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
경제협력개발기구 부패방지위원장을 지낸 마르크 피트 바젤대 교수가 19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2015 지도자 정상회의’ 반부패 세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제공
경제협력개발기구 부패방지위원장을 지낸 마르크 피트 바젤대 교수가 19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2015 지도자 정상회의’ 반부패 세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제공
마르크 피트 OECD 전 부패방지위원장 
“반부패, 공공에서 민간으로 확산 추세
기업 지원으로 ‘통관 뇌물’ 해소하고
고위 관료에 보고하는 시스템 만들기도
정부·기업·민간 ‘공동 노력’ 절실”
“아무리 작은 규모의 부패도 제재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25년 동안 부패방지위원장을 지낸 마르크 피트 스위스 바젤대 교수는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한겨레>와 만나 “정부와 민간, 시민사회가 공동의 창의적 해법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트 교수는 이날 열린 유엔글로벌콤팩트 주관 ‘2015 지도자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뇌물방지협약(1999년)과 유엔 반부패협약(2003년), 주요 20개국(G20)의 반부패행동계획(2010년) 등 국제사회에서 반부패에 대한 요구가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유엔 반부패협약의 경우, 민간에서의 뇌물 수수와 횡령을 범죄로 규정하는 등 부패의 범위 가 공공에서 민간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영국의 뇌물법과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처럼 주요 선진국들은 기업의 부패 관련 법규 제정 및 집행을 강화하고 있다. 피트 교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세계화에 따라 기업들에 국경의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고, 지멘스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거대한 하나의 사회를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기업 안팎으로 반부패에 대한 인식과 관련 제도가 있어야 한다. 공공과 민간 영역에서 반부패 노력은 사회 전체적으로 비효율을 감소시켜준다”고 설명했다.

민간 영역의 부패에 엄격한 규율을 적용한다는 것은 기업에 법적 리스크가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정작 기업들은 부패에 대해 여전히 수동적으로 대응할 뿐 사전적으로 예방하지 못하고 있다고 피트 교수는 꼬집었다. 예컨대 청탁과 뇌물을 ‘강요’받았을 때 기업 입장에서는 두가지 선택이 있다. 하나는 청탁과 뇌물 요구에 응하는 것이다. 이 경우 법적 리스크가 높아지게 된다. 다른 하나는 응하지 않는 것이다. 응하지 않을 때 법적 리스크는 없지만 사업에 손해가 오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사업 일부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특히 중소기업들은 부패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데, 만약 사업 일부를 잃는다면 생존 여부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부패 요구에 대해 두가지 선택만이 있다고 생각하고, 현실적으로도 그러한 경우가 많다.

반부패 세션 행사장 모습.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제공
반부패 세션 행사장 모습.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제공
피트 교수는 이러한 상황을 ‘공동 노력’(collective action)으로 타개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동 노력은 말 그대로 함께 행동하는 것이다. 그는 2000년 제이피모건·스위스은행 등 세계 11개 대형 금융회사들이 모여 돈세탁 방지를 선언한 ‘볼프스베르크 원칙’을 예로 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금융사들이 모여 더이상 돈세탁을 하지 말자고 협의했다. 금융사를 통한 부정한 범죄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능동적 선언이었다. 그 후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각 금융사들은 정책과 시스템을 개선하고, 각 나라의 금융당국과 협의했다. 참여 기관들의 적극적인 실천으로 글로벌 금융문화 개선에 일조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동 노력에는 “창의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일부 나라에서 도입한 ‘고위급 보고 체계’(The high-level reporting mechanism)가 좋은 사례 중 하나다. 기업들이 부당한 요구를 받았을 때 적절한 신고 절차를 찾기에 난감한 경우가 많다는 의견에서 발전된 정책 모델이다. 고위급 보고 체계는 기업들이 뇌물을 요구받았을 때 정부의 고위 관료(고위급)에게 전화 등으로 신고를 하는 일종의 옴부즈맨 시스템이자 핫라인이다. 정부 고위 관료에게 신고 사항이 접수되기 때문에 기업들은 간편하고 안전하게 뇌물 요구를 신고할 수 있다. 투명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시민단체 등이 제3자로서 이 모든 과정을 감독할 수도 있다. 실제 콜롬비아의 경우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이 모델을 도입했고, 우크라이나는 국외 기업들이 투자를 조건으로 도입을 요구했다고 한다.

베트남과 교역하는 기업들이 통관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던 뇌물 관행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전자통관시스템 구축을 지원한 사례도 있다. 베트남 항구에서 컨테이너를 제때 찾으려면 ‘업무추진비’ 명목으로 50달러 정도의 뇌물을 주는 게 일상적이었다. 통관이 늦어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들은 정부에 전자통관시스템 구축을 권유하고 그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또한 세관 직원들이 초과근무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추진했다. 뇌물을 받는 이유가 낮은 임금 때문이라는 분석에 기초한 것이다. 피트 교수는 “공동 노력은 말을 행동으로 바꾸어 부패 척결에서 큰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해준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력”이라고 강조했다.

피트 교수는 우리나라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할 당시 부패방지위원장으로서 부패 문제와 관련한 가입 기준을 검토한 사람이다. 그는 최근 제정된 ‘김영란법’과 관련해 “국제사회에서는 부패를 절도 행위와 마찬가지로 여긴다. 아무리 작은 규모의 부패도 제재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은영 한겨레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ey.yang@hani.co.kr               등록 :2015-05-24 20:06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926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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