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
거대 정유회사 엑손모빌과
주총 표대결에서 승리한 엔진넘버원
‘ESG 투자’ 겨냥한 ETF 출시

실제 투자는 펀드매니저에 달려
ESG 평가와 성과보수 연계 추진

고수익 올렸던 담배·도박 투자
ESG 투자는 ‘죄악주’ 딜레마 극복할까

지난 2018년 4월23일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전광판에 엑손모빌의 로고가 떠 있다. 엑손 경영진은 최근 강력한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한 행동주의 펀드에 주총 표 대결에서 패배하는 수모를 당했다. 연합뉴스
지난 2018년 4월23일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전광판에 엑손모빌의 로고가 떠 있다. 엑손 경영진은 최근 강력한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한 행동주의 펀드에 주총 표 대결에서 패배하는 수모를 당했다. 연합뉴스


미국 최대 정유회사 엑손모빌을 주총에서 무릎 꿇린 행동주의 펀드(주식을 매수한 뒤 회사 경영에 적극 개입해 주가 상승을 추구하는 펀드) 엔진넘버원(Engine No.1)이 이에스지(ESG: 환경, 사회책임, 지배구조) 투자를 겨냥한 첫 상장지수펀드(ETF)를 내놓았다. 엔진넘버원은 최근 엑손 경영진에게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자신이 추천한 인사들을 이사로 임명하라고 요구한 뒤 이를 거부하는 경영진과 표 대결을 벌여 승리했다. 외신들은 엔진넘버원 쪽이 엑손 이사회에 3명의 이사를 지명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직원 22명, 자산 2억4천만달러의 소규모 펀드인 엔진넘버원의 승리는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의 승리’에 비유될 만했다.


엔진넘버원이 ‘더 트랜스폼 500’이라고 이름 붙인 이티에프는 이에스지 투자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엔진넘버원은 이티에프가 투자한 기업들이 온실가스 감축과 직원들의 노동 환경 등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감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엔진넘버원의 이에스지 투자가 엑손을 상대로 거둔 승리처럼 해피엔딩이 될지는 확실치 않다.


이에스지 펀드의 목표 달성 여부는 실제 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에게 달려 있다. 투자자의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펀드매니저가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이에스지 요소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런데 펀드매니저는 투자 수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 보수로 받는 독특한 보상 체계를 따른다. 투자 수익이 일정 기준을 넘지 못하면 아예 성과 보수를 받지 못한다(일정 기준을 넘으면 투자 수익의 20%까지 받는다). 따라서 펀드매니저는 당장 수익이 많이 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경향을 띠게 된다. 하지만 환경과 사회책임 등을 강조하는 이에스지 투자는 당장 높은 수익을 보장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이에스지는 펀드매니저에게 매력적인 투자 전략이 못 된다.

이런 이에스지 투자의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펀드매니저의 보상 체계를 개편하려는 움직임이 유럽과 미국 사모펀드업계에서 일고 있다. 펀드매니저의 성과 보수를 이에스지와 연계시키는 것이다. 유엔의 지속개발위원회의 17가지 목표(빈곤 종식, 성평등, 기후정의 등)를 반영한 이에스지 평가지표를 얼마나 잘 따랐는지에 따라 성과 보수를 책정하는 방식이다. 투자 수익과 이에스지 반영 정도를 모두 측정한 뒤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성과 보수를 받지 못하게 된다.


이에스지 투자는 투자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줄 수도 있다. 지난 2008년 금융학자 프랭크 파보지와 해리슨 홍 등이 발표한 논문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 논문은 ‘죄악 산업’(sin stock)이라 불리는 담배와 도박에 대한 투자 수익을 오랜 기간(1970~2007년) 추적했는데, 결과는 죄악 산업에 투자한 펀드들이 시장 대비 높은 초과수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죄악 산업의 기업들은 일반 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리기 때문에 주가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다. 동시에 죄악 산업은 자본 조달이 쉽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기 어렵다.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운 기존 기업들은 그만큼 이익을 많이 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죄악 산업에 대한 투자 수익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논문은 분석했다. 이른바 ‘죄악주 프리미엄’(sin premium)을 누린 것이다. 이에스지 투자는 죄악주 프리미엄을 없앨 수 있을까.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
관련기사

한겨레에서 보기: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98247.html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12년 간 표류하고 있는 생협 공제, 시민사회 조속한 시행 촉구

시행규칙 없어 입법에도 공제사업 진행 못해 상호부조 정신 ‘더 적은 부담, 더 많은 혜택’ 공정위, 9월 내 구체적 협의 시작 약속 8일 오전 서울시 영등포구 아이쿱신길센터에서 5대 생협연합회(아이쿱·한살림·두레·행복중심·대...

  • HERI
  • 2021.09.09
  • 조회수 1309

사회보장과 사적보장 사이, 공제 실험은 가능할까?

공제사업 허용에도 관련 기본법 없어 78개 공제조합, 17개부처 개별법 관리 복지공백 메우고 경제불안 해소 목적 안전망 사각지대에서 자구책 찾는 ‘공동구제회’ 설립 활발한 움직임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비롯 플...

  • HERI
  • 2021.09.06
  • 조회수 1467

진영논리 넘어 ‘빈곤의 공포’ 없는 소득보장 해법 찾아라

소득보장체계 혁신방안 토론회 소주성특위-한겨레경제사회연 주최 2022 대선 겨냥 복지공약 최대 화두 현행 제도 사각지대·보장 미흡 한계 재정 지속성·조세저항 현실 고려도 지나친 이상주의·정치논리 모두 경계 ※ 이미지를 누르...

  • HERI
  • 2021.08.23
  • 조회수 1832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실상 금방 드러나고 쭉정이는 걸러질 것”

‘이에스지 쟁점과 과제’ 좌담 남재인 “기업 입장에선 생존과 연결된 문제 능동적으로 접근하고 기회 찾는 게 숙명 큰 흐름은 이해관계자들이 원한다는 것 핵심은 비즈니스 모델 찾는 혁신에 달려 대기업만으로 안돼, 정부·중...

  • HERI
  • 2021.08.17
  • 조회수 1659

“‘ESG 생태계’ 제대로 구축하려면…시민사회 등 참여 필요”

ESG 내세웠던 프랑스 다논 파베르 CEO, 실적 나빠지자 헤지펀드에 의해 해임 “‘주주 행동주의’에 변화의 물꼬 트려면 다양한 이해관계자 참여해 견제해야” 2019년 9월20일 미국 시애틀에서 아마존을 비롯한 이른바 빅테크 기...

  • HERI
  • 2021.08.09
  • 조회수 2329

선진국 주도 ‘녹색전쟁’…개도국은 넘지 못할 ‘신무역장벽’인가?

EU발 탄소국경세, ‘신보호무역’ 논란 유럽기업 경쟁력 위한 ‘그린워싱’ 눈총 조만간 플라스틱세 등도 신설 추진 미국 민주당은 탄소조정세 동조 중국, 총리 주석 등 직접 반대표명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도 준비 러시아는 보...

  • HERI
  • 2021.08.02
  • 조회수 2764

재계 우등생들은 왜 ‘ESG워싱’ 의심받고 있나

현대차 최근 RE100 가입했지만 그린피스 “한가하고 게으른 목표” 지적 SK는 호주 연안 가스전 개발 투자로 환경단체로부터 ‘그린워싱’ 비난 사 재계 1위 삼성은 아직 가입 안해…“ESG 경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에스케...

  • HERI
  • 2021.07.19
  • 조회수 2010

“가난은 무조건적 지원 아닌 ‘자활’로 극복할 수 있게 해야”

16회 사회적 경제 정책포럼 사회안전망으로서 역할과 전망, 평가 코로나 위기 상황서 사회적 기업 앞장 ‘고용조정제로 선언’ 등 발빠르게 대응 관계망 중심의 사회적 자본 단단한 덕분 “사회적 경제 내 취약계층 고용 유지 ...

  • HERI
  • 2021.07.12
  • 조회수 1915

총알배송 경쟁에 밀려난 ‘걸을 권리’

“빨리, 더 빨리”…배달플랫폼 속도경쟁에 보도 위 시민만 아니라 배달노동자도 위험 굉음에 과속, 끼어들기에 급제동까지 배달수요 늘면서 오토바이 사고 20%↑ 잦은 사고에 보험도 기피 ‘안전사각 지대’ “배달플랫폼 사업 전...

  • HERI
  • 2021.07.12
  • 조회수 1801

농촌엔 빈집만 26만채 “병원·슈퍼 사라지고 을씨년스러운 폐가만”

한전 전력사용량 점검해보니 빈집만 26만채 국토 73%인 면지역에 주민생활시설 거의 사라져 1182개면 76%에 병원 없고, 45%에는 슈퍼도 없어 전국 농촌에 방치된 폐농가 26만채가 흉가로 변하면서 치안과 경관을 해치는 것은 물...

  • HERI
  • 2021.07.05
  • 조회수 2144

“‘전국민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로 건강권 도모하자”

‘100만원’까지만 의료비 내자는 시민운동 출범 의학적 비급여의 건강보험 편입 선행되어야 상한제 통해 사회연대성과 안전망 강화 기대 지난 6월30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서 열린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병원비백만원연대’ 출...

  • HERI
  • 2021.07.05
  • 조회수 1497

“자폐성 장애학생도 통합교육 적응…시간 걸려도 기회 뺏으면 안돼”

통합교육 현장 ‘정다운학교’ 가보니 장애·비장애학생 함께하는 통합학교 장애학생 사회적응력·자존감 높여 비장애학생 다문화 수용성·배려심 길러 교육부 지원으로 2018년 첫발 뗀 뒤 대구 불로초 병설유치원·부산 엄궁중 등 2018...

  • HERI
  • 2021.06.21
  • 조회수 2381

농촌기본소득 ‘백가쟁명’…논쟁 딛고 성공할까

기본소득 공감대 확산 속에 대상, 방식 놓고 갑론을박도 모든 국민에게 소액 지급 청년, 농민 등 범주형도 가능 농촌기본소득 실험 성공하려면 정책 효과 잘 살펴야 선한 의도뿐만 아니라 일관성 있는 추진 필요 경기도가 올해...

  • admin
  • 2021.06.14
  • 조회수 1701

엑손을 무릎 꿇린 ‘엔진넘버원’…ESG 투자도 통할까

거대 정유회사 엑손모빌과 주총 표대결에서 승리한 엔진넘버원 ‘ESG 투자’ 겨냥한 ETF 출시 실제 투자는 펀드매니저에 달려 ESG 평가와 성과보수 연계 추진 고수익 올렸던 담배·도박 투자 ESG 투자는 ‘죄악주’ 딜레마 극...

  • HERI
  • 2021.06.07
  • 조회수 1898

‘ESG 바람’ 탄 정부…노동자·사회적 약자는 못 보나

국민연금 ‘탈석탄 투자’ 선언 금융위·금감원은 TCFD 지지 정부 부처·기관도 ESG에 가세 기업·금융 주도 ESG에 일자리 소멸로 가장 피해가 큰 노동자·소상공인·농민은 소외 2050 탄소중립위도 산업계가 주도 민주노총 “불참”...

  • HERI
  • 2021.06.07
  • 조회수 1714

정년 연장 논의 왜 필요한가…“부담 나눠 짊어지는 게 미래 이익”

시동 걸린 ‘정년 연장’ 공론화 저출산·고령화에 생산가능인구 감소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한 출발선 “50살 전후 퇴직, 65살 국민연금 수령까지 소득공백 막으려면 정년 연장 불가피” 지난 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 HERI
  • 2021.05.31
  • 조회수 2668

일자리·병원 없고 빈집·폐축사…노년층도 절반 이상 “귀농 원치 않는다”

‘농산어촌 유토피아 특위’ 발족, 주거플랫폼 확대 발등의 불 “집·일자리 확보 안 되면 지방대·농촌소멸 확산 불보듯…” 고령화·지방소멸,‘인구 데드크로스’ 학령인구 줄어 지방대 90% 정원 미달 30년 넘은 가옥과 방치된 빈...

  • HERI
  • 2021.05.17
  • 조회수 12239

첫 단추 잘못 끼운 K-ESG…공신력 실추로 체면 구겼다

산업부 ‘한국형 ESG’ 초안 공개 탄소배출·산재 많은 포스코에 A등급 연간 8천만톤 온실가스 배출하는데 환경 따지는 ESG 고평가 맞나 미얀마 군부 관련 가스전 사업은 유엔 인권기구에서 중단 촉구 정부 ‘ESG 표준화’ 시...

  • admin
  • 2021.05.10
  • 조회수 2023

기후위기 대응, 시민이 주도해야 성공한다

기후위기 제대로 대응하려면 “정부, 대기업에 주도권 넘기면 안돼” 그린뉴딜, 탄소중립 흥행 저조 “시민의 역할이 빠졌기 때문” 소득, 자산 수준과 기후위기 책임 비례 탄소배출 더 줄이는 정책은 약자의 고통 더 커질 것 ...

  • HERI
  • 2021.05.03
  • 조회수 2415

농촌기본소득이 자립과 공생의 ‘지역순환경제’ 거름 될까?

제3회 농촌기본소득 정책포럼 경기도 하반기 사회실험 앞두고 역할·효과·측정방법 등 다뤄 행복·소비·여가·고용·사회관계 등 효과 측정할 13개 지표 제시 ‘지역화폐 효과’에 대한 여러 분석에도 “기본소득과 융합도 높은 정책” ...

  • HERI
  • 2021.04.26
  • 조회수 2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