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
정읍 송죽마을 마을연금 이야기 
송죽마을 쑥모시영농조합법인 조합원들이 내장산 자락에서 모싯잎을 채취하고 있다. 쑥모시영농조합법인 제공
송죽마을 쑥모시영농조합법인 조합원들이 내장산 자락에서 모싯잎을 채취하고 있다. 쑥모시영농조합법인 제공
“나이 80살 이상이면서 지역 공동체에 20년 이상 머물렀거나, 20년이 채 안 됐더라도 마을 공동체에 기여한 바가 큰 것으로 인정되는 어르신에게 매달 10만원의 연금을 지급한다.”

2013년 가을, 전북 정읍 송죽마을 회관에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 마을 통장인 유연필 쑥모시영농조합법인 대표가 주민들 앞에서 섰다. 색 바랜 종이 한 장을 꺼내든 유 대표는 ‘송죽마을 연금제도 정관’을 상기된 목소리로 읽어내려갔다.

80살 이상 어르신 매달 10만원씩 지급
내장산 ‘모싯잎’ 수확하는 마을기업 세워
지역 떡집은 수확작물 전량 수매하기로
시장가보다 높게 산뒤 차액을 기금 조성

국립공원 내장산 자락에 자리잡은 송죽마을에는 20가구, 63명이 모여 산다. 맑고 깨끗한 청정 지역이지만, 척박한 토질 탓에 논농사는커녕 밭작물 소출도 그리 좋지 못하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60대 이상 고령자다. 안정적인 소득을 얻는 게 쉽지 않은 조건이다. 송죽마을의 고민은 2012년 당시 마을 통장이던 유씨가 창업 공동체 육성 사업인 ‘정읍시민 창안대회’에 참여하면서 작은 돌파구를 찾았다. 그는 마을의 주력 사업 아이템으로 모싯잎을 떠올렸다. 1년에 네차례 수확하는 모싯잎은 조선시대부터 내장산 인근에서 재배해온 대표 작물이다. 유 대표는 어릴 적 마을 사람들과 함께 모싯잎을 키우고 수확하던 기억을 되살리기로 했다. 정읍시는 영농조합 설립에 필요한 종잣돈 3000만원을 지원했다.

유 대표가 모싯잎을 사업 아이템으로 택한 데는 또다른 “믿는 구석”이 있었다. ‘솔티애떡’이란 온라인 떡집을 운영하는 김용철 대표가 송죽마을에서 수확한 모싯잎을 모두 수매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서울에서 20여년간 떡집을 운영해온 김 대표는 솜씨 좋은 떡장인이다. 2004년 고향으로 돌아온 뒤, 귀리·오디 등 정읍 특산물로 떡을 만들어 온라인 사이트에서 판매한다. 2007년 개점 이후 현재까지 솔티애떡 누리집엔 매달 평균 10만여명의 방문객이 찾을 만큼 반응이 좋다. 송죽마을 모싯잎으로 떡을 만들어 보겠다고 먼저 제안한 것도 김 대표였다. 계약재배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유 대표는 2012년 인근 4개 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모싯잎을 수확할 20여 농가 조합원을 모아 쑥모시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2013년에는 행정자치부 지정 마을기업으로 선정돼 모싯잎 가공 공장도 만들었다.

지난해 3월 유연필 쑥모시영농조합법인 대표가 마을 어르신에게 첫 연금을 지급하는 모습. 쑥모시영농조합법인 제공
지난해 3월 유연필 쑥모시영농조합법인 대표가 마을 어르신에게 첫 연금을 지급하는 모습. 쑥모시영농조합법인 제공
유 대표에겐 해결하기 힘든 고민이 하나 있었다. 나이가 많아 모싯잎 수확이나 가공에 직접 참여할 수 없는 마을 노인들의 생계가 걱정이었다. 적든 많든 영농조합의 수익을 함께 나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왜 마을기업을 하고 있는가’란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속가능한 마을 공동체를 위한 것이고, 이는 우리 영농조합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공동체를 이어가려면 그동안 마을을 떠나지 않고 지켜주신 어르신들의 노고를 외면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유 대표는 모싯잎 수확으로 발생한 소득의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해 고령의 어르신에게 매달 일정액을 연금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금 마련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남 영광, 충남 서천 등 모싯잎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경쟁 지역들이 많은데, 수익을 더 얻자고 모싯잎 가격을 마음대로 올릴 수도 없었다. 솔티애떡의 김 대표가 또 한번 손을 내밀었다. 시장에서 1㎏에 2000원 안팎에 형성된 모싯잎 수매가를 1㎏당 300원씩 올리겠다고 나선 것이다. 시장가 이상의 차액은 쑥모시영농조합법인에 남겨 이것을 연금 기금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김 대표는 “귀향 후 오랜 기간 유 대표를 옆에서 지켜보며 그의 마을 사랑에 신뢰를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유 대표와 김 대표의 마을 연금 기금 조성 방안에 영농조합법인 소속 조합원들도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

‘마을 연금’은 지난해 3월 첫발을 뗐다. 전국 최초로 마을기업 수익금으로 노령연금을 지급하는 첫 사례가 됐다. 주민들과 쑥모시영농조합법인 조합원, 솔티애떡 직원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첫 연금 지급을 자축하는 잔치도 열었다. 지난해에는 4명의 어르신께 마을연금을 지급했고, 올해부터는 연금 지급 대상을 6명으로 늘렸다. 조합은 쑥모시를 이용한 오솔길 조성, 모시 베짜기 체험 등 수익 구조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지금은 매달 10만원씩 연금을 드리는 일이 벅찬 것도 사실입니다. 올해는 조합원 농가 전체 소득이 8000만원 정도 될 것으로 보이는데, 1억원 정도가 되면 마을 어르신들께 큰 어려움 없이 연금을 지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유 대표의 소박한 바람이다.

정읍/서재교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jkseo@hani.co.kr

등록 :2015-06-07 19:58수정 :2015-06-07 20:24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946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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