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 오후 서울 한겨레신문 청암홀에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한국타이어 나눔재단 공동주관으로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사회공헌의 역할과 기대-집합적 임팩트를 중심으로’ 포럼이 열렸다. 신현상 한양대 교수, 전은호 나눔과 미래 시민자산화팀장,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MYSC) 대표, 송경용 GSEF(국제사회적경제협의체) 공동의장, 문보경 사회투자지원재단 상임이사, 정경록 산업통상자원부 지역경제진흥과장, 강혁 한국타이어 나눔재단 사무국장, 윤경효 한국지속가능발전센터 사무국장, 송진호 한국국제협력단 기획이사(왼쪽부터).
아프리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아이가 잘 크려면 부모만으로 되지 않고 이웃, 학교, 지역이 관심을 갖고 힘을 합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사회 문제가 사실 아이 키우기처럼 복잡하다. 드러난 문제가 얼핏 단순해보이더라도 수면 아래에는 훨씬 복잡한 어려움이 잠겨있다. 현상에 홀로 맞서려는 개인, 기관, 정부의 시도는 수시로 좌절한다.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우듯,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서로 다른 전문성과 자원을 가진 여러 주체가 협업해야 한다. 최근 사회 문제의 성격에 맞춰 사회 문제의 해법으로 주목받는 모델이 ‘집합적 임팩트’(Collective Impact)이다. 외국에서 개념화된 ‘집합적 임팩트’는 쉬운 말로 ‘협업’이다. 대신 △중추 지원조직의 적극적 역할 △공동 목표 설정 △성과 측정 방법에 대한 합의 △참여 기관의 지속적 소통 △서로 배우며 역량 키우기 등의 원칙을 체계화한 협업이다. 특히, 참여하는 조직의 입장에서 독립적인 아젠다를 고집하지 않고, 다른 조직과의 집합적 임팩트 모델 속에서 새로운 아젠다와 비전을 설정하는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집합적 임팩트(Collective Impact)의 5가지 구성요소. 자료: 김정태 MYSC 대표 발제문
미 신시내티 교육가네트워크 공교육 혁신 이뤄내
해마다 10% 학생이 고교를 중퇴할 만큼 공교육이 흔들리는 미국에서 시도한 신시내티 주의 혁신이 그러한 사례이다. 2006년 신시내티의 교육 비영리단체 ‘스트라이브 투게더’는 지역 내 기업재단, 지자체, 대학, 비영리단체 등에서 300여명의 교육 혁신가들을 모아 함께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향상과 공교육 개선을 목표로 세웠다. 참여 기관별로 역할을 나눠맡고, 지속적인 대화로 학생들의 더나은 교육 환경을 위해 함께 무얼 고쳐야 할지를 파악했다. 그 결과, 학생의 학업 성취도가 80% 이상 개선됐고, 고교 졸업률도 함께 상승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런 협업방식은 특히,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한 번의 행사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성과를 내도록 하는 방법으로 채택되고 있다.
기업, 소셜벤처, 병원, 자폐성장애인 자립 위해 뭉쳤다
국내에 ‘집합적 임팩트’를 소개하는 포럼이 지난달 31일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렸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한국타이어 나눔재단이 공동주관한 이 포럼은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사회공헌의 역할과 기대’를 주제로 ‘집합적 임팩트’의 도입 필요성과 과제를 논의했다.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MYSC) 대표는 자폐성 장애인 자립을 위해 설립된 ‘AIN(자폐성 장애인 임팩트 네트워크)’ 사례를 들며 “많은 소셜벤처들이 자폐성 장애인 교육과 취업 컨텐츠를 제공하고 있지만, 특정 생애주기 혹은 학습 과정만을 다루고 있어 장애인들의 진정한 자립을 지원하기는 역부족이다”며 “집합적 임팩트는 이렇게 고립되고, 흩어져있는 사회자원들을 함께 묶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자폐성 장애인 임팩트 네트워크는 엠와이소셜컴퍼니가 중추기관으로 SAP Korea, 신촌세브란스 병원 등의 파트너 기관과 동구밖, 모두다 등 자폐성 장애인 컨텐츠를 다루는 소셜벤처들로 구성된 집합적 임팩트 협의체다. 지난해 IT 역량을 기반으로 자폐성 장애인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사업을 운영했다. 재원은 SAP Korea가, 학습 단계별로 관련 콘텐츠를 가진 소셜벤쳐들이 결합하고 그 외 파트너 기관들은 프로그램 설계 자문을 지원했다. 그 결과, 지원대상이었던 3명의 장애인들이 국제 소프트웨어 자격증을 획득해 기업에 취업하고, 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지역 사회자본 축적, 장기적 성과에 집중해야
전은호 나눔과 미래 시민자산화팀장은 지역 문제 해결과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연결하는 방법으로 ‘기업 사회적 책임’(CSR)과 ‘공유가치 창출’(CSV)에서 한 발 나아가 ‘지역 공동체 자산 형성’(Community Wealth Building)모델을 제안했다. 전 팀장은 “이 모델은 외부 자원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 주체들이 함께 ‘집합적 임팩트’ 방식으로 참여해 자원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며, 미국 클리블랜드 주의 지역재생 사례를 소개했다. 클리블랜드는 1980~90년대 산업 쇠퇴로 심각한 실업과 빈곤을 겪었다. 2005년부터 클리블랜드재단이 중심이 돼 이 지역 대학, 병원, 공공기관의 협의체를 만들었다. 이들은 지역 내 대학, 병원 등의 청소, 세탁 일감을 새로 만든 지역 노동자협동조합에 제공하고 태양광에너지, 수경 온실 사업 등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일자리 창출과 소득증대에 성공했다. 전 팀장은 “이런 접근방식은 진행 과정에서 사회자본들이 축적되기에 장기적 성과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현상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기업의 사회공헌이 진정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른 주체들과의 파트너십이 중요하다”며 “‘집합적 임팩트’의 협력 체계를 만들려면 참여 주체에 공정하게 이익을 배분하고, 상호학습으로 상생하는 협력의 틀이 있어야 지속 가능하게 운영될 수 있다”고 했다.
'그린시티그로워즈(Green City Growars)'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클리블랜드 중심가에 위치한 수경온실 모습. 지역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클리블랜드 지역재단,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교, 대학 병원, 지자체 등 다양한 기관이 참여해 2009년 세탁협동조합인 '에버그린협동조합'과 태양광에너지 협동조합에 이어 2011년 설립돼 약 50여명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원예그룹 웹페이지 갈무리
지역 문제 해결, 개별 기업 사회공헌만으로는 한계
강혁 한국타이어 나눔재단 사무국장은 한국타이어 나눔재단이 운영하는 청년 사회주택 사업을 사례로 들며, “지역 발전을 위한 생태계를 만들고 그 성과를 측정하는 것은 한 기업의 힘으로 힘들다”며 “공공, 시민사회, 더 많은 기업들이 참여할수록 지역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 한국타이어 나눔재단은 2016년부터 사단법인 나눔과 미래, 법무법인 태평양, 재단법인 동천과 함께 청년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주택을 조성해 제공하고 있다. 내년에는 에스에이치공사도 함께 참여해 사업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지역산업 문제를 집합적 임팩트 방식으로 풀기 위한 방안들도 논의됐다. 정경록 산자부 지역경제진흥과장은 “지역산업 위기 문제에 거시적으로 접근하는 중앙정부의 방법은 한계가 많다”며 “지방정부나 지역 공공기관 등을 중심으로 ‘집합적 임팩트’ 방식의 상향식 접근법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정부는 지속해서 데이터를 제공하고, 관계 부처가 함께 쓸 수 있는 예산을 편성하며,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시스템을 도입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송진호 한국국제협력단 기획이사는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일방적이고 시혜적인 한계를 넘어 사회관계형 파트너십으로 변해야 한다”며, “지금까지 수혜 대상이던 시민을 참여자로 이끌고, 사회 문제를 사회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집합적 임팩트’ 모델이 확산하고 자리 잡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글 사진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ek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