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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전기는 가능하다>, 하승수 지음/ 한티재(2015)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고리원전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 참석해 어린이들과 정지 버튼을 누르는 행사를 하고 있다. 부산/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고리원전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 참석해 어린이들과 정지 버튼을 누르는 행사를 하고 있다. 부산/청와대 사진기자단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난 뒤 독일 제2공영방송 <체트데에프>(ZDF)는 일본 사회의 어떤 구조적 특성이 이런 참사로 이어졌는지 탐사해 이듬해 다큐멘터리로 방영했다. 지금도 유튜브에 들어가 ‘후쿠시마의 거짓말’을 입력하면 한글 자막과 함께 다큐를 볼 수 있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총리였던 간 나오토는 제작진과 인터뷰에서 원전사고가 났을 때 도쿄전력을 포함한 ‘원전족’이 계속 거짓말을 하고 은폐하려 해 상황파악이 어려웠다고 증언한다. 사고 전부터 정계, 관계, 언론계 등 요소요소에 포진한 ‘원전족’은 정부의 전력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원전에 대한 불리한 여론을 막아왔다는 것이다. 정치가는 조용히만 있으면 전력회사에서 헌금이 들어왔다. 도쿄전력 부사장 자리는 1962년 이래 원전을 감사하는 업무를 맡은 자원에너지청 고위 퇴직자의 ‘지정석’이었다. 촘촘한 이해관계의 그물망이 결국 위험에 눈을 감는 사회를 만든 것이다.

“10~20년간 원자력의 위험을 알리려는 사람에게 온갖 종류의 압력이 많이 늘었습니다. 대학의 연구자가 원전에는 위험이 따른다고 말하려고 하면 출세의 찬스는 절대 돌아오지 않습니다.” 간 나오토는 이런 행태에 분노가 치솟아 뜯어고치려 했으나 요소요소에 포진한 ‘원전족’들이 총리 밀어내기를 시도했다고 밝힌다.

일본 옆에 있는 세계 6위 원전대국 한국은 어떠할까? 녹색당원이기도 한 하승수 변호사가 쓴 <착한 전기는 가능하다>를 보면 우리도 사정이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전기라고는 전등 갈아 끼우는 것밖에 모르던 하 변호사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밀양송전탑 갈등을 접하면서 알아간 내용을 127쪽 분량의 소책자에 담았다.

그를 처음 놀라게 한 것은 상식의 전복이었다. “전기가 꼭 필요해서 원전을 짓고 송전탑을 짓는 것도 아니었다. 실제 현실을 알고 보니 순서가 거꾸로였다.” 즉 전력 정책에 원전 관계자, 건설회사, 민자발전회사의 입김이 들어가다 보니 전력 수요를 과하게 예측하고, 그에 맞춰 원전이나 화력발전소를 필요 이상 많이 지어왔다는 것이다. 또, 이런 전기를 나르기 위해 고압 송전탑을 세우고, 소비를 촉진하려 원가 이하로 기업에 산업용 전기를 공급하는 패턴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원전, 화력발전이 들어서는 지역이나 거대 송전탑이 지나는 지역의 목소리는 정책에 잘 반영되지 않았다. 특별법에 의해 건설 용지는 반강제 수용됐으며, 송전선이 지나는 지도위의 금은 주민 의사와 관계없이 그어졌다. 공청회가 열리긴 했으나 그 때문에 계획이 뒤집힌 적은 거의 없었다. 이렇게 한 결과 세계에서 원전 밀집도가 가장 높은 나라가 됐다는 것이다.

정부의 전력 수요 예측은 과도하다는 비판을 그동안 받아왔다. 2030년 최대전력 수요 예측은 2017년 수요 예측에서 원전 11기를 짓지 않아도 될 만큼 줄어들었다.
*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정부의 전력 수요 예측은 과도하다는 비판을 그동안 받아왔다. 2030년 최대전력 수요 예측은 2017년 수요 예측에서 원전 11기를 짓지 않아도 될 만큼 줄어들었다. *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원전이든 금융이든 특정 분야가 네트워크 화해 정치와 정책을 움직이는 것이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 징후 중 하나다. 이탈리아 정치학자 노르베르트 보비오는 ‘투명성’과 ‘가시성’을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로 들었다. 따라서 ‘원전족’이나 글로벌 금융투자 세력 같은 ‘보이지 않는 힘’(invisible power)의 부활은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약속위반’(broken promise)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흔히 이런 보이지 않는 힘은 늘 ‘기술적 전문성’을 앞세운 관료주의나 전문가 주의를 동반한다.

이런 점에서 하승수는 전력에서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원전이나 초고압 송전선을 건설하지 않아도 되는 대안을 국민의 합의를 통해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규모 발전소를 특정 지역에 몰아 짓고 이를 초고압 송전선으로 멀리 실어 나르는 중앙집중식 전력 모델에서 벗어나, 소비지 근처에서 신재생에너지가 많이 활용되는 지역분산형으로 전력 모델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재생에너지 활용 확대, 에너지 효율화, 에너지 절약의 3박자를 병행해 지난 5년간 원전 2기 분량의 에너지량 절감 효과를 거둔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처럼 조금씩 틀을 바꿔가는 노력을 하자는 것이다. 독일의 탈핵 결정은 지역에서부터 시작한 이런 노력이 쌓여서 가능했다.

‘탈원전’을 둘러싼 논란이 2017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각계에 포진한 원전옹호론자들은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원전 감축이 부당하다며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다. 탈원전은 나라의 에너지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자 우리의 생각도 바꾸는 일이다.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누가 땀과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 채 돈을 내고 소비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익명성’이다. 탈원전은 그 익명의 소비자가 지속가능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한 발 나오는 일이기도 하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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