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
국회 ‘국민총행복정책포럼’ 출범

여야 의원 38명 참여 정책연구단체
“성장 넘어 국민행복 중심 정책 전환”

윤호중 법사위원장이 대표의원 맡아
‘행복기본권’ 도입 등 정책개발 예고

뉴질랜드 등 세계 각국 행복정책 채택
국내 지자체 40% 이상 ‘행복도시’ 표방
‘행복 담론’ 정책·제도화 확산 추세

최근 국회에 여야 의원 38명으로 구성된 정책연구단체가 결성되면서 ‘국민총행복’ 논의가 제도화에 탄력을 받게 됐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한강 전경. 픽사베이 제공
최근 국회에 여야 의원 38명으로 구성된 정책연구단체가 결성되면서 ‘국민총행복’ 논의가 제도화에 탄력을 받게 됐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한강 전경. 픽사베이 제공

‘행복’을 국가정책의 핵심 전략으로 삼으려는 여야 의원들의 정책연구단체가 국회 등록을 마치고 공식 출범했다.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창립식을 열고 첫발을 뗀 이 모임의 이름은 ‘국회 국민총행복(GNH) 정책포럼’(이하 국회포럼)이다. 여기서 ‘총’은 모든 분야의 균형발전이라는 다차원적 의미와 모두의 행복이라는 집단 또는 공유의 뜻을 담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윤호중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의원을 맡았고 강훈식(더불어민주당)·강은미(정의당)·이용호(무소속) 의원 등 38명이 참여했다.

그동안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나 국민행복의 관점에서 국가정책을 수립하고 균형발전을 도모하자는 주장이 제기돼왔으나 입법기관인 국회 안에 정책연구단체가 만들어지기는 처음이다. 정부의 정책 전환을 유도하고 관련 법률과 제도를 제정할 ‘힘’을 지녔다는 점에서 여야 의원 수십명이 참여한 국회 연구모임의 결성은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 윤 대표의원은 이날 창립총회에서 “정부 정책의 패러다임을 경제성장에서 국민행복으로 바꿔 양극화와 불평등 등 그동안 해결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고질병을 고치겠다”고 말했다.

■ ‘행복기본권 제정’ 시동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헌법 10조에 규정된 행복추구권이다. 국민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규정한 것이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자조 섞인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눈부신 경제발전 이면에는 청년실업, 저출산, 양극화 문제 등이 드리워져 있다.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불명예를 안고 있다. 2018년 발족한 민간기구 ‘국민총행복전환포럼’의 박진도 이사장(충남대 명예교수)은 “안타깝게도 코로나 사태로 불평등은 더 깊어졌고 청년들의 취업은 더 어려워졌으며 취약계층은 더 타격을 입었다”며 “국민총행복을 위한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한국 사회의 대전환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포럼이 주목하는 것은 경제성장과 국민행복 간 괴리다. 김상희 국회부의장은 “세계 158개국 중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8위에 올랐지만 삶의 만족도는 57위에 그치고 있다. 그간의 정책이 삶의 질보다는 경제적 성과를 중심에 둔 결과로, 이제 성장 지향 정책의 한계를 넘어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새롭게 설계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국회포럼은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행복추구권 실현을 위한 정책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연구책임을 맡은 강훈식 의원은 “코로나19로 국민의 삶과 행복이 위협받고 있는 시기임을 고려해 구체적인 대안 모색과 제도화 방안을 책임 있게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포럼은 크게 세 가지 과제를 염두에 두고 정책개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먼저 ‘행복기본법’ 도입이다. 헌법에 규정된 행복추구권은 국민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가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음을 확인한 것이지만, 추상적 선언 또는 포괄적 정의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학계와 시민사회 중심으로 헌법 조문을 뒷받침할 일반법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날 창립 기념 세미나에서 이재경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연구원은 “수십년간 한국의 행복은 헌법 조문 1개에 매달리고 있는 현실이었다”며 “행복은 명백히 공적 책임이며 이를 위해 헌법을 뒷받침할 기본법의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했다. 이른바 ‘행복기본법’을 제정해 행복 정책을 실현할 구체적 수단으로 삼자는 얘기다.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민총행복위원회’ 설립도 거론된다. 2016년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섰던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국민 전체 행복을 최우선 가치로 둔 부탄 정부의 정책 기조에 큰 관심을 보였던 만큼 대통령 임기 안에 전향적인 조처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부탄 방문 뒤 문 대통령은 국민행복 정책과 지속가능 발전 모델을 국정운영 시스템에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가장 큰 관문은 재원 마련 방안이다. 박진도 이사장은 “행복 정책을 위한 증세는 불가피하다. 상위 1%를 시작으로 보편 증세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한 경제위기로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고 있는 현실에서 증세를 둘러싼 저항이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론화 작업을 거쳐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까지는 적잖은 진통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국회포럼은 그동안 시민사회 영역에서 거론되던 행복 담론을 입법 공간으로 끌어들여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창현 국민대 교수는 “성장 담론이 만연했던 과거 패러다임이 있었다면 이제 행복의 담론을 만들어가야 한다. 국회포럼이 제도화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여야 의원들로 구성된 국민총행복정책포럼이 지난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출범했다. 대표의원을 맡은 윤호중 법제사법위원장(앞줄 왼쪽 다섯째) 등 의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여야 의원들로 구성된 국민총행복정책포럼이 지난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출범했다. 대표의원을 맡은 윤호중 법제사법위원장(앞줄 왼쪽 다섯째) 등 의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왜 국민총행복인가?

국민총행복은 1970년대 부탄에서 만들어진 행복 개념이다. 오이시디는 2007년부터 국가별로 행복지수 측정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많은 나라들은 국민총생산(GNP)을 국가지표로 삼고 있는 게 현실이다. 2년 전 성장지상주의 시대와 결별을 선언하고 행복의 관점으로 나라 발전의 목표를 대전환할 것을 요구하며 발족한 ‘국민총행복전환포럼’에는 공직자를 비롯해 노동자·농민 등 각계각층 사람들이 모였다. 그해 지자체 협의기구인 ‘행복실현지방정부협의회’도 생겼다. 국회포럼은 이런 노력의 결실인 셈이다.

현재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곳은 지방자치단체들이다. 민선 7기 전국 226개 기초지방정부 가운데 ‘행복’이라는 열쇳말을 쓰는 시·군·구가 92개로 전체의 40%가 넘는다. 행복지표를 개발해 행복을 계량화하고 측정해 정책의 심사도구로 만드는 곳도 꽤 생겨났다. 김삼호 광주광역시 광산구청장은 “구청장 직속으로 전국 첫 시민행복 전담기구인 행복정책관을 신설했고 그 아래 행복정책팀과 행복관리팀을 두어 시민행복이라는 가치를 모든 정책과 사업에 녹여내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적으로도 행복을 국정의 주요 목표로 삼고 정책을 펼치는 나라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만한 흐름이다. 뉴질랜드가 ‘웰빙(행복)예산제’를 도입했고, 아이슬란드도 웰빙 지표를 바탕으로 올해 예산안을 짰다. 유엔은 2012년에 3월20일을 ‘세계 행복의 날’로 정했다.

흔히 ‘돈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이스털린의 역설’을 언급한다.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그 이상 소득이 늘어도 행복감은 증가하지 않는다는 미국 경제사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이 주장한 개념이다. 그러나 이스털린의 역설이 있어도 현실의 행복 논의는 언제나 경제주의에 묻히고 말았다. 이지훈 국민총행복전환포럼 상임이사는 “민간부문과 지방정부, 국회의 삼각동맹으로 국민총행복 제도화 방안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대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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