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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탱크 맞대면] 한국 인권의 현주소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

“국가권력은 인권위의 취약한 빈틈을 찾아내어 그 활동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인권을 존중하는 ‘정치’와 이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강력한 ‘시민사회’다.”

 

유엔은 오래전부터 국제인권을 국내에서 이행하기 위한 방법으로 ‘국가인권기구’의 설치를 각 회원국에 권고해왔고, 이러한 흐름이 우리 시민사회의 강력한 요구와 결합되면서,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인권위는 한편으로 다른 국가기구로부터 독립하여 기능하고, 다른 한편 시민사회와 긴밀하게 협력함으로써, 인권침해를 구제하고 인권을 증진시키는 국가기구이다. 문제는 인권위의 취약한 존재기반이다.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언제든지 그 기능이 무기력해질 수 있는 소지가 있고, 또 ‘국가’기구라는 조직 형식 때문에 언제든지 국가권력에 의해 그 독립성이 침해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취약성 때문에 많은 나라의 인권위들이 흥망성쇠를 겪곤 한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권위 설립 논의가 본격화되었던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인권대통령’을 표방한 정부였지만, 인권위를 설립하겠다는 여당의 의지는 미지근했고 힘 있는 행정부처들의 저항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인권활동가들의 단식농성과 시위 등 강력한 시민사회의 저항이 없었다면 아마 인권위는 설립조차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우여곡절 끝에 2001년 인권위가 출범했지만, 원래 구상대로 이상적인 인권위가 설립된 것은 아니었다. 일부 인권단체들이 인권위 구성 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되었고, 몇몇 인권위원 자리는 ‘인권’위원으로서의 자질이 의심되는 사람들이 차지했다. 직원 채용 과정에서도 문제가 지적되었고, 인권위의 관료화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급기야 인권위와의 협력을 거부하는 인권단체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권’이라는 이름을 달고 운영되는 ‘국가기구’의 위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인권위가 문을 열자마자 수많은 인권진정이 쏟아졌다. 인권의 사각지대인 교도소, 유치장, 사회보호시설 등에서 숱한 인권침해 사례가 발굴되었다. 한국 사회의 굵직굵직한 문제들이 인권의 이름으로 인권위의 심판을 받았다. 국가보안법, 양심적 병역거부, 사회보호법, 비정규직법,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등에 대한 인권위 결정은 우리 사회에서 이정표 구실을 했고, 법 개정이나 폐지 등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국제사회에서도 한국 인권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국 인권위는 대표적인 모범사례로 언급되기 시작했고, 인권위의 성공 비결을 배우려는 외국 사절들의 방문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인권위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순식간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대통령직 인수위가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려고 한 것은 인권위의 험난한 앞날을 보여주는 신호탄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는 인권위의 조직을 21%나 강제로 축소했고, 결국 안경환 당시 인권위원장이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일들을 국제사회에서 변론할 자신과 면목이 없다”며 인권위를 떠났다. 안 위원장이 사퇴하자, 청와대는 기다렸다는 듯이 현병철씨를 새 인권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스스로 인권 현장을 잘 모른다고 고백한 인물이었고, 잘못된 인선의 결과는 참혹했다. ‘피디수첩’ 사건, 박원순 변호사 사건, 민간인 사찰 사건, 집시법의 야간시위 금지 규정 등 정권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일들에 인권위는 눈을 감았다. 너나 할 것 없이 인권위의 ‘파행’을 말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문경란, 유남영, 조국 등 세 명의 인권위원이 줄줄이 사퇴했고, 그 여파는 61명의 인권위 전문·자문·상담위원들의 사퇴와 전직 인권위원, 전직 인권위 직원, 600여 시민단체, 300여명의 법학자·변호사 등의 항의성명으로 이어졌다. 인권위의 인권상 수상자들이 수상을 거부하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2011년 대한민국의 인권현실은 우울하기만 하다. 하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인권위를 필요로 하고 있다. 연일 증가하고 있는 인권위 진정건수가 그 바로미터다.


다행히도 문제의 해법이 복잡한 것은 아니다. 우선 현병철 인권위원장은 모든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인권위법 개정도 필요하다. 인권위법에 명시되어 있는 인권위원 자격을 실질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정부 개입의 ‘황금다리’ 노릇을 하고 있는 인권위법의 몇몇 독소조항도 개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위원장이 교체되고 법률이 개정된다고 해도 문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제도가 아무리 잘 정비되어 있어도, 국가권력은 인권위의 취약한 빈틈을 찾아내어 그 활동을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인권을 존중하는 ‘정치’와 이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강력한 ‘시민사회’다. 어쩌면 내부보다는 외부 환경이 인권위의 미래에 더 큰 변수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에 따라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것은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에 ‘끼어 있는’ 인권위의 숙명이기도 하다. 인권위의 안과 밖에서 인권위의 ‘제자리 찾기’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무너지고 있는 인권위를 그냥 지켜보고 있기에는, 우리 사회에서 인권위가 해야 하는,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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