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착한경제] 사회의 귀환

HERI 2014. 11. 12
조회수 5133

등록: 2013.04.12 수정: 2014.11.12

99%의 경제
HERI의 시선

사람은 그가 한 말 때문에 기억에 오래 남기도 한다. 며칠 전 타계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도 오래 기억될 말을 남겼는데, 바로 “사회, 그런 것은 없습니다”(There is no such thing as society)였다. 뜬금없어 보이니까 1987년 10월 <우먼스 오운>이란 잡지에 한 말을 옮겨보자.


“너무 많은 사람이 자기 문제를 정부가 해결해 줘야 한다고 믿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왔습니다. …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사회에 전가합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사회, 그런 것은 없습니다. 개인으로서 남자와 여자가 있고 그리고 가족이 있습니다. … 누구도 먼저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권리 따위는 없습니다.”


‘영국병’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된 복지 의존성에 진저리를 치는 그녀의 마음이 묻어난다. 이 말은 또 시장자유주의의 신념을 간명하게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사회는 단지 개인을 모두 합해놓은 것일 뿐이며, 개인이 이기적 선택을 하면 시장이 ‘보이지 않는 손’의 미덕을 발휘해 모두가 좋아지리란 믿음 말이다.


그런데 대처가 뭐라 했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비가 퍼부을 때 모두 나와 둑을 높이듯 인간은 늘 협력해서 무언가를 한다는 뜻이다. 복잡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사회는 개인의 행동을 단순히 모아놓은 것을 넘어서는 또다른 무엇이다. 경쟁만 있는 게 아니라 협력과 공진화(co-evlolution)도 사회의 구성 원리이다.


인간의 이런 사회성이 잘 구현된 것이 공적제도들이다. 공립학교, 공영방송, 공공의료, 공공운송, 공립도서관, 박물관, 공원 등은 공동체가 함께 한 걸음 나아갈 때 개인의 성취도 의미가 있다는 믿음을 깔고 있다. 이런 공적기구들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진보적 정신이 만들어낸 발명품이었다.


하지만 개인을 앞세우고 사회를 부인하는 대처류의 신념이 신자유주의란 이름으로 한 세대를 휩쓸었다. 그 결과는 공공성의 현저한 약화였다. 부의 양극화 속에서 부유층은 선택권을 내세워 사립학교나 사설 의료기관을 옹호한다. 자신들이 가지도 않을 공립학교나 공공 의료시설에 쓰일 세금을 내는 게 당연히 아깝다. 재원이 부족한 공공기구들은 더 쪼그라든다. 대처가 말한 ‘개인’은 공공성의 약화란 ‘미끄러운 비탈’로 들어가는 주술인 셈이다. 최근 논란이 된 진주의료원 폐쇄 결정도 이런 흐름과 맥이 닿아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전후해 위축된 사회성을 복원하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대처가 몸담았던 영국의 보수당은 2010년 집권하면서 ‘빅 소사이어티’를 화두로 내걸었다. 시장도 국가도 하기 어려운 일을 사회가 해결하자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같이 인간의 협력적 속성에 기대는 경제의 영역이 커가는 것도 ‘사회의 귀환’을 보여준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원문링크 :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823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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