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농사체험장 담당자 김일오 차장이 지역 주민의 도움으로 유기농 재배를 하고 있다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자연드림파크가 없었다면 저도 구례를 떠나야 했을 거예요.”
전남 구례군 용방면에 있는 아이쿱(iCOOP) 자연드림파크에서 일하는 송지연씨의 말이다. 올해 스물셋인 송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4년째 자연드림파크 유정란 공방(공장)을 일터로 삼고 있다. 구례 토박이인 그도 처음엔 학교를 졸업하면 일자리를 찾아 당연히 다른 지역으로 떠나리라 생각했다. 선배와 친구 대부분이 그랬다. 삶의 전환점이 찾아온 건 2014년. 우연히 자연드림파크에 실습을 나왔다가 정규직으로 자리를 잡은 게 계기가 됐다. “가족과 떨어지지 않아도 되고, 영화나 공연도 볼 수 있고 사우나·헬스장도 있잖아요. 친구들도 부러워해요.” 일할 곳이 있고 문화생활까지 누릴 수 있으니 고향을 떠날 필요가 없다며 송씨는 활짝 웃었다.
지난달 21일 열린 구례 자연드림파크 4돌 기념 심포지엄 ‘구례를 말하다’에서 참가자들이 토론하는 모습. 왼쪽부터 김종걸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강현수 충남연구원장, 정태인 칼폴라니연구소장, 차형석 시사인(IN) 기자, 정경록 산업통상자원부 지역경제과장, 김동곤 기획재정부 사회적경제과장.
아이쿱은 전국 217개 자연드림 매장을 기반으로 하는 국내 최대 규모 협동조합이다. 2016년 기준으로 552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구례 자연드림파크는 생산 공정을 한데 모으고 체험과 관광이 가능한 복합 문화·산업단지를 표방하며 2014년 문을 열었다. 4만5천평 규모의 구례 자연드림파크에선 송씨와 같은 구례 청년들 40여명이 일하고 있다. 모두 고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한 경우다. 이들을 포함해 전체 직원 521명 중 80%가 구례 출신이다. 일자리가 가져온 활력은 지표가 증명한다. 계속 줄어들기만 하던 구례군 인구는 아이쿱이 첫 공방을 연 2012년 증가세로 돌아서 5년간 꾸준히 늘었다. 인구 감소로 골머리를 앓는 전남에서 5년 연속 인구가 늘어난 기초지방자치단체는 구례군 단 하나다.
구례군과 아이쿱생협의 절묘한 ‘협업’
이곳에서 나오는 급여소득만 연간 109억원이다. 여기에다 영화관, 게스트하우스, 선술집, 1년에 한 번 개최하는 록 페스티벌 등으로 관광·문화체험을 위한 단기 방문객이 늘어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누적 방문객은 올해 초 50만명을 돌파했다. 이처럼 유동인구가 늘면서 구례에도 세련된 카페와 식당이 생겨났다. 예전 같으면 남원까지 가야만 했던 일이다. 2015년 귀촌해 자연드림파크에서 일하는 안정숙씨는 “서울에선 사람에, 생활에 하루하루 치였는데 지금은 자연 속 여유와 문화생활이 모두 가능해 너무 행복하다. 이런 일자리가 있는데 왜 서울에 가고 싶겠냐”며 구례 자랑에 여념이 없다.
지난달 21일 열린 구례 자연드림파크 4주년 기념 심포지엄 ‘구례를 말하다’에서 강현수 충남연구원장이 발제를 하고 있다.
구례군에 아이쿱 자연드림파크가 자리잡은 것은 지역과 아이쿱생협의 필요가 꼭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와 일자리 소멸에 고심하던 구례군은 아이쿱생협이 생산 클러스터를 세울 부지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적극 유치에 나섰다. 올해 9월 자연드림파크 개장을 앞둔 괴산군은 당시에도 물망에 올랐는데, 아이쿱이 괴산군과의 협업에 어려움을 겪던 참이었다.
처음엔 3천평 규모 설비만 고려했지만, 모든 생산 공정을 한곳에 모으기로 하면서 규모가 10배 이상 커졌다. 국내산 밀·팥 등을 납품하기로 계약해놓고 값싼 수입산을 몰래 섞는 ‘혼입’을 원천적으로 막을 방법을 고심하던 아이쿱은, 아예 생산 공정을 한데 모아 철저히 관리하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다. 현재 아이쿱에서 판매하는 제품 대부분이 구례와 괴산에서 생산되고 있는데, 조금이라도 혼입이 의심되면 해당 라인 작동을 모두 멈추고 검수에 들어간다.
구례 자연드림파크의 성공 비결은 세 가지로 꼽힌다. △26만 조합원 △단순한 생산 단지가 아닌 관광과 체험이 가능한 복합문화단지 조성 △지역과 어우러짐 등이다.
지난달 21일 열린 구례 자연드림파크 4돌 기념 심포지엄 ‘구례를 말하다’ 모습.
뭐니 뭐니 해도 1등 공신은 유기농·친환경 먹거리를 고집하는 전국 26만 조합원이다. 충성도 높은 조합원들은 쉴 겸, 체험 겸 가족 단위로 자연드림파크를 방문해 자연 속에서 지내면서 생산 공정을 눈으로 확인한다. 게스트하우스, 사우나, 영화관, 수제맥줏집 등 다양한 문화 시설은 외부 방문객 덕택에 유지가 가능했다. 꾸준히 찾는 방문객의 발길이 지역의 삶의 질도 높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시설을 만들어도 지역과 잘 어우러지지 못하면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점도 중요하다. 구례 자연드림파크가 조합원만이 아닌 지역과 소통하는 개방형 모델을 지향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일자리와 문화시설을 만들고 의료·장학 등 지역 사회공헌사업을 펼쳤다. 일례로, 구례군에는 산부인과가 없었는데 아이쿱이 2억원을 군에 지원해 운영을 시작했다. 연 2천만원씩 장학금도 준다.
“너무나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어 이론을 갖다댈 필요가 없다.” 지난 4월21일 열린 구례 자연드림파크 4돌 기념 심포지엄 ‘구례를 말하다’에 참여한 강현수 충남연구원장의 말이다. 강 원장은 “클러스터는 같은 산업군이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을 말하는데, 구례에는 협동조합을 기반으로 라면, 베이커리 등 다양한 종류가 모였다는 점이 독특하다”며 “개방적이고 유연한 조직을 만들어 나가는 게 관건”이라고 조언도 덧붙였다. 대기업 클러스터가 자본으로 무장하는 데 반해 사회적 경제 클러스터는 지역과의 상생, 조합원 간 결속력이 무기다. 강 원장이 전한 조언의 핵심은 조합원만 중시하는 폐쇄성이나 사회적 가치 추구를 이유로 오히려 조직 내부가 가부장적으로 경직되다 보면 발전 동력을 잃는다는 것이다.
이날 심포지엄에 참여한 김종걸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역시 “사회적 경제 클러스터 성장을 위해서는 자발·자조의 원칙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정부 보조금, 지원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례 자연드림파크 4돌 기념행사에는 그동안 애써온 직원, 조합원, 주민의 노력을 드러내려는 시도가 많았다. 칭찬하고 싶은 직원과 내용을 적으면 당사자에게 전달했다. 이 외에도 ‘나는 구례자연드림파크의 ○○이다’를 써 붙이기도 했는데, 많은 직원들이 스스로를 ‘씨앗’, ‘자부심’ 등으로 표현해 서로에게 소소한 감동을 안겼다. 아이쿱생협 제공
전남 구례군 용방면에 4만5천평 규모로 자리한 자연드림파크. 아이쿱생협 제공
정부, 사회적경제 기술개발에 100억 지원
최근 준공한 베이커리 공방과 새싹농사체험장도 지역과 자연과 상생해 좋은 먹거리를 만들겠다는 원칙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빵, 쿠키류를 생산하는 베이커리 공방은 최초 설비 자금이 많이 필요하지만, 역시 혼입 방지 등 먹거리 안전을 위해 내린 결단이다. 유기농 재배를 원칙으로 우리 종자를 키우는 새싹농사체험장을 마련한 것도 거대 자본에 잠식된 종자 시장에서 우리 종자를 지키고 유기농업을 키우기 위해서다. 김일오 새싹농사체험장 담당자(차장)는 “초기에 잡초가 일어나는 거친 땅을 유기농지로 일궈내느라 인건비, 트랙터 대여비 등 5천만원 가까이 들었는데 그해 수익이 5천만원이 안 났다”면서도 “이 과정을 지지해주는 조합원들이 있어 유기농법을 고집하고 지역 어르신의 조언을 받으며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들려준 얘기는 흥미롭다. “그래서 농사짓겠나?”며 혀를 차던 동네 어르신들에게 “이제 저희도 유기농 포기하고 비료 써야 할까봐요” 하고 너스레를 떨면 “자네들이 퍽이나” 하며 웃는단다. 일하기로 약속한 날이 아니어도 농지를 돌아보며 “이쯤 잡초 뽑아야 된다”고 자기 땅처럼 돌봐주는 사이가 됐단다.
구례군 용방면 자연드림파크 모습.
구례군 용방면 자연드림파크 모습.
유기농법이나 맛을 살리면서도 건강함을 유지하는 먹거리 신기술 개발은 아이쿱이 지속적으로 고민해나가는 분야다. 정부도 민간이 만든 성공 사례를 눈으로 확인하고 기술 혁신을 지원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100억원 예산을 투입해 사회적 경제 조직 기술개발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정경록 산업통상자원부 지역경제진흥과장은 “정부가 기술개발 목적으로 기업에 연간 20조원가량을 지원하는데 사회적 경제 지원은 거의 없었다”며 “사회적 경제가 기술 혁신까지 갖춰 지역 재생을 이끌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인 만큼 보다 적극적으로 협력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연드림파크가 있는 구례는 ‘사람들이 돌아오는 마을’에서 사회적 경제 원칙과 기술 혁신, 지역과의 협업으로 일구는 새로운 산업 클러스터로 진화하고 있다.
구례/글·사진 박선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so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