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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현

저널리즘책무실장

(언론학 박사)


9000개. 국내 인터넷신문사 개수다. 감염병으로 경제가 어려웠던 지난해에도 700개 넘게 늘어났다. 4월말 방송된 <한국방송>(KBS)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질문하는 기자들 큐(Q)’는 20여만원에 등록과 홈페이지 제작을 해치우고, 기사 한 줄 안 쓰고도 언론사 행세를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들의 돈줄은 지방정부나 기업의 홍보비. 귀찮게 하니까 간간이 몇백만원씩 할당한다고 한다. 언론이 ‘민폐’가 된 것인데, 서울의 큰 언론사라 해서 큰소리칠 일 없다.

인터넷 시대에 언론 생태계는 황폐해졌다. 광고와 구독료 수입이 줄어들며 저널리즘의 질도 같이 떨어졌다. 언론이 계속 이렇게 망가져도 괜찮을까? 그렇지 않다. 정론이 없이는 민주주의도, 복지국가도, 통일도, 기후변화 대응도 어렵다. 문제는 모두가 바닥을 향해 달려가는 이 판에서 품질로 대결할 유인이 별로 없는 것이다. 최근 국내외에서 논의가 활발해진 ‘언론 바우처’에 주목하는 것은 시민의 힘으로 언론의 질을 높이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언론 바우처 제도는 정부나 지방정부의 홍보비 일부를 시민에게 바우처로 돌려주고, 마음에 드는 언론사에 정기적으로 후원하게 하는 것이다. 지원할 언론사와 금액을 시민들이 정하기 때문에 언론의 독립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노력하는 언론에 보상하는 제도다.

2019년 미국 시카고대 스티글러센터 디지털플랫폼연구위원회 보고서는 디지털 시대의 저널리즘 복원을 위해 재무부가 성인 한명당 연 50달러의 언론 바우처를 발행할 것을 제안했다. 시민들은 바우처를 받으면 좋아하는 언론에 5달러씩 열번에 걸쳐 지원할 수 있다. 지원받는 언론사는 △정규직 언론인 1명 이상 고용할 것 △공적 관심사에 대해 보도할 것 △소유와 수익구조를 투명하게 공시할 것 △윤리강령을 준수할 것을 요건으로 했다. 특정 언론사가 바우처를 독식하지 않도록 한 회사당 1%를 한도로 했다. 만일 <뉴욕 타임스>가 1% 한도대로 바우처를 지원받으면, 이 회사 소속 기자 1700명 가운데 1000명의 인건비를 충당하는 수준으로 파악됐다.

국내에서도 언론 바우처 제도 도입을 위한 연구와 제안이 있었다. 경기도의회 의뢰로 강남훈 교수(한신대) 팀은 2019년 초 ‘경기 언론 주권자 배당’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냈다. 18살 이상 모든 주권자에게 쿠폰을 지급하고, 후원하고 싶은 기사나 언론사에 제공하는 방식이다. 우선 경기도 홍보비 예산의 10% 정도인 10억~20억원으로 시범사업을 해보고 전국으로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도 지난해 4월 ‘미디어 바우처’ 보고서를 내고 1만명의 시민 패널에게 5만~10만원의 바우처를 지급한 뒤 모니터링하는 실험을 제안했다. 재단은 본격 시행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으로 디지털 광고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에 있는 플랫폼 사업자에게 출연금을 징수하거나, 디지털 광고에 세금을 부과하는 등의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언론 바우처 제도는 뉴스의 품질 향상과 언론의 신뢰를 높이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언론진흥재단 김선호 선임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바우처를 기부받기 위해서는 경영상의 투명성과 윤리강령 실천이 언론사에 요구된다”며 “더 많은 바우처를 기부받기 위해 언론사는 자발적으로 시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라 기대했다. 또 언론 바우처를 특정 지역에서만 쓸 수 있는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지방정부 홍보 예산에 빨대 꽂는 언론이 아니라 주민이 인정하는 지역 언론이 커가는 토양이 될 수 있다. 아울러 탐사보도 등에 특화된 소규모 언론 벤처에는 후원금이 혁신의 생명수가 될 수 있다.

한국 언론 신뢰회복 프로젝트로서 언론 바우처는 시도해봄직한 아이디어다. 이런 재원의 흐름이 새로 생기면 신뢰에 바탕을 둔 후원 모델이나 구독 모델을 추진하는 <한겨레>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들에 큰 힘이 될 것이다. 기본소득을 작은 지역에서 몇년간 사회실험 하듯, 언론 바우처도 작게 실험을 해서 그 성과와 방법을 검토하면 좋겠다. 물론, 정파적인 독자에 언론이 지나치게 휘둘리는 부작용도 예상된다. 결과가 좋으면 내년 출범하는 새 정부의 주요한 언론지원 정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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