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
ESG 내세웠던 프랑스 다논 파베르 CEO, 실적 나빠지자 헤지펀드에 의해 해임
“‘주주 행동주의’에 변화의 물꼬 트려면 다양한 이해관계자 참여해 견제해야”

2019년 9월20일 미국 시애틀에서 아마존을 비롯한 이른바 빅테크 기업 임직원들이 ‘세계기후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2019년 9월20일 미국 시애틀에서 아마존을 비롯한 이른바 빅테크 기업 임직원들이 ‘세계기후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SG 쟁점과 과제

1회: 넘어야 할 장벽 ‘그린워싱’
2회: ESG는 ‘사다리 걷어차기’인가?
3회: 소비자 주도의 ESG로 가는 길
4회: 전문가 대담

지난 3월 에비앙, 액티비아 등의 브랜드로 잘 알려진 프랑스 최대 식품기업 ‘다논’의 최고경영자(CEO) 에마뉘엘 파베르 회장이 해임됐다. 이번 해임 건은 프랑스 현지 언론은 물론 글로벌 업계에서 큰 화제가 됐다.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다논의 최고책임자가 주주 행동주의 펀드에 의해 해임됐기 때문이다. ‘다논’은 1960년 설립부터 사람 중심 경영을 내세우며,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회책임경영의 모범기업으로 손꼽혀왔다. 파베르 회장도 그런 전통을 물려받아 ‘책임있는 자본주의 옹호자’로 불리며 주주뿐 아니라 환경·임직원·공급망을 존중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모델을 선도하는 경영전략을 펼쳐왔다. 탄소감축을 위해 상장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탄소비용을 t당 35유로로 평가해 순이익에서 공제하는 ‘탄소조정 주당순이익제’를 도입했고, 생산라인을 비롯해 전 사업부를 탄소저감 체계로 전환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속 경쟁사 대비 부진한 매출실적과 주가 하락에 대한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고 해임되고 말았다. 전세계 투자자들이 이에스지에 주목하고 투자 열풍을 일으키는 가운데, 이에스지의 대표주자가 투자자들에게 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번 해임을 주도한 ‘블루벨캐피털파트너스’(블루벨)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떠오르는 주자다. 블루벨은 다논의 이에스지 경영전략을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파베르는 주주들의 이익 추구와 다른 이해관계자들과의 책임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지 못했다”고 해임 사유를 밝혔다. 이번 사건은 단기적 경영실적과 주주 수익성에 우선하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과 함께 앞으로 주주 이익과 이에스지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의 충돌 문제가 큰 과제로 떠오를 것임을 시사한다.

다논 사례에서 보듯, 투자자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의 이에스지를 이끌 수 있다는 희망은 지나친 낙관이다. 주주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경제구조에서 임직원, 공급망,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주주 이익의 후순위로 밀려나는 것을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얘기다. 이에스지 열풍이 기업들에 고전적 방식의 사회공헌 활동을 넘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면서 장기적 관점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이익을 달성하는 ‘이에스지 행동주의 기업’으로의 변화 물꼬를 틀 수 있을까?

빅테크 산업 종사자들의 연대모임인 ‘기술노동자연합’은 203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 화석연료기업과 거래 중지, 반기후위기 활동에 자금 지원 중지 등을 기업과 산업에 요구하고 있다. 기술노동자연합 누리집 포스터
빅테크 산업 종사자들의 연대모임인 ‘기술노동자연합’은 203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 화석연료기업과 거래 중지, 반기후위기 활동에 자금 지원 중지 등을 기업과 산업에 요구하고 있다. 기술노동자연합 누리집 포스터

‘ESG 경영’ 기업 내부로부터의 변화

2019년 아마존 주주총회에선 임직원 수천명이 자발적으로 모여 결성한 모임 ‘기후정의를 위한 아마존 직원’이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 등 기후변화에 관한 종합적 대책을 회사 쪽에 요청하고 나섰다. 아마존은 이를 계기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사용과 2040년까지 탄소배출량 제로 등의 계획을 발표했다. 임직원이 나서 회사로 하여금 비재무적 목표를 경영전략에 도입하도록 만든 것이다.

개별 기업을 넘어 동일 업계 노동자들이 연대해 업계의 환경·사회적 변화를 촉구하는 사례도 눈에 띈다. 2019년 9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 기간 동안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펼쳐진 ‘기후 파업’에 구글·아마존·페이스북·트위터·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BigTech) 산업 종사자들도 함께 동참했다. 이들은 ‘기술노동자연합’(Tech Workers Coalition)을 출범시키고 “테크기업들이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탄소배출 산업에 대한 최첨단 기술을 제공하지만, 친환경 이미지로 내세워 그린워싱하고 있다”며 테크기업들의 반환경적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들의 관심사는 기후위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기술노동자연합이 작성한 ‘권리장전’엔 근로자들에 대한 형평성 및 다양성, 투명한 의사결정, 노동환경, 직원 평가 등 열악한 테크업계 노동자 처우 개선에 관한 내용도 담겼다.

국내에서도 예전과 다른 분위기 변화가 감지되고는 있지만, 임직원들이 나서 경영전략 수정을 요구하는 조직화된 목소리는 아직 표면화되지 못한 실정이다. 이은경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실장은 “젊은 임직원을 중심으로 기업 내부에서 이에스지에 대한 감각이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직원들이 전면에서 무언가 요구하기는 아직 어려운 구조”라며 “엘지전자 등 몇몇 기업에서 진행되어온 유에스아르(노조의 사회적 책임) 맥락에서 사측에 이에스지 경영에 대한 아이디어나 의견을 제시하거나 자체적 캠페인을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방향을 제안했다.

임직원들의 목소리가 기업 내부로부터 이에스지 경영을 추동하는 동력이었다면, 환경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소비자들의 높아진 관심은 기업의 이에스지를 이끄는 외부 동력 중 하나다. 소비자들이 단순히 기업의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을 넘어서 기업의 철학과 가치를 함께 소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갓뚜기 열풍’도 그중 하나다. 성실한 상속세 납부와 100%에 가까운 정규직 채용, 그리고 다양한 사회공헌활동과 장학사업 등 오뚜기의 착한 경영에 감동한 소비자들은 ‘갓뚜기’로 부르며 기업 지지에 나섰다. 반대로 윤리경영과 사회적 책임을 무시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재빠르게 퇴출당했다. 최근엔 택배노동자 과로사와 물류센터 화재 등의 문제로 ‘쿠팡 탈퇴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2030 청년’을 상징하는 ‘엠제트(MZ) 세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기업 정보를 공유하면서 캠페인을 주도한다. 이들의 활동을 가리켜 ‘미닝 아웃’(Meaning Out)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뜻인 ‘커밍아웃’(Coming Out)과 ‘신념’(Meaning)이 합쳐진 말로,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드러내는 행위를 뜻한다. 엠제트 세대의 미닝아웃으로 ‘돈쭐난’ 기업도 있다. ‘혼쭐을 내다’와 ‘돈’을 합친 신조어로, 좋은 일을 하는 기업 또는 상점의 제품을 구매하자는 의미로 쓰인다. 최근 돈쭐난 치킨집 사례가 대표적이다. 생계가 어려운 형제가 치킨 5000원어치만 살 수 있냐며 치킨집 앞을 서성이자 닭 두 마리를 선뜻 내놓은 홍대 앞 한 치킨집 이야기가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돈쭐을 내자는 운동을 벌였다.

소비자들에게 경고장을 여러 차례 받은 기업은 결국 뼈아픈 구조적 변화를 맞닥뜨린다. 국내 대표 낙농제조업체인 남양유업이 대표적 사례다. 남양유업은 2013년 대리점 갑질 사태에 이어 사주 일가의 부도덕성이 계속해서 문제가 됐다. 얼마 전엔 불가리스 제품이 코로나19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허위 정보를 배포하면서 결국 경영권 매각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소비자 개개인의 움직임이 기업 경영 행태 전반을 바꾸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있다.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는 “소비자의 움직임이 장기적으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단편적인 정보와 특정 이슈만을 활용해 기업을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도 대표는 “시민사회가 나서 기업과 정부에 투명하고 적극적인 정보공개를 요청해 소비자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하고, 법과 정책의 구조적 변화를 꾀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민사회 주축, 새로운 소비권력의 등장

국외에선 실제로 시민사회가 나서 기업의 공급망 제도를 바꾼 사례가 있다. 2000년대 초 콩고, 르완다 등 10개국의 광물 판매 자금이 주변국 반군 쪽으로 유입된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미국의 시민단체들은 무장단체가 광산을 장악하고 주민과 아동 노동을 착취한다는 인권문제를 지적하며, ‘기업이 분쟁광물 사용 여부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고, 분쟁광물 사용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였다. 결국 미국 의회는 2010년 분쟁광물 사용 규제를 담은 도드-프랭크 법(Dodd-Frank Act)을 통과시켰다. 여기엔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에 쓰이는 광물의 원산지를 보고해야 한다는 정보공개 의무와 함께 의무를 다하지 않을 경우 감사가 진행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사건은 미국 기업은 물론이고 공급망 내 모든 협력사에도 영향을 줬으며, 유럽연합(EU), 캐나다 등으로 법제화 움직임이 확산했다.

국내에서도 이에스지 경영을 촉구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월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 2명은 경기도 분당 두산중공업 본사 건물 앞 ‘DOOSAN’ 로고 조형물에 녹색 스프레이 페인트를 칠하는 기습시위를 벌였다. 두산중공업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수주한 석탄화력발전소 시공 중단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시민사회 차원의 이에스지 대응 논의도 본격화하고 있다. 최근 들어 기업 이에스지 열풍을 시민사회가 제대로 진단하고 견제할 수 있는지 현황을 파악하고 실천을 모색하려는 자리가 잇따라 마련되고 있다. 지난 6월29일 서울와이엠시에이(YMCA)가 주최한 ‘시민사회와 ESG,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주제의 시민포럼에서 이승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은 “기업에 대한 비판·감시 기능을 위한 적절한 긴장은 유지하되 서로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존중하며 이에스지 시대에 조응해가는 시민사회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시민사회가 과거 기업 견제를 위한 반대 중심의 네거티브 운동에서 벗어나 기업과의 활발한 협력을 통해 과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포지티브 운동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5월 말 20살 이상 국민 3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ESG 경영과 기업의 역할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 기업의 ESG 활동이 소비자 제품 구매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5월 말 20살 이상 국민 3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ESG 경영과 기업의 역할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 기업의 ESG 활동이 소비자 제품 구매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

기존 시민사회의 운동은 환경·노동·복지 등 각각의 영역에서 개별 이슈에 대한 정책감시 및 촉구, 캠페인과 서명운동, 집회와 거리시위, 불매운동, 거부운동 등의 방식으로 진행돼왔다. 이제 시민사회는 정부 감시와 시장 견제의 역할만이 아니라 정부·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사회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요청을 받고 있다. 송경용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이사장은 “지역사회와 공동체, 시민이라는 풀뿌리 운동에 바탕을 둬온 시민사회는 개별 기업이 이에스지 경영과 측정에서 놓치기 쉬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협력과 갈등 해결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회적 자산을 가지고 있다”며 “더 나은 사회와 기업의 건강한 성장을 중재하고 견인하는 시민사회연대 이에스지 행동주의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후위기에 따른 국내외 환경규제의 강화, 경영 여건의 변화를 리스크로 감지하고 이에스지를 관리하는 기업에 눈을 돌리는 투자그룹, 기후위기 대응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민감한 기업 안팎의 엠제트 세대의 등장은 ‘기업 행동주의’를 이끄는 동력으로 손꼽힌다. 여기에 소비자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에 더 신경쓰도록 유도하고 정부 역시 이에스지 관련 정책을 통해 이에스지 경영이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한다. 이에스지 생태계는 참여자들의 상호작용과 협업, 소통으로 구축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공공부문과 민간기업, 소비자와 시민사회가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가치를 공유하면서 내디딜 발걸음에 주목하는 이유다.

박은경 양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팀장, 서혜빈 신효진 연구원 ek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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