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사회]
에너지 전환 운동 10년 발판 삼아
‘2050 넷제로’ 위한 전환센터 개소
“기후위기 대응 전환행동 실험 거점”

에너지협동조합 바탕 주민 참여 활발
‘마을에서 에너지로 먹고살기’ 도전

지난달 성대골 전환센터에서 열린 성대골 마을기술학교의 ‘우리집 그린케어’ 강좌에 참여한 주민들이 마을 기술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성대골 전환센터 제공
지난달 성대골 전환센터에서 열린 성대골 마을기술학교의 ‘우리집 그린케어’ 강좌에 참여한 주민들이 마을 기술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성대골 전환센터 제공

좁은 도로를 따라 전통시장과 저층 주택, 상가 건물이 이어진 서울 동작구 성대로. 사람들이 흔히 ‘성대골’이라 부르는 곳이다. 이 마을에 최근 낯선 이름의 공간이 새로 들어섰다. ‘2050 탄소배출 제로를 향한 성대골 전환센터’. 성대골 ‘전환마을 운동’의 거점을 표방하며 지난 8월 문을 열었다. 전환마을 운동은 기후위기에 대응해 공동체를 중심으로 마을의 회복력을 높이려는 운동이다. 10년째 이어져온 성대골 에너지 전환 운동의 시즌2라 할 수 있다.


성대골 주민들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2011년부터 에너지 절약 운동(절전소 운영, 가정 방문 에너지 진단), 주택 에너지 효율화 사업, 에너지 복지 사업(에너지 빈곤층 실태조사), 에너지 소비자가 직접 생산자로 참여하는 에너지 프로슈머 운동(태양광 발전) 등을 쉼 없이 펼쳐왔다. 성대골의 에너지 전환 운동을 이끌어온 마을기업 마을닷살림협동조합 김소영 대표는 “전환센터가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전환적 행동을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실험해보는 거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다지 특별할 게 없는 도시 마을인 성대골에서 에너지 전환 운동이 지속적으로 펼쳐질 수 있었던 데는 마을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원동력이 됐다. 평범했던 주민들이 마을 교육을 통해 에너지 시민의식을 키우고 에너지 운동 활동가로 거듭났다. 성대골에 마을 연구원, 마을 기술자, 마을 에너지진단사, 에너지·기후변화 강사 등 마을 활동가들이 많은 이유다. 마을닷살림협동조합 차은주 사무국장도 그런 경우다. 두 아이의 엄마인 그는 2014년 가을, 마을에서 열린 에너지·기후변화 강사 양성 교육을 받고 에너지 운동에 팔을 걷고 나섰다. 그는 “강의를 듣고 ‘나 혼자만의 힘으로 아이들을 지킬 수는 없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공동체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성대골의 에너지 전환 운동은 사회적 경제를 떼어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성대골에는 에너지 협동조합이 3곳이나 있다. 협동조합은 사회적 경제 기업의 한 유형이다. 맏형 격인 마을닷살림협동조합은 2013년 11월 설립됐다. 주택 에너지 효율 개선, 미니 태양광 설치, 전환마을 운동 등 성대골 에너지 운동의 구심점 구실을 해왔다. 2016년 2월에는 성대골 활동가들이 에너지·기후변화 교육을 진행하던 국사봉중학교에 생태에너지 사회적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생태에너지 전환 카페(생태 매점)를 운영하고 옥상에서는 햇빛발전(태양광)을 통해 전기를 생산한다. 발전 수익은 전액 장학금으로 쓰인다.

2018년 9월에는 가상발전소 사업을 위한 성대골에너지협동조합이 출범했다. 여러곳의 건물 옥상에 소규모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한 뒤, 그곳에서 생산된 전기를 모아 전력중개 시장에 내다파는 사업 모델이다. 발전 수익을 지역 주민들과 나누는 이익공유형 재생에너지 사업이다. 시민들이 발전사업의 주체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성대골에너지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는 윤혁 성대시장 상인회장은 “도시 옥상에 빈 공간이 많은데, 거기에 태양광을 설치한다면 수익도 얻을 수 있고 기후위기를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정부도 태양광이 확산될 수 있도록 발전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기술 개발 등의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협동조합일까? 김소영 대표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사회적 경제 조직의 특성에 주목했다고 한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려면 그 활동이 수익으로 연결되고 일자리가 생겨야 하는데, 협동조합이 그런 목적에 가장 적합한 조직이라는 얘기다. 김 대표는 동네 에너지 일자리 창출과 지역순환경제, 곧 ‘마을에서 에너지로 먹고살기’가 에너지 전환 운동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성대골에선 또 하나의 협동조합이 둥지를 틀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말 꾸린 마을기술네트워크가 그 씨앗이다. 마을기술네트워크는 마을에서 인테리어, 전기, 설비 등의 업체를 운영하는 기술자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첫 사업으로 마을 주택의 건물 에너지 성능 개선을 위한 집수리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성대골 전환센터와 함께 마을기술학교도 열었다. 주민들에게 에너지 성능 개선 집수리 기술을 가르치는 ‘우리집 그린케어’와 집수리 기술자를 양성하는 ‘마을기술 창업스쿨’ 과정으로 나눠 진행됐다. 올해 사업 성과를 지켜본 뒤 내년쯤 ‘마을기술협동조합’을 꾸릴지 검토할 계획이다.

성대골에서 이뤄진 건물 에너지 성능 개선(그린 리모델링), 가상발전소(이익공유 태양광 사업) 등은 정부가 추진하는 ‘그린뉴딜’의 핵심 과제이기도 하다. 성대골이 그린뉴딜을 먼저 실천해온 셈이다. 그러나 김소영 대표는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에 비판적이다. 그는 “그린뉴딜은 에너지 전환을 목표로 삼아야 하며, 에너지 전환은 누구나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고 어떤 에너지원을 쓸지 선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며 “지금처럼 돈 풀기 식으로 이뤄지면 대기업들만의 잔치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종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jklee@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675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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