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서울시엔피오지원센터에서 진행된 지구촌나눔운동의 이해관계자 대화 참석자들. 이날 전·현직 임직원, 후원자 및 활동가, 정부기관,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이해관계자 12명이 모여 의견을 나눴다. 지구촌나눔운동 제공

지구촌나눔운동 첫 지속가능보고서
후원자·전직원 등 광범위한 참여
‘중요도 평가’ 통해 핵심 문제 도출 
불합리 직제 바꾸고 비효율도 수술
“컨설팅보다 더 강력한 변화 동기” 

최근 지속가능성 보고서 발간에 관심을 보이는 비영리단체가 많아지고 있다. 후원이나 기부로 사업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조직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할 책임을 다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정보 공개를 더욱 쉽고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지속가능성 보고서 형식을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간기업의 지속가능성 보고서가 사회책임경영(CSR)을 외부에 알리기 위한 목적이 앞선다면, 비영리단체의 경우에는 조직 운영에 실질적인 도움을 받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작성하며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듣고 조직의 중요 이슈를 선정하는 과정이 ‘조직 진단’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첫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작성하며 다양한 변화를 일궈낸 한 비영리단체의 사례를 따라가 보자.

지구촌나눔운동이 올해 처음 발간한 지속가능성 보고서 표지. 지구촌나눔운동 제공
지구촌나눔운동은 1998년에 설립된 국제구호 단체다. 10~12명의 상근 인력이 일하는데 규모가 크진 않지만 국제 개발·구호 분야에서 내실 있는 곳으로 통한다. 주로 후원자와 협력파트너의 지원으로 몽골·베트남·케냐·르완다 등 7개국에서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단체는 서울시 산하 비영리단체 지원조직인 서울시엔피오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얼마 전 첫 지속가능성 보고서 작성을 마무리했다. 올해는 지속가능성 보고서로 연차 보고서를 대체한다.

지구촌나눔운동이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하게 된 배경에 대해 조현주 사무총장은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영리단체로 첫발을 내디뎠던 1990년대엔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의미만으로도 단체를 꾸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업의 절차나 성과, 활동 내용은 물론 구성원의 노동 조건까지 다양한 정보를 원하는 이해관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말 못할 내부 고민을 찾아내 해결하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바깥에서 보기엔 15년이 넘는 이력을 가진 탄탄한 비영리단체지만 내부적으로 적잖은 문제들이 쌓여왔다. 과다한 업무로 구성원의 피로도가 늘 높다 보니 구성원의 업무 만족도가 점점 낮아졌고 퇴사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한 부서에 총무와 해외 사업 같은 연관성 없는 업무들이 함께 배정된 조직 구조 탓에 업무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호소도 많았다. 이 단체의 지속가능성 보고서 작성을 총괄한 한지혜 해외사업팀장은 “우리 조직을 처음부터 자세히 살피고 싶었다.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하면 어느 부분이 비어 있는지 혹은 넘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문제를 진단하고 개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안팎으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던 것이다.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작성하는 다양한 방법 중 많이 사용되는 것이 ‘이해관계자 대화’와 ‘중요성 평가’다. 이해관계자 대화는 말 그대로 조직과 관계를 맺고 있는 다양한 외부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다. 중요성 평가는 이해관계자 대상 설문을 진행하는 등의 방식으로 조직의 핵심 이슈를 선정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내부에서 말하기 어려운 문제를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한편 외부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조직을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지구촌나눔운동은 이해관계자 대화에 퇴사한 직원들까지 불러 솔직한 의견을 물었다.

중요성 평가에서는 현지 주민들의 자립을 돕는 사업 수행, 활동가의 근로 여건 개선,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 등이 핵심 이슈로 도출됐다. 이들 문제는 단체의 임원진과 외부 이해관계자들이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진행한 이해관계자 대화와 중요성 평가를 바탕으로 지구촌나눔운동은 크고 작은 변화를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조직 개편이다. 이해관계자 대화에서 업무의 명확한 구분과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기존 조직은 실 단위와 팀 단위가 섞여 있어 부서간 위계가 잘 맞지 않았고, 기획실 안에 업무 연관성이 낮은 교육·총무·해외사업 분야가 함께 운영되는 비효율도 문제였다. 더욱이 모금·홍보팀은 팀장 없이 팀원만 있었다. 지구촌나눔운동은 업무의 성격을 명확히 재정리한 뒤 업무 중심의 팀 단위로 조직을 개편했다. 또한 중요성 평가의 핵심 이슈 중 하나로 도출된 ‘참여 확대 노력’의 방편으로 누리집(홈페이지)도 개편했다.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수집한 정량적 데이터를 토대로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하기도 했다. 구성원들의 교육 시간을 연도별로 정리하다 보니 팀 혹은 파트별로 차이가 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직원별 교육시간을 형평성에 맞게 재조정했다. 더불어 이듬해까지의 정례화된 교육 계획도 수립했다. 기존에는 따로 정해진 교육 시간이 없었는데, 관련 데이터를 모아놓고 보니 정기적인 교육 필요성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작성한다고 해서 모든 조직이 변화를 도모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꾸준히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지만 비슷한 사건·사고가 반복되는 민간기업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지구촌나눔운동의 지속가능성 보고서 작성 과정에 실무적 도움을 준 박정호 지속가능경영원 선임연구원은 “지속가능성 보고서는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데 매우 유용한 도구다. 구성원들의 의지와 참여가 있어야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구촌나눔운동은 올해 첫 지속가능성 보고서 발간을 시작으로 단체의 규모와 자원을 고려해 격년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 조 사무총장은 “부분적으로 외부 컨설팅도 받아봤지만 지속가능성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나온 사안들이 조직 변화에 더 강력하게 추동력이 됐다. 스스로 찾아낸 문제점들이었고 이해관계자들에게 보고하는 것에도 더 책임감이 생긴다. 비영리단체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후원자와 수혜자 모두에게 신뢰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양은영 한겨레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ey.yang@hani.co.kr                등록 : 2015.03.15 19:26

지속가능성(지속가능경영) 보고서

기업의 재무적 성과뿐 아니라 환경·사회 성과를 함께 담은 보고서다. 2000년을 전후해 기업의 사회책임경영(CSR)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대기업들이 발간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기업뿐 아니라 정부기관, 노조, 비영리단체 등 다양한 형태의 조직에서도 발간하는 추세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해당 조직에 원하는 바를 전달하고 확인하는 쌍방향 소통 채널로 활용되고 있다.



[양은영 선임연구원의 다른 기사 더보기]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더 나은 사회] 이윤추구 ‘짧은 상품주기’로부터 독립…재사용 ‘순환경제’로의 이행

서울 노원구청과 노원되살림네트워크, 노원사회적경제활성화추진단은 중고벼룩시장 및 자원순환 행사로 매년 ‘노다지’(노원에서 다시 쓰는 지혜) 장터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6월21일 노원구청 앞에서 열린 노다지 장터. 노원사회...

  • admin
  • 2015.12.21
  • 조회수 7376

[더 나은 사회] 마을이 키우는 아이…‘사회적 경제 특구’ 들어보셨나요?

서울 관악구청과 관악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가 ‘서울시 사회적 경제 예비특구 준비 사업’의 일환으로 마련한 ‘서로돌봄허브’ 공간. ‘공동체육아’의 플랫폼으로서 역할이 기대된다. 관악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 제공 지난 10월 말...

  • admin
  • 2015.12.07
  • 조회수 7095

[더 나은 사회] 해킹? ‘시빅해킹’!…정보기술이 만들어내는 도시 삶의 혁신

지난 1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2015 사회혁신 콘퍼런스’에 참석한 오스카르 몬티엘 코데안도멕시코 공동대표가 멕시코의 시빅해킹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한국은 디지털 정보 인프라 측면에서 가장 우수한 국가 중...

  • admin
  • 2015.11.23
  • 조회수 6848

[더 나은 사회] ‘문화 향유권’ 돕는 사회적 기업, 공동체 성장 이끈다

모두를 위한 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모극장)이 열었던 ‘랩탑영화제’ 모습. 모극장은 영화를 보기 어려운 시민들과 공동체를 찾아가 상영하는 대안적 영화 유통 및 배급 사업을 펼치고 있다.  모극장 제공 #장면1. 전남의 한 ...

  • admin
  • 2015.11.09
  • 조회수 6595

[더 나은 사회] “삶의 질이 경제적 성취보다 더 중요”…‘탈물질주의’ 경향 뚜렷

와 희망제작소가 지난 2월 경기도 안산 경기창작센터에서 연 ‘광복 100년 대한민국의 상상’ 행사에 참가한 청년들이 자신들이 꿈꾸는 미래 사회의 모습을 유리창에 적어둔 모습.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 alt="와 희...

  • admin
  • 2015.08.31
  • 조회수 7255

[더 나은 사회] 아시아 사회혁신가들, ‘민달팽이족’ 위해 손잡다

홍콩 사회적 기업 ‘라이트비’는 저소득층 싱글맘들을 위한 집인 ‘라이트홈’을 운영한다. 거주자들은 거실과 주방을 함께 사용하며 서로를 돕는 동반자가 되어간다. 라이트비 제공 제2회 아시아청년사회혁신가 포럼 #1 사티안 ...

  • admin
  • 2015.08.17
  • 조회수 6354

[더 나은 사회] ‘로컬푸드 도시락’에 평창 올림픽 지속가능성 담는다

송어·감자·더덕 등 강원 특산물로 관람객 등에 공급할 도시락 6종 개발 대회 끝나도 대표 먹거리로 브랜딩 올림픽-지역경제 선순환 모델 가능성 대기업 ‘스폰서십 독점권’ 해결해야 지난달 21일 강원도 원주에서 평창동계올림픽 ...

  • admin
  • 2015.08.03
  • 조회수 7823

[더 나은 사회] 시민 2581명 쌈짓돈, 사회 혁신의 마중물 되다

사회적기업 크라우드펀딩 대회 6월 한달 동안 열린 ‘2015 사회적기업 크라우드펀딩 대회’ 에서 수상한 참가팀들이 2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시상식 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제공 #1. 지능평가지수가 ...

  • admin
  • 2015.07.20
  • 조회수 6682

[더 나은 사회] “요리 성적은 1등이죠”…‘셰프의 꿈’ 키우는 아이들

‘영셰프스쿨’ 학생들이 지난해 가을 서울 영등포구 하자센터 요리실습장에서 자신들이 만든 요리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가니제이션 요리 제공 사회적 기업 오요리 ‘영셰프 스쿨’ 학교 밖 청소년 등 2년간 요리교육 ...

  • admin
  • 2015.07.06
  • 조회수 6911

[더 나은 사회] 국민들 80% “기업 사회공헌 미흡하다”

2015년 사회책임경영(CSR) 인식조사 국민들 10명 가운데 8명은 국내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겨레경제연구소가 서울시민 1000명에게 ‘국내 기업 사회공헌 및 사회책임경영에 대한 인식’을 설...

  • admin
  • 2015.06.23
  • 조회수 6949

[더 나은 사회] “함께 모싯잎 수확해 마을 지켜준 어르신께 연금 드려요”

정읍 송죽마을 마을연금 이야기 송죽마을 쑥모시영농조합법인 조합원들이 내장산 자락에서 모싯잎을 채취하고 있다. 쑥모시영농조합법인 제공 “나이 80살 이상이면서 지역 공동체에 20년 이상 머물렀거나, 20년이 채 안 됐더라도 마...

  • admin
  • 2015.06.08
  • 조회수 7161

[더 나은 사회] “뇌물·청탁, 장관한테 직접 신고하는 ‘핫라인’ 어떨까요?”

경제협력개발기구 부패방지위원장을 지낸 마르크 피트 바젤대 교수가 19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2015 지도자 정상회의’ 반부패 세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제공 마르크 피트 OECD...

  • admin
  • 2015.05.26
  • 조회수 6220

[더 나은 사회] ‘사회적 경제’는 사회주의?…새누리당 자가당착 색깔론

새누리당이 지난해 4월 국회에서 개최한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 국회 제공 사회적경제기본법 왜 지연되나?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안의 4월 임시국회 처리가 불발되면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 admin
  • 2015.05.11
  • 조회수 7139

[더 나은 사회] 자선의 진화, 사회혁신 이끄는 ‘벤처자선'

더그 밀러 아시아벤처자선네트워크 회장이 21일 총회 환영사에서 유럽과 아시아의 벤처자선 현황을 발표하고 있다. 에이브이피엔 제공 아시아벤처자선네트워크 연례 총회 가보니 사회적 성과 사업에 ‘벤처 방식’ 기부 28개국 벤...

  • admin
  • 2015.04.27
  • 조회수 7575

[더 나은 사회] 일자리 두배 늘고 매달 4천명 찾아…‘농촌 회생 모델’ 실험중

구례자연드림파크에는 매달 3000~4000명의 조합원·시민·학생들이 방문해 견학·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예비 유치원 교사들이 쿠키 만들기 체험을 하는 모습. 아이쿱생협 제공 구례자연드림파크 1년 성과는 19개 공장서 340개 품...

  • admin
  • 2015.04.13
  • 조회수 7772

[더 나은 사회] 소액 기부금 ‘포인트로 돌려받아 또 기부’ 선순환 모델

[경제의 창] 더 나은 사회 ‘임팩트 기부’ 어떻게 운영되나 아프리카 가나의 마을기업 여성바구니협동조합 조합원들이 바구니를 제작하고 있다 재료비가 부족한 이들에게 더브릿지의 임팩트 기부금은 큰 도움이 되었다. 더브릿지...

  • admin
  • 2015.03.30
  • 조회수 6616

[더 나은 사회] “이해관계자 쓴소리가 보약…잘못된 조직·관행 확 바꿨죠”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서울시엔피오지원센터에서 진행된 지구촌나눔운동의 이해관계자 대화 참석자들. 이날 전·현직 임직원, 후원자 및 활동가, 정부기관,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이해관계자 12명이 모여 의견을 나눴다. 지구촌...

  • admin
  • 2015.03.16
  • 조회수 7388

[더 나은 사회] 공동육아어린이집, 협동조합이 운영하면 안 되나요?

지난해 10월 경기 하남 미사리 경정공원에서 공동육아 부모·교사·아동 등 3000여명이 참석해 열린 ‘제8회 공동육아 한마당’에서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 합창을 하고 있다.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제공 사회적협동조합 전환 논란올해...

  • admin
  • 2015.03.02
  • 조회수 7667

[더 나은 사회]잘나가던 직장 그만두고 ‘비영리’로 간 까닭은…

민간기업에서 일하다 비영리단체 활동가로 변신한 이상진·최호진·박성호씨(왼쪽부터). 이상진씨는 민간 컨설팅업체에서 일했으며 우리금융지주에서 임직원 혁신 전략을 수립하기도 했다. 최호진씨는 외국계 회사에서 10여년 동안 페인트를...

  • admin
  • 2015.02.16
  • 조회수 6885

[더 나은 사회] “우리끼리 돕자”…전국 단위 ‘연대 금융’ 첫발 뗀다

사회혁신기금은 사회혁신기업가포럼 회원사들이 주축이 돼 지난해 5월부터 설립 논의가 진행됐다. 지난해 11월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포럼이 주최한 행사에 참석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기금 설명회가 끝난 뒤 참석자들이 기념사...

  • admin
  • 2015.02.02
  • 조회수 6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