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의 대물림, 어떻게 끊을 것인가’를 주제로 11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가치있는 나눔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이충한 하자센터 기획부장, 이대훈 성공회대 겸임교수, 박미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연구팀장, 문보경 사회투자지원재단 상임이사, 이병훈 중앙대 교수, 이봉주 서울대 교수, 김미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한국의 20대 청년 5명 중 1명이 일하지도 않고 교육이나 훈련을 받고 있지도 않은 ‘니트’(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일 정도로 니트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니트는 가난과 가깝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의 청년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까지 가정에서 심리적·물질적 지원을 받지만, 그럴 여유가 없는 집안의 청년들은 원하는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니트 상태에 빠지기 쉽다. 가난할수록 니트에 놓일 확률이 높고, 그렇게 더 가난해진다. 빈곤 대물림의 현상 중 하나인 청년 니트 문제의 해답을 논의하고자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1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빈곤의 대물림, 어떻게 끊을 것인가’를 주제로 나눔의 가치를 논의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토론회는 (재)일과사람연구소가 후원했다.
■ 가난할수록 니트도 많아 발제자로 나선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청년기 니트를 더는 청년 개인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불평등, 노동시장 구조 등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 불평등이 심하지 않았던 1990년대에는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 기능했지만, 불평등이 심해진 2000년대 이후로는 세대 간 경제력 대물림의 통로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5년 현재 저소득층(중위소득 50% 미만) 청년의 23.1%가 니트로, 고소득층(중위소득 150% 이상) 청년 니트(12.2%)의 두 배 가까이 많다. 일을 한다고 해도 저소득층이 ‘괜찮은 일자리’를 얻는 경우는 드물다. 저소득층의 60% 정도는 중위소득의 60% 미만을 받으며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비정규직 형태의 불안한 고용 상태에 놓여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본인이나 자녀의 미래가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도 점점 작아지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서 본인 세대의 계층이동 가능성이 큰 편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2009년에는 21%였지만 2017년에는 13.4%로 줄었다. 미래 세대의 계층이동 가능성도 같은 기간 35.9%에서 23.4%로 줄었다.
김미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토론에서 “가구유형별로 청년 빈곤율을 살펴보면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 가구의 빈곤율이 가장 낮다. 부모로부터 독립할 여유도 없을 정도로 가난한 청년들이 통계에 잡히지 않아 청년 빈곤율이 실제보다 낮게 나타나는 것일 수 있다”며 “경제력뿐만 아니라 주거, 건강, 고용, 사회문화적 자본, 안정성 등을 고려하는 다차원 빈곤율을 살필 것”을 제안했다.
청년 빈곤율 자체는 7.6%로 전체 빈곤율(13.8%)보다 낮다. 하지만 다차원 빈곤율은 11.6%로 전체 다차원 빈곤율(12.1%)과 비슷한 수준이고, 특히 안정성, 고용, 주거, 경제력 분야의 빈곤율은 전체 빈곤율을 크게 웃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시장 상황, 잠재 성장률 하락세, 4차 산업혁명 등을 고려할 때 청년이 빈곤 위험집단으로 부상할 수 있다”며 “이들의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주거지원, 직업훈련, 고용 서비스 등의 다양한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고임금 근로자인 공공기관 종사자, 교수, 고위 공무원 등의 임금 동결, 그 재원을 활용한 일자리 나누기 같은 고통 분담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 ‘빈곤의 대물림’ 고리 끊을 실험 청년 니트를 지원하는 일은 불평등과 빈곤 대물림의 악순환을 끊는 일이다. 이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부모보다 가난한 밀레니얼 세대가 이슈가 되고 있는 미국에선 ‘유스 빌드’(Youth Build)라는 사업을 통해 빈곤가정의 청년들에게 멘토링, 진로 탐색, 자격 교육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특히 지역사회 건설에 초점을 맞추어 유스 빌드를 졸업한 청년들이 유스 빌드를 통해 후배 세대를 돕도록 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민간 차원에서 여러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박미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나눔연구소 연구팀장은 이 단체가 2016년부터 3년 동안 진행하고 있는 ‘희망플랜’ 사업을 소개했다. 희망플랜 사업은 서울 은평, 경기 부천, 전북 전주 등 전국 11개 지역에서 14~24살 청년 1147명을 대상으로 한다. “소외 계층의 청년들이 니트 상태에 빠지기 전에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청소년·청년 당사자, 가족, 지역사회 단위의 지원을 제공한다. 교육 지원, 진로 탐색 등 맞춤형 비전 제시, 가족 캠프, 지역사회 네트워크 강화 등이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이다. 가정환경이나 사회경제적 조건 등이 니트 상황을 야기하는 만큼, 참가자 개인뿐만 아니라 주변을 개선하는 노력을 함께 기울이는 것이다.
그 결과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의 구직 의향은 전반적으로 증가했고, 스스로 “꿈이 생겼다”고 말하는 청년도 늘어났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박 팀장은 “청년들이 니트 상태를 완전히 벗어나게 하는 데까진 이르지 못했다. 민간 지원 사업은 규모의 한계가 있는 만큼 중앙이나 지방 정부 정책과 연계해서 교육·노동·복지 차원의 종합적인 접근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보경 사회투자지원재단 상임이사는 시민 출자를 통해 청년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터무늬있는집’ 사례를 소개했다. 2018년 11월 기준으로 개인 46명과 단체 6곳이 각각 100만~1000만원씩 출자금 2억5천만원을 모아 서울 강북구에 2곳, 경기 부천에 1곳의 집을 임차했다. 세 집엔 모두 청년 40명이 사는데, 이들은 시세의 절반 수준의 월세만 내고 거주한다. “안정적인 주거가 확보되어야 청년들이 미래를 위해 도전할 여지가 생긴다”고 강조한 문 상임이사는 “시민 출자는 선배 세대가 청년들과 협력하는 모델”이라며 “힘내라는 말 대신 실질적인 힘을 주는 선배가 되자”고 말했다.
송진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연구원 jy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