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업혁신지수 높지만
생산성 등 혁신 결과는 미흡
‘실패에 따른 피해’ 두려움에
혁신적 기업 창업률도 저조
위험에 대한 도전 장려하려면
실패까지 보듬는 시스템 필요



■ 창업부터 막힌 혁신 프로세스
나라별로 투입 대비 산출이 천차만별이니 혁신(효율성)을 결정하는 요소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이것을 블랙박스라 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블랙박스에는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정책적 요소 등이 버무려져 있어 그것을 하나하나 해체하며 분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혁신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니 혁신 주체(특히 창업 기업가)의 행동을 보면서 혁신의 블랙박스 안을 살짝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혁신적 창업의 과정을 살펴보면 연구개발을 시작으로 상업화의 과정(수요조사, 자금조달, 시제품 완성 등)을 통해 대량 생산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위의 평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투자 규모는 세계적인 수준이므로 시작점에 있어서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다음 상업화 단계는 어떠한가? 상업화는 연구개발 성과를 바탕으로 상품을 개발하는 혁신적 창업 과정의 핵심 단계이다. 우리나라의 창업률(창업기업 수/총 활동기업 수, 연간 기준)은 세계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창업기업의 89%(2015년 기준)가 1인 기업이라는 점을 볼 때 우리나라 창업의 대부분은 아이디어를 통해 사업의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생존의 필요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생존형 창업이라고 볼 수 있다. 201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설문조사 결과 한국 창업기업의 21%만이 사업적 기회를 가지고 창업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63%는 고용시장에서 떠밀려 나와 창업을 한 경우였다. 반면, 혁신적이라고 평가되는 선진국의 경우 50% 이상이 사업적 기회를 가지고 창업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의 혁신적 기업 창업률이 실질적으로 매우 낮음을 알 수 있다.
왜 혁신적 창업률이 낮을까? 창업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는 창업 아이디어와 창업 의지, 자금의 확보 등이다. 우리나라 창업가들이 직면한 어려움은 어디에 있을까? 중소벤처기업부의 2019년 창업기업 실태조사 중 ‘창업의 장애요인’ 항목을 보면 창업자금 마련의 어려움이 가장 높은 비중(72%)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창업 과정의 경제적 어려움과 실패 시 발생하는 막대한 피해에 대한 두려움으로 창업을 주저하는 비중도 70%에 육박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국가 간 비교에서도 나타나는데, 영국 런던경영대학과 미국 뱁슨칼리지가 2016년 실시한 글로벌 기업가정신 조사(Global Entrepreneurship Monitor, GEM) 중 ‘실패에 대한 두려움’ 항목에서 한국은 65개국 중 55위를 차지했다. 창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삶의 불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 안전망은 사람을 뛰어놀게 한다
실패에 따른 두려움을 낮추고 혁신적 창업을 활성화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우리는 넓은 트램펄린에서 신나게 뛰놀며 매우 창의적인 몸동작을 하는 아이들을 보곤 한다. 그들에게 창발적 자유를 준 것은 바로 추락에 따른 위험 제거일 것이다. 이러한 위험의 제거는 더 나아가 추락을 즐길 수 있게 만든다. 혁신적 창업 활동 역시 실패의 위험을 즐기고 실패를 성공의 디딤돌로 만들 수 있어야 활성화되고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실패를 하더라도 안정적으로 가정 및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되는 것이다.
2020 블룸버그 혁신지수로 다시 돌아가 보자. 혁신 인프라에 대한 투자 대비 성과가 높은 나라들, 즉 혁신의 효율성이 높은 나라들은 대부분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사회안전망 확충이 잘되어 있는 나라들이다. 프랑스, 벨기에, 핀란드 등은 2018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에서 공적 사회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30%에 육박해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10% 수준으로 오이시디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사회안전망이 혁신에 긍정적 구실을 했다는 것은 최근 영국의 산업혁명에 대한 연구에서도 밝혀지고 있다. 17~18세기 영국의 구빈법은 규모나 제도의 안정성 측면에서 서유럽의 어느 나라보다 앞서 있었다. 영국의 구빈제도의 규모는 17세기 기준으로 연간 국민소득의 1% 수준이었고 18세기에는 2%까지 증가하여 당시 경쟁국이었던 프랑스(1780년대 기준, 영국의 7분의 1 수준)나 네덜란드(1820년대 기준, 2.5분의 1), 벨기에(1820년대 기준, 5분의 1)를 압도했다. 특히, 다른 나라들이 재원을 성직자나 귀족의 기부금 등 제도화되지 않은 자금에 의존한 반면 영국은 모든 자산, 특히 토지와 건물에서 발생하는 소득에 부과하는 세금의 형태로 재원을 마련하여 매우 안정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제도로 운영되었다. 이러한 체계적인 구빈제도가 토대가 되어 다른 서구 국가와 다르게 도전적 기업가 정신과 투자의식이 고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