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에 대한 영구 독점적 권리를 행사할 유인을 줄이는 제도를 자산거래에 도입하면 불평등을 줄이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 사진은 재개발을 앞둔 서울 잠실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완전경쟁을 전제로 한 ‘경매 원리’를 사회 모든 분야에 적용한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 에릭 포스너 시카고 로스쿨 교수와 글렌 웨일 마이크로소프트 수석연구원이 함께 쓴 화제의 책 <급진적 시장들>은 그런 세상을 미리 보여준다.
고대 아테네 사회엔 ‘리투르지’란 제도가 존재했다. 재산이 많은 1000명에게 군대나 건설 등 공적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대도록 한 것. 재밌는 건 1000명을 최종 선정하는 방식이다. 가령 ㄱ이란 사람에게 의무가 예고됐다고 치자. 그는 자신보다 재산이 더 많다고 생각되는 다른 사람(ㄴ)을 지목해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때 ㄴ은 순수히 리투르지 의무를 받아들이거나, 혹은 자신의 전 재산을 자신을 지목한 사람(ㄱ)의 전 재산과 맞바꾸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지은이들은 불평등을 원천적으로 없애려면 이처럼 자산에 대한 영구 독점적 권리를 행사할 유인을 줄이는 제도를 각 부문에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동소유 자기평가 세제’(Common Ownership Self-assessed Tax·COST)가 그 예다. 예컨대 부동산에 대해 자기 스스로 가격를 매기고, 그에 따라 세금을 내는 방식(Your Price Your Tax)이다. 단 원하는 구매자가 나타날 경우엔 반드시 그 가격에 팔아야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정치 영역에도 적용할 수 있다. 1인1표제를 뼈대로 한 현재의 투표권 제도는 단점도 많다. 다수자의 지배를 용인할 뿐더러, 대상(쟁점, 후보)에 대한 ‘선호 강도’를 드러내지 못하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 환경문제에 아주 많은 가치를 매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일자리 문제를 가장 중시할 수도 있다. 만일 시장가격의 ‘신호’ 기능을 투표권에 도입한다면? 투표크레딧이 해답일 수 있다. 유권자들에게 일정 수의 투표크레딧을 부여하되 다가오는 선거에 사용할 수도, 다음 선거를 위해 저축할 수도 있게 한다. 자유로운 ‘거래’도 허용된다. 대신 ‘제곱투표’(Quadratic Voting)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예컨대 10000크레딧은 100표를, 100크레딧은 10표만큼의 효력을 지닌다. 정치 영역으로 시장을 급진화시키는 사례다.(※참고로, 이 방식을 이용해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경선·본선)에 나선 인물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해봤더니, 도널드 트럼프가 꼴찌를 차지했다.)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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