점)에 하락세로 돌아선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떨어졌습니다.
한 마디로 대기업이 수출도 많이 하고 이익을 많이 낸다니까 국민들이 기대감을 한껏 키웠다가,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는 실망감에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지요.
(홍기빈)
특히 사회공헌활동은 37점, 윤리경영실천은 23점으로 매우 낮게 나오고 있습니다. 이 소장님은 평소 기업의 사회적 책임, 영어 약자로 CSR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연구소에서 국제포럼도 주최하고 했는데, 우리 기업들의 사회책임 경영 수준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원재)
구성요소별로 살펴보면 국제 경쟁력(82.8점), 생산성향상(66.6점), 국가경제기여(50.9점)는 평균 점수를 웃돈 반면 사회공헌활동(37.0점), 윤리경영실천(23.0점)은 평균을 밑돌았습니다. 국민들이 정확하게 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겨레경제연구소는 아시아 맥락에 맞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정의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합니다. 결과물로 우수기업 리스트인 'East Asia 30'도 작성하고, 아시아 석학이 참석하는 아시아미래포럼을 매년 열어 이런 내용을 공표합니다.
실제로 한국기업들은 CSR을 요즘은 많이 이야기합니다. 대기업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그러나 직접 만나 보면, 한국 기업들은 아직도 사회적 책임이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회에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눔’이라는 게 그 단적인 표현입니다.
책임과 나눔은 다르지요. 기업도 개인과 마찬가지의 법인입니다. 사람이 법만 지키면서 사는 게 아니지요. 해야 할 책임이 있어요. 가장으로서의 책임, 지역사회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책임, 회사 직원으로서의 책임 등등. 기업도 그런 게 있습니다. 이건 번 돈이 남아서 나누어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홍기빈)
이제는 기업들도, 사회책임경영을 해야 한다.. 그래야 오래 가고 성장할 수 있다.. 이걸 모르지는 않지 않습니까?(왜 잘 안될까..)
(이원재)
두 가지 문제, 즉 내적으로는 진정성, 외적으로는 사회 분위기 문제가 있습니다.
내적 동기 문제 먼저 보지요. 기업의 진정성이 떨어집니다. 사회와 소통하는 일은 늘 뒷전입니다. 주주에게 배당하면서 노동자를 정리해고하는 이번 한진중공업의 결정 같은 경우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대기업 경영자들이 내심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교과서부터 시작해서 대학 경영학과까지 기업과 관련된 모든 교육이 기업의 제 1 목표는 이윤극대화고 나머지는 부차적이라고 가르칩니다. 틀렸습니다. 기업의 제 1 목표는 정하기 나름입니다. 주주를 위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기업도 있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도 많을 수 있습니다.
다음은 외적 동기 문제입니다. 노동조합이 약합니다. 조직률도 낮고요. 정부도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웁니다. 기업을 대변하는 전경련 경총 등은 목소리가 크고 재원도 풍성합니다. 언론사에 광고도 하고 기자들 데리고 해외 연수도 갑니다. 반면에 환경단체 인권단체 등 이와 다른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그룹은 목소리가 작고 재원도 열악합니다. 이런 상황이 1998년 금융위기 이후 십수년을 지속하니, 우리 사회 생각의 균형이 완전히 불균형해져 버렸습니다. 기업을 옹호하는 생각만 있고, 그 책임을 이야기하고 견제할 수 있는 지식 생산 기지가 없습니다. 내적 동기가 있는 기업인이라도, 사회책임경영을 나서서 하기가 쑥스러울 정도입니다.
(홍기빈)
기업의 주인이라고 하면 주식을 가진 주주, 특히 대주주만을 생각하기도 하는데, 사실 기업의 이해관계자는 주주만 있는 게 아니죠?(이해관계자란.. 진정한 CSR이란..)
(이원재)
기업은 주주 뿐 아니라 노동자, 소비자, 지역사회, 자연환경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맞닥뜨려 있습니다.
여기서 ‘기업’이 뭐냐가 중요합니다. 기업이란 경영자와 이를 보좌하는 스탭조직이라고 보면 됩니다. 고용주로서의 기업입니다. 이들은 단순히 주주의 대리인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리 사회에는 지배적이지요.
그러나 원래 기업가, 경영자는 훨씬 더 능동적인 존재입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상충되는 이익을 조정하며,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수립하고 실행하는 일을 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균형있는 경영을 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대부분 기업의 문제가 주주 이익만 무리하게 대변하다가 생깁니다. 주주 이익을 기계적으로 대변하다 보면 무리한 해고라든지 환경파괴라든지 소비자 권익 무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진정한 사회책임경영(CSR)이란, 주주 노동자 소비자 지역사회 환경 등 이해관계자의 다양한 욕구를 균형 있게 조정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홍기빈)
그런 관점에서 한진중공업 사태는 노동운동사뿐 아니라 우리 기업사에도 남을 일인 것 같은데, 사회책임 경영 측면에서는 이 사태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습니까?
(이원재)
전형적으로 주주의 이익을 기계적으로, 무리하게 대변하다가 생겨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남호 회장은 한국 경영자의 수준을 보여줍니다. 이런 식이라면,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애초부터 한국의 재벌 경영자들에게는 없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정부나 시민사회가 개입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 3자 개입을 비난하는데, 지금 한진중공업 상황이야말로 제 3자 없이는 경영이 불가능한 경영 부재 상태라고 보면 됩니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어떻게 그리 단순하게 경영을 하려 하는지, 두려울 정도입니다.
(홍기빈)
지금 여당과 보수적인 신문에서까지 조남호 회장이 빨리 귀국해서 청문회에 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경영자로서의 책임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원재)
최근 한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이른바 친박 계열의 정치인이 주관한 토론회인데, 참석자도 50-60대 이상의 장년이었습니다. 초반 진행을 보고 진보진영 토론회인 줄 알았습니다. 대기업을 성토하는 분위기가 매우 고조되어 있습니다.
지금 국민의 정서는 보수 진보 세대 가릴 것 없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기업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의 이른바 2세 경영자들이 명예를 회복하려면 파격적인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삼성이고 SK이고 LG고 간에 위기감을 느껴야 합니다.
(홍기빈)
그런가 하면 이번 주에, 삼성그룹이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 사업, MRO사업을 하는 아이마켓코리아의 지분을 팔고 철수하기로 했는데, 정부나 사회의 상생 요구가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원재)
뒤늦게나마 심각하게 고려하는 듯해 반갑습니다만, 떠밀려서 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중요한 결정을 하면서도 어떻게 이렇게 비전략적이고 비전향적인 방법으로 할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홍기빈)
말씀대로 기업들의 이런 결정 과정을 보면, 떠밀려서, 마지못해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 이러면 같은 결정을 하고도 감동을 줄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원재)
예를 들면 스웨덴의 발렌베리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발렌베리 그룹은 스웨덴의 삼성이라고 보면 됩니다. 상당수 업종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룹은, 1930년대 설립자 가족인 발렌베리 일가가 보유주식 전체를 비영리 재단법인에 기부하면서 전체적으로 비영리 재단의 지배를 받는 기업이 됐습니다. 비영리 재단이므로, 생기는 이익은 모두 사회에 기부됩니다. 그 대신 발렌베리 일가는 경영권을 갖게 됩니다.
경영권을 유지하는 대신, 기업으로부터 생기는 개인적 부를 사회에 헌납한 셈입니다.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경영권을 개인적 부를 창출하고 있는 한국 사회 분위기와 전혀 다릅니다. 발렌베리 정도의 파격적 선택이 나와야 감동을 줍니다. 발렌베리 역시 오랜 기간 독점 논란과 비판에 시달리다 내린 결단이었습니다.
(홍기빈)
기업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경쟁력을 쌓고 밖에 나가서 열심히 싸우면서 수출하는데 안에서 발목을 잡는 건 너무하다.. 이런 생각이 강한 것 같습니다.
(이원재)
국민들 입장에서는, 박수 치고 희생하면서 응원해 줬는데 지금 우리에게 돌아온 게 뭐냐는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이지요. 열심히 싸우는 것 다 압니다. 그래서 다 지원해줬습니다. 한국 대기업만큼 지원 많이 받은 곳이 어디 있습니까. 기본적으로 불하로 시작했습니다. 차관 몰아 주고, 사실상 독점 허용해주고, 토지나 공장이나 전기나 석유 같은 인프라와 원자재를 싸게 몰아 줬습니다. 세금도 많이 내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이익을 내고 성공하니까, 입을 싹 씻는 것 아니냐는 정서가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다른 부문에 지원하지 말라는 이야기까지 하지 않습니까? 중소기업이나 비영리나 사회적기업 등 아직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곳에 시장원리를 적용하라고 하지요. 대기업 본인들은 지원으로 성장했는데 말이지요.
기업이 이익을 내면 국민 모두가 좋은 거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살펴볼까요? 기업의 경제적 성과는 대체로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사회 전체에 긍정적 영향을 줍니다. (1) 고용창출과 임금을 통한 분배 (2) 주가 차익 및 배당을 통한 분배 (3) 재투자를 통한 기술 혁신. (1) 임금으로 분배한다고요? 수출 대기업, 첨단기술기업일수록 일자리 창출 안 한지 오래 됐습니다. (2) 주가 차익? 외국인투자자와 오너 일가를 빼면 버는 사람 많지 않습니다. (3) 재투자? 현금만 보유하고 있고, 자녀 소유 기업에 일감 몰아주며 재투자하는 데만 씁니다. 대기업에 모험적 기업가 정신 사라진 지 오래 됐습니다.
(홍기빈)
최근 최중경 지식경제부장관은 기업 임원들의 연봉이 너무 높다면서 경영진의 월급을 줄이는 대신 청년층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이런 지적을 했는데, 이건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원재)
최장관을 포함해서 정부는 말만 하지 말고 기본적인 것부터 제도를 갖춰야 합니다. 우선 경영자 연봉을 공개해야 합니다. 미국식으로 말이지요. 한국거래소와 코스닥 시장에서 상장요건으로 대표이사 연봉 공개를 걸면 됩니다. 얼마인지 알아야 많은지 많지 않은지 판단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정부 부처들은 법도 만들 수 있고 행정력을 발휘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시스템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전화와 말로 대부분의 일을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의지가 없는 것입니다. 의지가 있다면 시스템과 정책으로 해야 합니다.
(홍기빈)
과거에 미국에서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 좋은 것이다’라는 말이 있었죠. 우리나라에서도 ‘대기업에 좋은 것은 대한민국에 좋은 것이다’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이 인식이 갈수록 없어지고 있습니다. 더 많은 국민들이 기업들에 호감을 가지게 하려면 기업들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이원재)
첫째, 기업인들은 두려움을 버려야 합니다. 요즘 대기업들을 보면, 특히 2, 3세 경영을 앞두고 있거나 하고 있는 오너 일가를 중심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습입니다. 무슨 두려움이냐. 경영권 세습 못 할까봐 두려운 겁니다. 모험적으로 투자도 못 합니다. 실패해서 세습 못 할까봐서요. 이게 기업입니까? 대기업에서 기업가정신 사라진 지 오래 됐습니다.
경영권 세습 못 하면 어떻습니까. 신사업에 몸을 던져 승부를 봐야 합니다. 대기업 오너 일가가 계속 기업을 지배하려면, 경영자로 우뚝 서야 합니다. 당당하게 주주와 사회의 평가를 받고, 실패하면 받아들이고 떠나야 합니다. 이런 기업가정신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둘째, 기업만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사회가 기업에게 외적 동기를 줘야 한다. 가장 중요한 외적 동기는 투자자와 소비자로부터 나옵니다. 국민연금이 기금 전체 운용 기조를 사회책임투자로 바꿔야 합니다. 사회책임경영을 잘 하는 기업에 우선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0년 가량 장기적으로 보면 이게 더 수익률도 높이는 길입니다. 그러면 기업도 변화할 것입니다. 또한소비자는 윤리적 소비를 펼쳐야 합니다. 과거 나이키는 아동노동으로 생산하다가 소비자의 불매운동으로 태도를 바꿔 사회책임경영을 시작했습니다.
셋째, 일방적으로 기업 이야기만 하는 삼성경제연구소 등 기업연구소, 전경련 등 경제단체 산하 연구소 등과 다른 목소리가 나와야 합니다. 전문적인 기업 사회책임경영 연구 싱크탱크가 더 커져야 합니다. 이런 생각이 연구 보고서로, 초중등학교 교과서로, 텔레비전 드라마로, 뉴스로 전파되어야 합니다. 아직 힘이 너무 약합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하는 한겨레경제연구소는 예산규모가 삼성경제연구소의 100분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활동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대기업 사회책임경영의 문제는 앞으로 5년, 10년 동안, 가장 큰 이슈가 될 것입니다. 한국 기업이 역동성과 사회적 책임을 함께 가질 수 있는 균형점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경제도 살고 사회도 통합됩니다. 사회책임경영(CSR)은 그래서 지금 정말로 중요한 화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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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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