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윤석열 대통령이 1월30일 열린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KT, 포스코 등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기업들을 향해 “소유가 분산돼 지배구조에 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경우에는 절차와 과정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줘야 한다”고 정부의 개입 의사를 밝혔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월30일 열린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KT, 포스코 등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기업들을 향해 “소유가 분산돼 지배구조에 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경우에는 절차와 과정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줘야 한다”고 정부의 개입 의사를 밝혔다. 연합뉴스

곽정수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케이티(KT) 차기 최고경영자 선임 과정은 한국 기업 지배구조 역사상 최악의 사례로 기록될 것 같다. 이른바 ‘주인 없는 회사’인 케이티에서 경영자의 ‘이권 카르텔’과 정권의 탈법적 인사개입이 얽히며 ‘막장 드라마’를 보여준다.

구현모 케이티 대표는 비자금 조성과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으로 재판을 받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하지만 책임을 지기는커녕 ‘셀프 연임’을 강행하다가 권력 개입의 빌미를 제공했다. 케이티 이사회도 ‘깜깜이 심사’ 끝에 구 대표를 뽑아 경영진 견제 역할을 망각했다.

윤석열 정권의 과오는 그 이상이다. 정부가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과 법치 구현에 힘써야 하는 검찰을 동원해서 민간기업 인사에 개입하는 것은 결코 ‘정상적인 국가’라고 할 수 없다. 윤 정권이 케이티 인사에 개입하는 진짜 목적은 지배구조 개선이 아니라 입맛에 맞는 ‘낙하산 인사’ 때문이라는 의심을 산다. 정권이 바뀌면 당연히 수사 대상이다. 오죽하면 윤 대통령을 무조건 옹호하던 보수언론들까지 ‘관치’라고 비난할까.

검찰을 앞세운 인사개입은 15년 전 이명박(MB) 정부와 복사판이다. 엠비는 ‘주인 없는 회사’인 포스코의 이구택 회장에게 사퇴를 종용하고, 말을 듣지 않자 검찰을 동원해 끝내 목적을 달성했다. 기업인에게 불법 혐의가 있으면 엄정한 수사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는 게 법치국가의 기본이다. 하지만 검찰이 그동안 케이티 경영진에 대한 고발과 언론 보도를 외면하다가 이제야 칼을 빼드는 것은 그 의도를 의심케 한다. 검찰의 직접수사권 축소에 대해 ‘검수완박’이라고 반발하더니, 결국 ‘권력의 사냥개’가 되려던 것인가?

윤 정권의 파행은 앞서 우리금융지주 회장 선임 때부터 예고됐다. 명분은 지배구조 개선이었지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을 앞세운 관치로,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을 새 회장에 앉히는 ‘낙하산 인사’로 귀결됐다. 이는 국제적으로도 망신거리다. 주총 시즌을 맞아 방한한 외국 투자기관들은 이구동성으로 윤 정부가 겉으로는 금융산업 발전, 지배구조 개선을 강조하면서, 실제로는 관치를 하는 것을 지적하며 진짜 금융정책 방향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입에 달고 사는 윤 대통령이 뭐라고 답할지 궁금하다.

윤 정권이 국민연금을 케이티 압박에 동원한 것은 명백한 ‘자기부정’이다. 검사 시절 국민연금에 손해인 것을 알면서도 권력의 지시대로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한 기금운용본부장을 기소한 것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는 글로벌 추세이다. 하지만 의결권 행사는 독립적으로 이뤄져야지, 정부가 개입하면 안 된다. 국민의힘도 문재인 정부의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강화에 대해 ‘연금 사회주의’라고 공격하지 않았나.

윤 대통령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상근 전문위원에 검사 출신을 선임한 것은 ‘막장 드라마’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다. 윤 대통령은 앞서 지난해 최악의 성적표를 낸 국민연금에 수익률 제고 대책을 지시했다. 독립성과 전문성이 중요한 국민연금의 운영에 정부가 간섭하면,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기와 같다. 대통령이 국민연금 수익률 제고를 바라면서 어떻게 검사 출신을 기용할 수 있는지 ‘정신세계’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과거 정권은 케이티·포스코와 금융회사 같은 ‘주인 없는 기업’을 ‘권력의 전리품’으로 여겼다면, 윤 정부는 한술 더 떠 국민연금까지 넘본다.

윤 대통령이 ‘주인 없는 기업’의 지배구조만 문제 삼고, 이른바 ‘주인 있는 기업’인 재벌의 지배구조에는 침묵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한국 기업이 실적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인이 재벌의 후진적 지배구조라는 것은 상식이다.

윤 정부의 관치는 케이티와 우리금융에만 그치지 않을 것 같다. 벌써 포스코가 입길에 오른다. 윤 정부의 관치는 ‘민간 중심 경제’, ‘자유시장 원리’를 강조한 공약과도 배치된다. 지난 1년간 정부와 공공기관 요직에 기용된 검사 출신이 70여명에 이른다. 윤 대통령은 ‘주인 없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걱정할 게 아니라, 능력과 도덕성에 대한 엄중한 검증 없이 검사라는 이유만으로 요직에 기용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무시하는 ‘정부의 지배구조’부터 살펴야 한다. 요즘 대한민국은 ‘무면허 기사’가 운전하는 차와 비슷한 형국이다. 4년 뒤 나라를 정상화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지 걱정이다.

jskwak@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835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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