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하이라이트

주식회사도 결국 협동조합이다

admin 2018. 03. 23
조회수 734

<기업소유권의 진화>

헨리 한스만 지음, 박주희 옮김/한국협동조합연구소, 북돋움(2017)

00503717_20180322.JPG
주주총회 시즌이다. 23일은 이른바 ‘슈퍼 주총데이’이다. 전체 12월 결산 상장사의 28%인 539개사가 이날 주총을 개최한다. 당국은 한 날에 몰아서 주총을 열면 소액주주의 경영감시가 어렵다고 보고 분산개최를 유도하지만 관행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 것 같다.

1980년대 이후 이데올로기화한 ‘주주자본주의’는 주주를 노동자, 납품업체, 소비자, 지역사회 등 기업의 이해관계자들 앞에 배타적으로 자리매김한다. 회사가 청산되면 주주는 은행 등 채권자가 챙겨간 뒤 남은 것을 받는 ‘잔여적 청구권자’이기에 위험에 상응한 권리를 누린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경제의 ‘금융화’가 진행된 80년대 이후에는 단기차익에 관심이 있는 유동적인 주주가 많아졌다. 회사의 중장기 비전이나 경영방침은 관심권 밖이라는 얘기다.


<기업소유권의 진화>에서 법경제학자인 헨리 한스만은 노동자 소유기업, 소비자 소유기업, 비영리 기업 등 시장경제에서 잘 운영되는 다양한 소유형태를 점검하면서 주식회사(투자자 소유기업)를 당연시하거나 이상화할 이유가 없음을 보여준다. 실제 주식회사의 천국일 것 같은 미국에도 소비자 소유기업이나 노동자 소유기업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한스만은 어떤 산업분야에서 특정한 기업 형태가 지배적으로 되는 이유를 ‘비용 최소화’라는 이론틀로 설명한다. 한 기업은 자본 투자자, 원료 공급자, 노동자, 소비자 등 ‘이용자’(patron)들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들 이용자는 그 기업과 ‘시장계약 관계’나 ‘소유관계’ 중 하나의 관계를 맺게 된다. 시장계약 관계에서는 시장계약비용이, 소유관계에서는 소유비용이 발생한다. 한스만의 주장의 핵심은 “이용자들이 기업과의 관계에서 두 비용의 합이 최소화하는 조직형태를 취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농산물 유통회사가 한 곳뿐이어서 생산자인 농민이 가격동향을 제대로 알 수 없고 판매자에 휘둘리는 일이 빈번해지면, 농민들은 이 유통 회사를 소유함으로써 독점에 따른 시장계약비용을 낮추려는 욕구를 갖게 된다. 이때 ‘소유’는 이사진 선임 등 공식적 의사결정권과 이윤을 가져갈 수 있는 잉여수취권 등 두 가지 권리를 갖는다는 의미이다. 이때 더 고려할 것은 나머지 비용, 즉 소유비용이다. 경영진을 세우고 감독하는 비용, 농민들이 모여서 회사의 중요 의사를 결정하는 비용 등이다. 만일 소유비용이 크지 않다면 농민은 자금을 출자해 농협 같은 협동조합 회사를 만들게 된다.

이용자 중 누가 기업을 소유하느냐에 따라 기업 형태가 결정되는데, 자본 투자자가 소유하면 주식회사, 노동자가 소유하면 노동자협동조합, 원료 공급자가 소유하면 생산자협동조합이 된다. 이렇게 보면 주식회사도 별 것이 아니라 비용 최소화의 관점에서 선택된 ‘투자자들의 협동조합’ 이라는 것이다.

“협동조합 그것 사회주의 하자는 것 아닙니까”.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논의 자리에서 정부 부처에서 나온 한 간부가 했다는 말이다. 이젠 법 시행 5년이 지나 1만3000여개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져 취약계층의 자활 등 다양한 효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협동조합과 이것이 포함된 사회적경제에 대해 ‘사회주의’, ‘좀비’ 운운하는 공격이 남아있다. 상황이 이렇기에 주식회사에 대한 한스만의 이런 시각은 신선하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37328.html#csidx6ab7ea1c3391ba28d39a140bd8d3aaf onebyone.gif?action_id=6ab7ea1c3391ba28d39a140bd8d3aaf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한겨레21] 담대한 평화가 온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한반도연구회 공동기획 좌담회 담대한 평화가 온다 남북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이후 펼쳐질 동아시아 미래를 위한 전문가 조언들… 비핵화 조급하기보다 남북 기본조약 체결과 서해안 클러스터 신설 등 교...

  • HERI
  • 2018.05.02
  • 조회수 691

“사회복지, 이제는 인권을 중심에 두어야”

2018 한국사회복지학회 춘계학술대회 ’사회복지가 말하지 않은 불편한 진실: 인권을 다시 묻다’ 과거의 시혜적·자선적 복지 패러다임에서 ‘인권 기반 사회복지’로 바뀌어야 2018 한국사회복지학회 춘계학술대회 ’사회복지가 말하...

  • HERI
  • 2018.05.02
  • 조회수 1104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조직위원회 회의 열려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조직위원회 회의가 17일 서울 중구의 한 레스토랑에서 열렸다.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하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주관하는 아시아미래포럼은 올해로 9회째를 맞으며, 올해 행사는 10월30일과 31일 이틀간 열릴 ...

  • HERI
  • 2018.04.24
  • 조회수 742

"국민연금 기금은 줄어드는 게 당연…보험료 높이는 게 바람직"

‘사회보장 최저선 권고안’ 하게메예르 명예교수 ― 연금 최고 전문가 김연명 교수 대담 현재 기금은 연금급여 29년치…1~2년치가 적당 보험료 안 올리면 급여액은 줄 수밖에 없어 노사정이 합의해 보험료 인상 시기·규모 정해...

  • HERI
  • 2018.04.17
  • 조회수 1227

"중앙정부 권한, 광역단체 아닌 기초단체에 배분해야"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의 과제 토론회 하승우 이음 연구위원 “연방제 준하는 분권국가 만들려면 주민 실제 생활 단위에 자치권 줘야” 강원택 서울대 교수 “지역마다 경제·사회·문화 특성 달라 자치구조 다양화 뒤 주민이 선택하...

  • HERI
  • 2018.04.17
  • 조회수 1214

경제 선진국 한국이 ‘복지 후진국’인 이유는

양재진 연세대 교수―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대담 '작은 복지국가 한국의 정치경제학' 출간한 양 교수 복지 발달한 유럽과 비교 분석해 국내외 화제 수출지향 산업화 구조, 저부담 조세 구조와 기업별 노조, 소선거구제도...

  • admin
  • 2018.04.13
  • 조회수 579

소소하지만 위대한 돈, 지역에 생기 불어넣는 '공동체 기금'

[더 나은 사회] 더불어 살아가는 지역 위해 ‘십시일반’ 시민단체와 사회적 경제 공동 기금 조성 지역공동체 이익과 발전 위해 운용 민간 주도 사회적 금융 생태계 씨앗 지난 1월 열린 관악공익활동가대회에서 관악뿌리기금의...

  • admin
  • 2018.04.12
  • 조회수 996

마을정치의 힘으로 '세월호 이후' 희망 찾기

[더 나은 사회] 6·13 지방선거 출사표 던진 마을공동체 활동가들 아이들 못 지킨 죄책감 ‘가만히 있으라’에 분노 등 출마 결심 이유 제각각이지만 삶을 바꾸는 게 먼저라는 인식과 생활정치의 권력 교체에 ‘공감 6·13 지방...

  • HERI
  • 2018.04.10
  • 조회수 554

사회적경제기업 신용등급, 일반기업과 달라야

제1회 사회적경제 정책포럼 현재 정부 인식은 ‘회수’를 전제 사회적경제의 공적 성격 고려해야 제1차 사회적경제 정책포럼 ‘사회적 금융의 쟁점과 과제’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려 참가자들...

  • admin
  • 2018.04.02
  • 조회수 666

주식회사도 결국 협동조합이다

<기업소유권의 진화> 헨리 한스만 지음, 박주희 옮김/한국협동조합연구소, 북돋움(2017) 주주총회 시즌이다. 23일은 이른바 ‘슈퍼 주총데이’이다. 전체 12월 결산 상장사의 28%인 539개사가 이날 주총을 개최한다. 당국은 한 날에 ...

  • admin
  • 2018.03.23
  • 조회수 734

"고민하고 공부하고 연대하며 주인이 됐다"

【더 나은 사회】 협동조합기본법 5년 좌담회 다섯명 이상이 모이면 자유롭게 협동조합 법인 설립을 허용해주는 협동조합기본법(이하 기본법)이 시행된 지 5년이 지났다. 그사이 돌봄, 택시, 관광버스,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

  • admin
  • 2018.03.22
  • 조회수 722

협동조합 생존율 결코 낮지 않아

【더 나은 사회】 협동조합기본법 발효 5년 절반 이상 정상운영, 규모화 진행 일자리 창출, 지역사회 기여 평가 지난해 12월 영등포구 자원순환센터 안에 있는 영등포구 꿈더하기사회적협동조합 작업장에서 발달장애인과 교사들이 ...

  • admin
  • 2018.03.22
  • 조회수 663

“열악한 간호사 노동환경 고치는 처방은 ‘연대의 힘’이죠”

【짬】 캐나다간호사노동조합 위원장 린다 사일러스 최근 두번째로 서울을 방문했던 린다 사일러스 캐나다간호사노동조합 위원장은 한국의 간호사에게 연대를 통한 ‘좋은 싸움’을 당부했다. 사진 송진영 연구원 “속도보다 중요한 ...

  • HERI
  • 2018.03.14
  • 조회수 708

동네 골목길마다 봄꽃처럼 움트는 도시재생 실험들

【더 나은 사회】 사회혁신가들 다양한 협력사업 진행 서울만 서른 곳, 올해 전국 100곳 이상 지역연구소 설립, 봉제마을 1년 관찰도 동네 책방, 공방 등 지역 콘텐츠도 발굴 주민 주도의 도시재생 위한 코디네이터 아이디어 ...

  • admin
  • 2018.03.08
  • 조회수 762

“공공성·사회적책임 담은 ‘좋은 일자리’ 창출하려면 사회적 대화 필수”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보건의료노조 20주년 국제 세미나 이종선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부소장 노동기본권, 일과 생활 균형, 사회적 대화 등 10개 범주로 구성한 ‘좋은 일자리’ 지표 제안 “지난해 ...

  • admin
  • 2018.03.08
  • 조회수 1428

“재범률 낮아지면 투자 수익률 오른다”…임팩트 투자를 아시나요?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영국 빅소사이어티캐피털 로널드 코헨 회장 인터뷰 일본·인도 등 아시아 정부도 임팩트 투자 시장 조성 정부, 새로운 시장 생태계 촉매제 역할에 적극 나서야 지난 22일 로널...

  • admin
  • 2018.02.27
  • 조회수 808

열린 소통, 닫힌 미래 정책으로 답하라

문재인 선택한 2030세대 6명의 문 정부 9개월 평가… 소통 능력 높이 평가하지만 부동산·비정규직·남북관계 등 정책 해법 제시해야제1201호 등록 : 2018-02-26 17:38 수정 : 2018-02-27 09:58 2017년 5월8일 저녁, 당시 문재인 더...

  • admin
  • 2018.02.27
  • 조회수 723

‘같은 듯 다른’ 문 지지자들

2016년 가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사상 초유의 국정 농단 사태를 겪은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광장 민주주의를 통해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을 탄핵한 국민들은 2017년 5월 제19대 대선...

  • admin
  • 2018.02.27
  • 조회수 718

“여기가 맛집” 깨알 정보 나누며 어느새 ‘동네 친구’

[더 나은 사회] 기획/행복한 아파트 공동체 만들기① 10대부터 60대까지 세대 뛰어넘어 동네 맛집, 세탁소, 놀이터부터 동파 대처요령 등 이야기해보니 ‘삭막한 아파트’ 아닌 ‘이웃’과 함께할 다양한 아이디어 나와 “공동체의...

  • admin
  • 2018.02.19
  • 조회수 771

“변방이 더 교조적” 떠올리게 한 한국 경제학자들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HERI의 눈 현 정부 경제정책 ‘조롱’ 넘쳐난 경제학 공동학술대회 소득주도성장은 “듣보잡”, 이유 설명도 토론도 생략 “규제 완화” 되뇌는 시장주의 처방은 게으르고 무책...

  • admin
  • 2018.02.14
  • 조회수 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