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 국제개발협력의 현실과 방향 진단 좌담회
빈곤 포르노그래피 이제 지양해야
국제개발협력의 철학과 가치 성찰할 때
한국 꼬리표 떼고 국제사회 일원 되자
누군가를 돕는 일은 선하다. 하지만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장 압축적인 성장으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다른 나라를 돕는 나라가 된 대한민국. 민간의 활발한 지원활동과 정부의 공적개발원조(ODA)를 포함한 국제개발협력은 양적으로는 빠르게 증가했다. 하지만 개발협력의 철학과 비전이 빈곤하고, 협력의 방식과 시스템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정치와 정부 핵심부의 몰이해와 무관심 속에서 준비안된 단체들이 개별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우려도 계속된다. 이 틈을 비집고 최순실 같은 국정농단세력이 공적원조자금을 사적으로 활용할 틈이 생기기도 했다. 한국이 세계와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1일 전문가와의 좌담으로 짚어봤다.

좌담에는 김현주(이하 김)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해외사업부 팀장, 장승권(장) 성공회대 협동조합경영학과 교수, 한재광(한) 발전대안 피다 대표가 참여했으며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의 사회(사)로 진행됐다.

1일 오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회의실에서 국제개발협력 전문가들의 좌담회가 열리고 있다. 김현주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해외사업부 팀장(왼쪽 앞줄부터 시계방향), 한재광 발전대안 피다 대표, 장승권 성공회대 협동조합 경영학과 교수,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센터장.
1일 오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회의실에서 국제개발협력 전문가들의 좌담회가 열리고 있다. 김현주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해외사업부 팀장(왼쪽 앞줄부터 시계방향), 한재광 발전대안 피다 대표, 장승권 성공회대 협동조합 경영학과 교수,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센터장.

국제개발협력의 패러다임이 전환될 때라는 말이 나온다.

 한국의 국제개발협력 모델은 뭘까 생각해 본다. 순수한 인도주의형, 식민지 부채의식 때문에 도와주는 형이 있다면 한국은 국익추구형 아닐까? 우리의 일자리, 국위선양, 아프리카와의 정치적 동맹, 나중에 유엔에 뭐 할 때 우리를 도와주는 힘이 되겠지 하는 기대가 그것이다. 개발협력을 왜 하는지 철학이나 가치에 지금까지 변화가 없다. 그 중간에 사회적경제, 협동조합을 통한 접근, 민간단체에 주도권을 주는 것이랄 지 기업적이고 유행타는 접근이 그때그때 부각되는 상황이다.

 국제개발협력이 양적으로는 크게 늘었으나 그에 관한 철학이나 가치는 학계, 정부, 시민사회 모두 굉장히 부족하다. 무엇보다 우리의 국제개발협력은 해당 사회의 정치와 문화적 관점이 결여돼 있다. “우리도 개도국이었다 잘살게 됐는데 그 경험을 나눠줄 게, 새마을 방식으로 해봐” 하는 식이다. 이대로 가면 우리의 경험으로 개도국을 찍어누르는 문화적 제국주의자가 될까 우려된다.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은 ‘깃발꼽기’란 비판을 받아왔다. 물이 부족하다고 하면 우물을 파자, 못배운다 하면 학교를 짓자하는 식이었다. “나는 잘사는 나라에서 온 개발자, 너는 도움을 받는 개발대상”이란 의식을 깔고 있는 것었다. 이제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아프리카 아이들의 입학률을 보면 90%가 넘는다. 그런데 아이들이 4∼5학년에 되어 글을 읽을 수 있느냐면 그렇지 않다. “문제는 학교짓는게 아니구나, 아이들이 실제로 배워야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야 하고 그게 목표가 되어야 한다. ‘깃발꼽기’를 없애려면 한국의 성과라는 꼬리표를 떼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국제문제 해결에 기여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탄핵 정국에서 최순실이 인사 등을 통해 국제개발협력에도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디에이를 자신의 이해를 위해 갖다쓰는 사례도 있었다. 국제개발 ‘적폐’ 란 말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규모의 차이일 뿐 그런 일은 계속 있어왔다. 안좋은 말로 하면 ‘눈먼 돈’이기에 눈치 빠르고 권력이 있는 사람이 먹고 싶은 동기가 생긴다.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 억단위에서 지금은 백억, 천억 단위로 그 규모가 굉장히 커졌다.

김 (원조를 받는) 개도국에서는 돈의 가치가 더 크니까 ‘눈먼 돈’이 주는 영향, 즉 부정부패가 더 크다. 시민사회를 건너뛰니까 눈먼 돈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개도국에서 정부가 개발협력을 하는데 현지 국회를 통하겠나, 노동조합을 통하겠나? 정부 관료하고만 하는 것이다. 실제 사업 안에 시민사회가 얼마나 들어올 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눈먼 돈 없애겠다고 회계 증빙과 보고 강화하는 데 이는 가장 쉬운 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새 정부의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 정부에 기대가 많았지만 현행 유지에 머물러 실망스럽다. 특히,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온 ‘원조 분절화’가 해결되지 않았다. 한국의 오디에이 예산이 2조6천억원인데 이걸 43개 기관이 나눠 집행한다. 사업이 중복되고, 조절에 따른 기회비용, 거래비용이 너무 많이 쓰인다. 보도를 보니 무상원조를 코이카(KOICA)로 통합하려고 했는데 타 부서가 반대해서 무산됐다고 한다.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개발협력은 정부의 오디에이보다 훨씬 큰 영역이다. 제가 몸담은 기관은 1년에 600억원 모금해서 300억원 정도의 해외사업을 하는데 이런 단체가 100개 이상이다. 이런 민간과 정부 사이에 대화나 통합적 경험이 축적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이게 잘 되면 상호견제와 감시가 가능할 텐데 그렇지 못하다. 오디에이는 정부의 것, 소수전문가의 것이란 생각, 세금가지고 하는 것이란 생각일 뿐이고 시민의 자리가 없다.

 개발협력의 자발성과 현장성을 높이기 위해 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효과적인가?

 개발협력을 하는 전문가가 “그 나라에 사회연대경제가 있나? 성숙한 자본주의에서만 되는 것 아냐?” 하는 생각을 갖고 보면 사회적경제 방식이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내부를 잘 들여다 보면 협력의 잠재력이 매우 크다. 각국의 사회적경제 양상이 다른 것은 너무 당연하다. 제도, 역사, 변화 가능성이 완전히 다른데 이런 것을 충분히 알고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어떤 표준화한 모형을 이식하는 방식은 곤란하다.

 국제개발협력에 민간의 역할도 큰데, 이쪽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무엇인가?

 현안은 ‘빈곤의 포르노그래피’(Poverty Pornography) 문제다. 모금의 효과를 늘리기 위해 인권을 어긋나더라도 비극을 극대화시켜 홍보하는 것을 말한다. 민간 뿐 아니라 정부도 해당하는 얘기다.

 그렇지 않아도 아프리카 콘텐츠가 부족한 한국에서 초등학생에게 아프리카는 모금광고 속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그 아이가 국가간에 문제를 함께 해결해 가는 개발협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자랄까. 활동가들도 이제 그런 광고를 그만하자고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더 많이 모금해서 도우면 좋지 않냐는 의견도 있다. 그런 방송한 지 20년 됐는데 “왜 아직 아이들은 학교 못가냐”를 묻는 후원자도 있다.

 이런 문제를 포함해 앞으로 국제개발협력이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정부와 민간이 실제로 하는 일이 이렇고 이렇게 해 나갈 거다하고 다른 언어로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언어를 찾아내는 시험대에 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의식있는 후원자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 내가 3만원 내면 1만원은 활동가들 인건비 나가고 나머지는 마을의 인프라에 가도 된다는 합의가 있어야 한다. 국제개발협력은 한국이 국제사회와 만나는 방식이다. 한류열풍 때문에 우리를 자랑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너무 빨리하다 보니 국제사회와 만나는 자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놓쳤다.

장 우리도 오랫동안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았고, 이를 통해 성공적으로 제도화 한것도 많다. 한국의 신협이 대표적 사례다. 우리의 경험을 잘 정리하고 가르치는 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상호 학습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접근해야 한다. 주는자와 받는 자라는 구도를 넘어서야 한다. ‘보편적인 인류애’에 기초한 국제개발협력의 철학과 가치를 세울 필요가 있다.

글·사진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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