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경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전세계적으로 플랫폼 노동이 배달, 차량 공유, 가사도우미 등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프랑스에서 ‘유로 2016’ 축구 결승전을 앞두고 한 배달원이 피자를 배달하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지난달 말 미국 증시에 상장한 승차공유 플랫폼 업체 ‘리프트’는 단숨에 25조원 규모의 기업으로 등장했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현대자동차와 맞먹는 규모다. 이달 말에는 같은 업종인 ‘우버’가 상장할 예정인데, 미국 3대 자동차 회사 시가총액 합계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미국 증시 시가총액 최상위권인 애플·알파벳(구글의 지주회사)·아마존·페이스북은 모두 디지털 플랫폼 기업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플랫폼 경제의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화려한 만큼 그림자도 짙다. 플랫폼 경제는 네트워크를 선점한 쪽이 모든 걸 가져가는 ‘승자독식’ 시장이어서 소수 기업과 투자자에게 부와 사용자 데이터가 집중된다. 플랫폼 업체에 ‘고용’된 노동은 단기화·파편화하고 사회적 보호도 약한 탓에 일자리의 질 저하와 소득의 양극화가 심화한다. 우버는 부자가 되겠으나 정작 우버 운전자는 겨우 최저임금 수준의 수입만 챙겨가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몇 갈래 대응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우선, 플랫폼 노동자에게 임금 노동자 지위를 부여해 최대한 기존 노동법의 틀 안에서 해법을 찾으려는 움직임을 들 수 있다. 연금을 포함한 각종 사회보장 서비스의 혜택을 주는 방식이다.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적극적인 편이다. 다른 한편으론 플랫폼 자체를 좀 더 사회에 친화적인 방향으로 만들려는 시도도 있다. ‘자본이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사람이 자본을 고용한다’는 협동조합의 정신을 플랫폼 경제에서 되살려보자는 얘기다.
‘상생’과 ‘연대’의 플랫폼
협동조합의 원리와 가치를 디지털 경제에 접목하려는 노력은 ‘플랫폼 협동조합 운동’(Platform Cooperativism)을 통해 퍼지고 있다. 플랫폼을 구성하는 참여자들, 즉 플랫폼 개발자, 서비스 제공자, 이용자, 노동조합, 지역사회가 주인이 되어 플랫폼 운영방향을 함께 결정하고 수익을 공정하게 공유하자는 사회운동이다. 2015년 미국 뉴욕 뉴스쿨의 트레버 숄츠 교수가 제안한 뒤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다. 숄츠 교수는 2016년 펴낸 책 <우버의 저임금 노동자는 어떻게 디지털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나>에서 차량 공유, 숙박, 일자리 중개 등의 분야에서 활약하는 세계적 플랫폼 기업을 두고, “우리가 꿈꾸던 공유경제가 아니라 부스러기를 공유하는 ‘약탈적’ 주문형(On-demand) 경제일 뿐”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20년이나 30년 뒤 제대로 된 일자리가 사라지고 많은 일이 ‘우버화’(uberized)된 걸 깨닫게 될 때 왜 진작 이런 변화에 강력히 저항하지 못했는지 후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정적 일자리와 최소한의 임금, 건강보험 같은 것들은 소유 등 구조적인 변화를 통해 일을 재조직하지 않으면 지켜낼 수 없으며, 협동조합 플랫폼이 그런 틀이 될 수 있다는 게 숄츠 교수의 생각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공정한 임금 지급, 운영 과정의 투명한 공개, 결정 과정에 조합원 참여 등 플랫폼 협동조합을 조직하는 원리 10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실제로 세계 곳곳에선 최근 몇년 사이 예술, 청소, 운전, 컨설팅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플랫폼 협동조합이 생겨나는 추세다. 뉴욕의 뉴스쿨에 있는 플랫폼 협동조합운동 컨소시엄은 전세계 플랫폼 협동조합 디렉토리 누리집을 운영 중인데, 아이디어 단계, 개발 단계, 운영 단계, 휴면상태를 포함한 플랫폼 협동조합 수는 10일 현재 279개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에서는 대리운전, 퀵서비스 노동자들이 플랫폼 협동조합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고 가사노동 분야에서도 앱을 활용하고는 있지만, 아직 규모가 있는 성공 사례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인큐베이팅 등 생태계 조성 필요
현재 활동 중인 플랫폼 협동조합은 기존의 상업형 플랫폼과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노동력 중개 플랫폼은 더 적은 수수료를 노동자한테서 떼어 노동자의 수입을 늘려주고, 상거래 플랫폼은 생산과정이 공정하고 친환경적인 상품 판매에 힘쓴다. 청소서비스 플랫폼의 경우 감정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조합원의 처지를 고려해 개별적인 소비자 평가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풀어야 할 과제도 적잖다. 무엇보다 장기적으로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일이 급선무다. 플랫폼 기업의 경쟁력은 사람을 모으는 ‘네트워크 효과’에 있는데, 자본이 부족하고 조합원이 적은 플랫폼 협동조합으로선 쉽게 넘기 힘든 장벽이다. 주식회사와 달리 초기자본이나 운영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것도 협동조합이 맞닥뜨린 엄연한 현실이다. 트렌드 변화가 빠른 플랫폼 사업의 속성상 협동조합이 의사결정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약점이다. 비슷한 협동조합이 적은 탓에 협동조합 간 협력도 거의 이뤄지지 않는 편이다.
트레버 숄츠의 책 <우버의 저임금 노동자는 어떻게 디지털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나>.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좀 더 많은 플랫폼 협동조합이 만들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금융회사, 법률가, 소프트웨어 개발가 등이 참여하는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통상적인 스타트업이 아이디어→벤처 투자→스케일업→투자 회수로 이어지는 생태계를 통해 커가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퀵서비스나 대리운전자들이 플랫폼 협동조합 결성을 시도하다 중단한 것은 자본시장 같은 생태계가 미비했기 때문”이라며 “(플랫폼 협동조합을 위한 별도의 지원 방안도 필요하지만) 기존의 스타트업 생태계와 어떻게 결합할지를 고민하는 것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창업 인큐베이팅도 빼놓을 수 없다. 뉴욕의 로빈 후드 재단 등이 주도해 청소서비스 플랫폼 ‘업앤고’를 만든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유경제 잡지 <셰어러블>의 공동창업자인 닐 고렌플로는 인터뷰에서 “우선 하나를 만들고 산업별로, 지역별로 성공 사례가 복제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밝혔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