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
서울 노원구청과 노원되살림네트워크, 노원사회적경제활성화추진단은 중고벼룩시장 및 자원순환 행사로 매년 ‘노다지’(노원에서 다시 쓰는 지혜) 장터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6월21일 노원구청 앞에서 열린 노다지 장터. 노원사회적경제지원센터 제공
서울 노원구청과 노원되살림네트워크, 노원사회적경제활성화추진단은 중고벼룩시장 및 자원순환 행사로 매년 ‘노다지’(노원에서 다시 쓰는 지혜) 장터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6월21일 노원구청 앞에서 열린 노다지 장터. 노원사회적경제지원센터 제공
경제학자이자 지속가능발전 연구분야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제프리 색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교수는 지난해 6월 ‘순환경제, 자원효율성과 폐기물’을 주제로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녹색주간(Greenweek) 행사에서 “2050년이면 96억명의 인구를 지탱하기 위해 현재보다 세배나 많은 자원이 필요하지만 지구의 자원은 고갈 상태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원이 채굴되고 생산과 소비를 거쳐 폐기되는 짧은 주기의 단선형 경제(linear economy)에서 벗어나 상품의 사용가치를 최대한 살려 자원이 경제 시스템 내에 오래 머물도록 하는 ‘순환경제’(circular economy)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2013년 1인당 하루 1kg 쓰레기 배출
“수도권, 재사용 기부 참여 2% 미만”

서울시, 자원순환 기반 재사용 플랫폼 추진
노원구는 근린생활권 재사용 매장 확대
지역 내 소비-재사용 순환구조 갖춰야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미덕으로 하는 소비 문화에 둘러싸여 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을 끝없이 자극하는 온갖 상품 광고가 도시를 뒤덮고 있고, 감각적인 포장과 브랜드는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시민’으로서의 삶보다는 생산-소비-폐기의 짧은 상품주기에 따라 ‘소비자’의 삶을 충실히 사는 데 여념이 없다.

사실 자본주의의 짧은 상품주기에 끌려가지 않도록 돕기 위한 사회적 노력은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사회적 기업 ‘아름다운 가게’는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운동’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나에게는 더는 필요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물품들을 기증받아 저렴하게 판매하고, 발생한 수익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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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자원순환 기반 조성을 위해 재사용 활성화 의류물류플랫폼을 연구중인 민간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홍수열 소장은 “수도권 전체 가구 중 아름다운 가게, 굿윌, 구세군 등 규모가 큰 재사용 가게 기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비율은 2% 미만으로 추정된다”며, “재사용 생태계를 확장하려면 대형 재사용 가게와 더불어 지역 기반의 소규모 동네 재사용 가게가 상호 보완하면서 생활공간에 촘촘하게 들어설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아파트 단지 등 주거지 주변 곳곳엔 의류폐기물 수거함이 설치돼 있다. 수거된 의류들은 재활용 사업자들에 의해 제3세계에 무게 단위로 수출되고 있다. 나름의 재사용 의류 유통체계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받고 있지만, 결국 이들 의류의 최종적인 폐기는 제3세계의 몫으로 전가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짧은 의류제품 생명주기 탓에 ‘더 많은 이윤’을 위한 국내 의류시장의 신규 생산-소비 고리는 여전히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게다가 일부 의류수거함은 ‘업자’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런 민간 의류수거함을 통해 주민들이 사용하지 않는 의류를 아무 때나 폐기물로 배출할 수 있기 때문에 재사용 가게로 기부하는 유통 구조는 거의 형성되어 있지 않다. 홍수열 소장은 “개인이 돈만 내면 마음껏 버릴 수 있는 쓰레기종량제가 도입되면서 공동체 관점에서 쓰레기 관리 의식이 약해졌다”며, “자원순환 시스템의 개선을 통해 지역 내에서 자체적으로 소비부터 재활용까지 전부 이뤄지는 ‘지역순환 완결형’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의류는 소비자와 재사용 가게가 연계돼 재사용이 가능한 물품은 재사용 가게로 우선 배출하고, 재사용 가게가 선별을 거친 뒤 폐기물로 내보낸 의류에 국한해 재활용 사업자가 처리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노원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폐현수막을 이용해 제작·보급 중인 이동형 재사용 공동수거함. 노원사회적경제지원센터 제공
노원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폐현수막을 이용해 제작·보급 중인 이동형 재사용 공동수거함. 노원사회적경제지원센터 제공
한국폐기물협회에 따르면, 2013년 한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폐기물은 하루 38만2081톤에 달한다. 국민 한 사람이 하루 약 1㎏의 쓰레기를 배출한 셈이다. 이 중 3만5604톤이 매립되며, 2만2918톤은 소각되고 2608톤은 바다에 버려진다. 나머지 84%에 해당하는 32만951톤은 재활용되고 있다. 재활용이 많다는 측면에서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 속사정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재활용은 기계적·화학적 가공을 거쳐 자원으로 되돌려서 새 제품의 원료로 사용하는 재활용(recycling)과 폐기물 자체를 재사용(reuse)하는 것을 포함한다. 재활용의 경우 민간 수거업체를 통해 물품을 회수하고 자원으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소요되는 환경비용이 만만치 않다. 이에 비해 재사용은 한번 사용된 제품을 그대로 또는 일부 부품을 다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재활용은 쓰고 버린 물건에 자원을 투입해 손질해야 하는 반면, 재사용은 이런 과정을 특별히 거치지 않기 때문에 자원을 절약할 수 있다. 홍 소장은 “‘재사용’될 수 있는 상태의 의류조차도 지금은 대부분 재활용 단계로 곧바로 넘겨져버리는 일이 흔하다”고 말했다. 재활용 산업이 점점 규모화·기계화되면서 재활용 분야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반면, 재사용 영역은 기계가 대체하기 어렵고 비교적 안정적인 지역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분야다.

그러나 재사용은 영리기업이 진입해 수익을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회적 경제 기업과의 결합도가 높다. 하지만 재사용 분야 역시 물품의 수집·선별, 수선·보관, 등급·가격 부여, 판매까지 일정한 노하우를 필요로 한다. 이런 운영 역량은 작은 재사용 가게 스스로는 처음부터 획득하기 어렵고 물류 체계를 구축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공공 인프라가 절실하다. 이에 따라 지난 10월부터 서울시 노원구에 위치한 노원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지역 자원순환 재사용 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있다. 우순영 노원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은 “사회적 경제 방식으로 기부자의 선의와 구매자의 착한 소비를 통해 만들어진 수익금은 소외 계층과 시민사회발전기금, 환경보전 사업으로 환원될 예정”이라며 근린생활권의 ‘되살림’(재사용) 매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재활용대안기업연합회와 되살림사회적협동조합이 공동으로 노원구의 자원순환 재사용 시스템 구축을 위한 방안을 연구중이다. 기부물품 전산관리 시스템도 준비하고 있다. 되살림사회적협동조합에는 ‘노원 맘스’, ‘노원지역자활센터’ 등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우 센터장은 “단순히 물품 재사용 체계를 구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람있는 일에 동참하고 싶어하는 지역 기부문화를 촉진하고 공동체성을 되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생활비용을 줄이면서도 소비 이상의 인간적 교감이 오갈 수 있는 울타리를 마련하는 건 저성장 시대를 돌파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김정지현 전국녹색가게운동협의회 사무국장은 “핀란드는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골목골목 재사용 가게를 너무나 쉽게 발견할 수 있고 벼룩시장도 자주 열린다. 넉넉하지 않은 소득을 가진 사람들에게 생활비를 줄일 수 있는 시장과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 곳”이라며, 시장의 다양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gobogi@hani.co.kr



등록: 2015-12-20 20:08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227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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