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군에 있는 대안학교 간디학교의 지주환군은 올해 고3이 되면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 친구들과 교내 협동조합을 만든 것이다. 저녁 식사 뒤 기숙사 방에서 뒹굴거릴 때 한 친구가 “요즘 협동조합 창업 바람이 분다는데 협동조합 방식으로 사업을 해 보자”고 제안했다. 이 말에 의기투합해 곧바로 함께 할 학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다. 20여명이 모여들었다. 협동조합이 뭔지 궁금해서 왔거나 단지 친구들끼리 모여 뭔가를 하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 온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매일 밤 방에 모여 의논한 끝에 ‘은협’이라 이름의 협동조합을 만들어 냈다. 1만원씩 출자금을 내고, 의사결정은 협동조합 원칙에 따라 1인 1표의 민주적 방식으로 하기로 약속했다.
맨 처음 한 것은 협동조합에 대해 함께 공부한 것. 협동조합은 일반 회사와 달리 나름의 원칙과 정신이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학과가 끝나면 정기적으로 모여 세계협동조합연맹의 협동조합 7대 원칙 등을 공부했다. 이 과정에서 ‘은협’을 어떤 규칙과 가치를 가진 협동조합으로 만들 지 의견을 좁혀갔다. 논의가 분분했으나 “사람도 자연도 즐거운 유쾌한 밥벌이를 하는 곳”으로 만들자고 뜻을 모았다. 협동조합으로 사업을 하면서 ‘공정한 거래’, ‘친환경’, ‘일하는 즐거움’, ‘스스로 일어나는 자립’ 등의 가치를 배워보자는 뜻이었다.
막상 협동조합은 설립했는데 이 회사가 무슨 사업을 할지가 문제였다. 이 또한 많은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학생으로서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사업으로 몇 개를 추려나갔다. 먼저 야심차게 시작한 첫 사업은 양계장. 학교에서 닭을 키워 달걀을 교내 제과·제빵 동아리나 요리실습 수업, 이웃 주민들에게 팔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준비가 끝날 무렵 중국에서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해 사업이 무기한 연기됐다.
실망을 털고 새롭게 시작한 것은 봄 감자 파종. 학교에서 밭 한때기를 얻어 농약을 쓰지 않고, 당번을 정해 돌려가며 물을 주며 정성껏 키웠다. 마침내 초 여름 장마 전에 두 박스의 햇감자를 수확하는 보람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들께 판매할 요량으로 자루에 보관한 감자가 자기들끼리 눌려서 군데군데 물러버린 것을 발견했다. 부랴부랴 소집된 비상대책회의에서는 “성한 것만 골라서 팔자”는 등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상품성이 떨어지는 감자니 만큼 감자전을 부쳐 친구들과 나눠 먹자는 결단을 내리고 말았다.
지군과 친구들은 비록 현실의 쓴맛을 보긴 했지만 2학기에 솔입 효소 등 새 사업을 계속 발굴해 나갈 계획이다. 지군은 “3학년인 우리가 졸업하면 후배들이 이어가고 선배인 우리들이 이끌어 주어” 학교 안에서 ‘사람도 자연도 유쾌한’ 도전이 계속 이어지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군은 이런 내용을 수기에 담아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 등이 주최하는 ‘2013 윤리적 소비 공모전’에 보냈고 청소년 분야 수상작으로 뽑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요즘 도시 아이들은 마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 같이 단조롭다. “스마트폰에 목숨 거는 아이”, “학교와 학원을 왕복달리기 하는 아이”, “학원가 치킨집이나 피자집에서 친구와 허기를 채우는 아이” 등 3개의 문장 안에 우리 아이들의 일상이 다 들어온다. 아이들은 곧 어른이 되고, 생산자로서, 소비자로서, 자기 인생의 문화적 연출자로서 살아가야 하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지는 생각할 틈도 배울 기회도 없다.
집에서 인터넷-스마트폰을 놓고 부모와 자식 사이에 매일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학교에는 정규적인 미디어 교육이 없다. 중고교의 경제교육도 화석화된 시장논리를 답습하는 교과서가 있을 뿐이어서 선택하는 학생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러니 “정작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학교에서 하나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닭에게 모이를 주고, 감자밭을 일구는 등 자연을 일궈 직접 생산을 해보고, 이를 소용되는 곳에 판매할 궁리를 하는 고등학생들. 어떻게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이 자연에도 좋고 사람에게도 좋은 지를 고민하는 간디학교의 협동조합 실험이 그래서 신선하다. 이 또한 대학가기 좋은 ‘스팩’이 아니냐는 반문도 있을 지도 모르나, “사람도 즐겁고 자연도 즐거운 유쾌한 도전”을 해본 학생이라면 느끼는 것이 많지 않겠는가?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경제커뮤니케이션 박사) bh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