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
 지난 1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2015 사회혁신 콘퍼런스’에 참석한 오스카르 몬티엘 코데안도멕시코 공동대표가 멕시코의 시빅해킹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지난 1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2015 사회혁신 콘퍼런스’에 참석한 오스카르 몬티엘 코데안도멕시코 공동대표가 멕시코의 시빅해킹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한국은 디지털 정보 인프라 측면에서 가장 우수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서울시 스마트폰 보급률은 90% 이상으로, 세계 주요 도시들 중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늘 최하위권을 기록하는 항목은 시민들의 행복과 삶의 질에 관련된 평가다. 지난 19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5 삶의 질’ 보고서를 보면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중 최하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률은 10년째 1위다. 이런 통계들이 정보기술과 삶의 질의 상관성을 절대적으로 대변할 수 없지만, 적어도 정보기술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필요조건이 아니라는 점은 명백히 보여준다.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사회 협력을 이끌어내는 ‘디지털 사회혁신’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해지고 있다. 실제로 몇몇 글로벌 도시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실험들이 진행중이다.

디지털 통해 사회협력 이끄는 실험 활발
신속·창의적 협업으로 공공문제 해결
멕시코, 예산낭비에 시민들이 앱 개발

투표·청원 아닌 직접적인 의사소통 창구
“한국, IT거버넌스 속 시민 자리 좁아”

지난 18일 서울시가 서울시청에서 개최한 ‘2015 사회혁신 콘퍼런스: 사회혁신을 통한 도시 삶의 전환’에서는 각국 정부 관료 및 도시·정보통신기술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도시에서의 디지털 사회혁신 사례를 공유했다. 특히 ‘시빅해킹’(Civic Hacking)이라는 생소한 개념과 활동들이 소개되어 눈길을 끌었다. 시빅해킹은 다양한 시민들이 모여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공공의 문제를 풀어내자는 사회운동이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시빅해킹 시민단체인 코데안도멕시코의 오스카르 몬티엘 공동대표는 시빅해킹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킹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개인 정보를 훔치는 범죄자라든지, 어노니머스와 같은 정치적 어젠다를 위한 해커단체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죠. 하지만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도에 따라 해킹은 긍정적인 영향도 가져올 수 있어요. 시빅해킹이 대표적이죠. 인터넷을 통해 연결된 시민들이 신속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협업해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도시의 사회 이슈를 해결하는 일을 하죠.”

미국의 대표적인 시빅해킹 시민단체 ‘코드포아메리카’가 보스턴시에 제안한 ‘소화전 입양하기’ 애플리케이션. 2011년 폭설로 교통이 마비된 거리의 소화전 위치를 표시해 시민들이 소화전을 사용·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소화전 입양하기’ 누리집
미국의 대표적인 시빅해킹 시민단체 ‘코드포아메리카’가 보스턴시에 제안한 ‘소화전 입양하기’ 애플리케이션. 2011년 폭설로 교통이 마비된 거리의 소화전 위치를 표시해 시민들이 소화전을 사용·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소화전 입양하기’ 누리집
코데안도멕시코가 2013년 멕시코시티에서 벌였던 활동 사례를 보자. 당시 멕시코 의회는 법안 검색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을 위해 민간 소프트웨어 회사와 2년간 930만달러의 계약을 맺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했다. 멕시코시티의 프로그래머들을 중심으로, 의원들의 법안 검색을 돕기 위한 단순한 앱에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는 것에 대한 비난이 높아졌다. 코데안도멕시코는 이러한 시민들을 모아 거리로 뛰쳐나가는 대신, 법안 검색 앱을 개발하는 경진대회를 개최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10일간의 참가기간을 주고 의회 예산의 0.001%인 9300달러를 상금으로 내걸었다. 그 결과 앱 173개가 개발되었고, 코데안도멕시코는 그중 우수한 앱 5개를 의회에 제출했다. 비록 그들이 제출한 앱이 의회에서 채택되지 않았지만, 앱 개발 계약을 무효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미국의 시민단체인 ‘코드포아메리카’에서부터 시작된 시빅해킹 운동은 멕시코를 비롯해 일본, 아일랜드 등 31개 국가에 파트너 기관을 두고 있을 만큼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펠로’라는 지역 자원활동가들을 모아 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데이터 프로그램이나 앱을 개발한다. 한 지역에서 개발된 프로그램들은 인터넷을 통해 대중에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비슷한 문제를 겪는 다른 지역에서 이를 가져다 개발해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미국 보스턴에서 폭설로부터 소화전을 보호하기 위해 개발된 ‘소화전 입양하기’ 앱은 호놀룰루의 ‘쓰나미 경보기 입양하기’와 오클랜드와 시애틀의 ‘배수구 입양하기’ 앱으로 진화했다. “기존에는 시민들이 투표와 서명, 청원 등의 간접적인 방법으로 의견을 표현했다면, 시빅해킹은 시민들에게 훨씬 편리하면서도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창구를 제공해줍니다. 시민들이 우리가 사는 도시 정책에 불평 불만만 늘어놓지 않고,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직접 행동할 수 있도록 하죠.” 오스카르 대표는 시빅해킹은 도시 혁신뿐 아니라 시민사회 역량을 높이는 등 시민사회의 혁신도 가져온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빅해킹 파트너 기관인 ‘코드포서울’의 활동을 비롯해 정부나 지역 현안에 대한 개선안을 제시할 수 있는 플랫폼, 공공 크라우드소싱 플랫폼 구축 사업들이 진행 중이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로 평가된다. 이상돈 한국정보화진흥원 책임연구원은 “디지털을 통한 사회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포럼에 참석한 국내 연사들은 명실상부한 정보통신기술 강국인 우리나라는 전자정부와 유비쿼터스 기반의 공공서비스 사업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준이지만, 실제 그 거버넌스 속에서 시민들의 자리는 찾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이재흥 비영리아이티지원센터 센터장은 “우리나라는 중앙정부를 비롯해 지방정부들도 정보 보안에 대한 우려로 다른 나라보다 시민단체와의 협력에 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태도를 보인다. 시민단체들의 참여는 허용하되, 정보 제공만을 요청하고 실제 정부의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시민단체와의 디지털 협력에 좀더 개방적이고 적극적으로 정부 태도가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른 나라에 비해 행정적으로 공공문제 참여 경험이 적은 우리나라 비영리기관들도 행정 운영 능력을 향상하고 사회 리더십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ekpark@hani.co.kr



등록: 2015-11-22 20:28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18577.html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더나은사회] 다국적기업의 이중 기준, ‘옥시 비극’ 불렀다

경실련,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 시민사회단체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회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가습기 살균제 제조기업 처벌 촉구 및 ‘옥시 제품 불매’ 운동...

  • admin
  • 2016.05.16
  • 조회수 4173

[더 나은 사회] 퀘벡 청년, 또다른 사회적경제 세계 이끌다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에 있는 사회적기업 인서테크에서 일하는 청년들. 청년들의 사회복귀를 돕는 사회적기업으로 중고 컴퓨터를 수리해 재생 컴퓨터로 되파는 사업을 하고 있다. 인서테크 누리집. 캐나다 퀘벡주 사회적경제 주...

  • admin
  • 2016.05.02
  • 조회수 4224

[더 나은 사회] ‘사회적 배제’ 심화되는 농어촌…자립형 사회적 경제로 푼다

충북 옥천군 안남면 배바우작은도서관 앞에서 어린이들이 마을순환버스를 타고 있다. 마을 주민들의 오랜 염원을 바탕으로 2009년부터 안남면 주민·군청·시민단체가 힘을 모아 주민들의 복지를 위해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옥천순...

  • HERI
  • 2016.04.20
  • 조회수 4633

[더 나은 사회] 대기업 프랜차이즈 밀려오는 ‘캠퍼스 상업화’, 대학생협 활로는?

대기업·대형 프랜차이즈들이 대학당국의 상업화 흐름에 편승해 캠퍼스에 마구 들어오고 있다. 상업화 흐름에 저항해 대학생협들도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2월 인천대생협이 구내 식당에서 진행한 명절맞이 윷놀이 이벤...

  • admin
  • 2016.04.04
  • 조회수 4432

[더 나은 사회] 조합원들이 만드는 민주주의 축제…주총과 다른 협동조합 총회

협동조합은 출자 액수에 관계없이 1인 1표를 행사하는 조합원들이 모여 민주주의를 배워가는 학습의 장이다. 지난 12일 서울시엔피오(NPO)지원센터에서 열린 땡땡책협동조합 총회는 조합원 자녀들까지 참여하는 축제의 마당이었다....

  • admin
  • 2016.03.21
  • 조회수 4170

[더 나은 사회] 협동조합 1만개 시대 성큼…질적 도약 위해 자금조달 길 터야

khan@hani.co.kr">협동조합의 성장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창업자금이 부족한 초기 협동조합에 대한 사업역량 개발과 연계된 금융 지원과 외부 자금 조달을 위한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사진은 택시기사들이 출자해 만든 한국...

  • admin
  • 2016.03.07
  • 조회수 4600

[더 나은 사회] 높고 두터운 ‘유리천장’에…기업 성장 잠재력 뒷걸음질

“성 다양성은 윤리적으로 옳기 때문에 추구하는 게 아니라, 우리 회사와 가정, 나아가 사회를 이롭게 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기에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지난 1월에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의 주제는...

  • admin
  • 2016.02.22
  • 조회수 4506

[더 나은 사회] 공장과 ‘공방’의 차이…“소비와 생산이 호흡한다”

1. 충북 괴산자연드림파크에 위치한 ㈜해피푸르츠 공방 안 견학 통로를 따라 조합원 자녀들이 투명창 너머 생산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생활협동조합 조합원수가 2014년 100만명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의 2%, 전체 가구수의 5....

  • admin
  • 2016.02.01
  • 조회수 4206

[더 나은 사회] 주민을 위한 주민과 함께하는 도시재생의 길

1월12일 경기도 안산시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에서 피터 비숍 런던대 교수가 지역 주민과 소통에 기반한 도시 재생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도시는 사람들이 더불어 살기 위해 사람들이 만든 공간이다. 도시는 인구나 산업 구조, ...

  • admin
  • 2016.01.18
  • 조회수 4374

[더 나은 사회] 이윤추구 ‘짧은 상품주기’로부터 독립…재사용 ‘순환경제’로의 이행

서울 노원구청과 노원되살림네트워크, 노원사회적경제활성화추진단은 중고벼룩시장 및 자원순환 행사로 매년 ‘노다지’(노원에서 다시 쓰는 지혜) 장터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6월21일 노원구청 앞에서 열린 노다지 장터. 노원사회...

  • admin
  • 2015.12.21
  • 조회수 5201

[더 나은 사회] 마을이 키우는 아이…‘사회적 경제 특구’ 들어보셨나요?

서울 관악구청과 관악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가 ‘서울시 사회적 경제 예비특구 준비 사업’의 일환으로 마련한 ‘서로돌봄허브’ 공간. ‘공동체육아’의 플랫폼으로서 역할이 기대된다. 관악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 제공 지난 10월 말...

  • admin
  • 2015.12.07
  • 조회수 4775

[더 나은 사회] 해킹? ‘시빅해킹’!…정보기술이 만들어내는 도시 삶의 혁신

지난 1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2015 사회혁신 콘퍼런스’에 참석한 오스카르 몬티엘 코데안도멕시코 공동대표가 멕시코의 시빅해킹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한국은 디지털 정보 인프라 측면에서 가장 우수한 국가 중...

  • admin
  • 2015.11.23
  • 조회수 4561

[더 나은 사회] ‘문화 향유권’ 돕는 사회적 기업, 공동체 성장 이끈다

모두를 위한 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모극장)이 열었던 ‘랩탑영화제’ 모습. 모극장은 영화를 보기 어려운 시민들과 공동체를 찾아가 상영하는 대안적 영화 유통 및 배급 사업을 펼치고 있다.  모극장 제공 #장면1. 전남의 한 ...

  • admin
  • 2015.11.09
  • 조회수 4434

[더 나은 사회] “삶의 질이 경제적 성취보다 더 중요”…‘탈물질주의’ 경향 뚜렷

와 희망제작소가 지난 2월 경기도 안산 경기창작센터에서 연 ‘광복 100년 대한민국의 상상’ 행사에 참가한 청년들이 자신들이 꿈꾸는 미래 사회의 모습을 유리창에 적어둔 모습.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 alt="와 희...

  • admin
  • 2015.08.31
  • 조회수 4566

[더 나은 사회] 아시아 사회혁신가들, ‘민달팽이족’ 위해 손잡다

홍콩 사회적 기업 ‘라이트비’는 저소득층 싱글맘들을 위한 집인 ‘라이트홈’을 운영한다. 거주자들은 거실과 주방을 함께 사용하며 서로를 돕는 동반자가 되어간다. 라이트비 제공 제2회 아시아청년사회혁신가 포럼 #1 사티안 ...

  • admin
  • 2015.08.17
  • 조회수 4356

[더 나은 사회] ‘로컬푸드 도시락’에 평창 올림픽 지속가능성 담는다

송어·감자·더덕 등 강원 특산물로 관람객 등에 공급할 도시락 6종 개발 대회 끝나도 대표 먹거리로 브랜딩 올림픽-지역경제 선순환 모델 가능성 대기업 ‘스폰서십 독점권’ 해결해야 지난달 21일 강원도 원주에서 평창동계올림픽 ...

  • admin
  • 2015.08.03
  • 조회수 5378

[더 나은 사회] 시민 2581명 쌈짓돈, 사회 혁신의 마중물 되다

사회적기업 크라우드펀딩 대회 6월 한달 동안 열린 ‘2015 사회적기업 크라우드펀딩 대회’ 에서 수상한 참가팀들이 2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시상식 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제공 #1. 지능평가지수가 ...

  • admin
  • 2015.07.20
  • 조회수 4423

[더 나은 사회] “요리 성적은 1등이죠”…‘셰프의 꿈’ 키우는 아이들

‘영셰프스쿨’ 학생들이 지난해 가을 서울 영등포구 하자센터 요리실습장에서 자신들이 만든 요리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가니제이션 요리 제공 사회적 기업 오요리 ‘영셰프 스쿨’ 학교 밖 청소년 등 2년간 요리교육 ...

  • admin
  • 2015.07.06
  • 조회수 4867

[더 나은 사회] 국민들 80% “기업 사회공헌 미흡하다”

2015년 사회책임경영(CSR) 인식조사 국민들 10명 가운데 8명은 국내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겨레경제연구소가 서울시민 1000명에게 ‘국내 기업 사회공헌 및 사회책임경영에 대한 인식’을 설...

  • admin
  • 2015.06.23
  • 조회수 4616

[더 나은 사회] “함께 모싯잎 수확해 마을 지켜준 어르신께 연금 드려요”

정읍 송죽마을 마을연금 이야기 송죽마을 쑥모시영농조합법인 조합원들이 내장산 자락에서 모싯잎을 채취하고 있다. 쑥모시영농조합법인 제공 “나이 80살 이상이면서 지역 공동체에 20년 이상 머물렀거나, 20년이 채 안 됐더라도 마...

  • admin
  • 2015.06.08
  • 조회수 4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