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사회]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성경륭 이사장

포용국가 깃발, 사회경제적 약자 보호
초양극화 현상, 전세계로 확산 우려

도농상생, ‘농촌유토피아’로 모색
함양 등 지역재생 성공 사례 꼽아

재직 3년간 국책기관 체질개선 노력
예측가능한 정책입안 토대 마련해야

미래한국 디자인, 글로벌 집현전 꿈
국가적 난제,‘오픈 리서치’로 접근해야

성경륭 이사장이 5일 낮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성경륭 이사장이 5일 낮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 발굴이 시급합니다. 상당한 부작용이 닥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혁신적 포용국가’를 어떻게 접목시킬지를 놓고 연구원들이 몇년째 머리를 맞대고 있지요. 미래 한국을 디자인하는 ‘글로벌 집현전’이 국가 난제를 풀어가는 키워드를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사연)는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 26개를 아우르는, 명실상부한‘한국 싱크탱크’의 총본산이다. 연구회는 지난해부터 코로나 감염병 확산에 따른 경제사회적 충격과 글로벌 위기를 분석하는 데 여념이 없다. 이와 관련된 국내외 데이터 축적과 분석 작업에도 골몰하고 있다. 팬데믹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소속 연구기관들이 일궈낸 정책 대안을 정부와 학계, 시민단체 등에게 널리 알리는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

지난 2018년 2월부터 3년간 연구회를 진두지휘한 성경륭(67) 이사장이 취임 직후부터 일관되게 연구회의 체질 개선을 주문한 결과다.

그는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 4월 초대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2007년에는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다. 현 정부 들어서도 경사연 이사장을 맡아 재임 기간 내내 국가 플랜으로 ‘포용국가론’을 주창해 왔다. 이 때문에 그는 참여정부는 물론 현 정부 들어서도 국가 플랜의 기본 뼈대를 마련한 ‘정책 설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앞서 성 이사장은 지난 1월 말, 학계와 재계 관계자들이 다수 참여한 공저 <포용한국으로 가는 길>을 출간하기도 했다.

일벌레로 소문난 사람답게, 그는 최근 2년여 동안 전국을 오가며 ‘농산어촌 유토피아 플랜’의 기본 얼개를 짜고 있다. 몇년 새 불거진 ‘인구절벽’과 저출산 고령화, 여기에다 최근 본격화된 1세대 ‘베이비부머’(55~75살)의 대량 은퇴 등 국가적 핫이슈를 타개할 방도를 찾기 위해서다.

지난 5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성 이사장을 만나, 그의 머릿속에 담아둔 ‘포용국가론’과 ‘농산어촌 유토피아 플랜’의 실체와 향후 구상을 들어봤다.

―최근 몇년 사이 경사연이 핫이슈가 터질 때마다 현장감 있는 분석이나 연구 결과를 제시해 정책 결정으로 이어지게 하는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사연 비전을 새롭게 만들고, 이를 위해 어떤 시스템을 적절하게 짜야 하느냐가 가장 고민스러웠다. 연구회 산하 26개 국책연구기관들은 그동안 농사꾼처럼 자기 땅에서 농사짓는 것만 생각했다. 연구소에 특정된 일반 정보만을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데 머문 측면이 많았다는 얘기다. 정부 부처와 연결된 연구기관들은 그 기능과 과제를 잘 다듬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내외에서 연중 불거지는 핫이슈에 대해 국가적 어젠다 설정을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더 큰 숙제다. 코로나19 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국가적 난제가 닥쳤을 때는 종합적이고 복합적으로 연구분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관 기관이 모두 연계해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전문가 집단을 해당 분야에만 가둬놓으면 안 된다. 오픈 리서치 개념으로 여러 위원회와 연구단에 포진시켜 종횡으로 정책방안을 찾도록 독려해야 한다. 3년 전 이사장으로 부임한 뒤 제일 처음 강조했던 사안이 바로 이것이다. 질병 대처와 고용 문제, 삶의 질 향상까지 국내외적으로 들여다볼 안건이 한두개가 아니다. 현안이 터질 때마다 국내외 데이터 축적과 분석 작업을 강화하도록 했다. 예측 가능한 미래 한국상을 디자인하기 위한 것이다. 과거와 연결된 현황 중심의 사고보다는, 미래 연구를 통해 예측 가능한 의사결정을 하는 토대를 깔자는 포석이다. ‘대한민국 미래를 디자인하는 글로벌 집현전’을 경사연의 슬로건으로 삼은 것도 바로 이런 까닭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포용국가론 깃발을 처음 들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이 논의가 다시 재점화하고 있는데, 포용국가론이 지금 왜 더욱 절실하다고 보는가.

“한국의 경제사회적 불평등은 코로나 사태 이후 더 심화됐다. 전세계 경제영역에서 보면 오이시디(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상위 10위권에 진입한 반면, 삶의 영역지수 등을 따지면 상당수 항목에서 30위권 밖을 맴돌고 있다. 거의 꼴찌 수준이다. 지난해 한국의 행복지수는 전세계에서 61위다. 복지와 분배는 악화되고, 실업자 양산에다 청년 일자리는 더욱 부족하다. 청년들이 살기 힘들어지니 결혼도 힘들어지고, 더불어 출산율도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졌다. 자살률은 오이시디 회원국 최고 수준이다. 그동안 한국 사회가 발전국가 시스템을 추종한 결과다. 이 지점에서 우리나라가 발전국가 시대를 넘어서 포용국가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심화된 불평등 현상에 편승해 벌어지는 포퓰리즘(대중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 행태)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코로나19 확산은 대공황 시대처럼 국가의 본질적 구실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 이상적 국가체제로 여겼던 영미식 자유주의나 복지국가 전통이 강한 노르딕 국가들도 코로나 위기 앞에서 무력하거나 한계를 보였다. 미래에 이런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을 예방하려면 민주주의와 포용주의 전략을 공고히 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 혁신적 포용국가는 자유와 인권, 법치가 지켜지는 가운데, 경제사회적 약자 집단의 민생과 고용을 국가가 돌보는 체제다. 국가가 취약계층의 생활안정을 돌보지 않는다면 보호받지 못하는 국민은 포퓰리즘 유혹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국가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포용과 공생을 추구하는 공공선이 돼야 한다. 이것이 포용국가의 기본 조건이다.”

―혁신적 포용국가가 실현되지 않으면 국민들이 포퓰리즘으로 내몰릴 공산이 매우 높다고 했는데.

“그동안 한국은 발전국가의 미션에 빠져 성장 일변도로 일관해 왔다. 그 결과 극소수만 승자로 남고, 대다수는 경제사회적으로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내몰렸다. 코로나 사태로 더 많은 실패자가 양산됐고, 이런 초양극화 현상은 향후 4~5년 뒤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극단적 불평등을 예방하지 못할 경우 무너진 자영업자나 실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은 독재자의 포퓰리즘 정치공약에 모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미국이 보여준 ‘트럼프화’ 현상이다. 앞으로 더 많은 ‘트럼프’가 전 지구적으로 잇따라 등장할 수도 있다.”

―포용정책을 펼쳐도 코로나 종료 이후 당분간 국내외에서 극심한 경제사회적 혼란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활성화로 전세계가 이 분야 투자를 급격히 늘리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속도가 가속화되면서 촉매제 구실을 한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보면,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첨단기술은 더 고도화되고 비대면 현상이 불러온 급격한 환경변화는 전세계를 더 휩쓸 것이다. 이 분야에 투자를 많이 한 인재와 기업, 나라는 앞서 나가고, 대비하지 못한 쪽은 뒤처지는 등 계층구조에 급격한 변동이 불가피하다. 더불어 다양한 차별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국가가 긍정적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정책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곧 정부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혁신적 포용국가라는 비전이 필요한 이유다. 국가가 국민의 삶을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 개인의 역량을 키우고 이것이 사회 전체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책이나 제도, 사회적 포용성을 높이고, 혁신 역량을 함께 키우는 것이 핵심이다. 포용정책과 혁신정책의 결합이 절실하다. 또 사회보장 체계를 튼튼히 갖추고 교육정책을 더 충실히 강구하는 방안도 들여다봐야 한다.

더 많은 고용기회를 제공하고, 일하는 사람들의 역량도 키우는 게 급선무다. 실업자는 더 많은 교육을 통해 현장에 복귀시켜야 한다. 이렇게 사회보장과 교육, 포용노동 등이 선순환해야 한다. 여기에다 기술혁신과 창업, 기업혁신 등이 서로 연동돼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는 포용정책과 혁신정책을 결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시켜 준 계기가 된 셈이다.”

―최근 추진 중인 ‘농산어촌 유토피아 플랜’ 구상과 추진 배경이 궁금하다.

“애초 저출산 고령화 타개를 위한 방안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고민의 산물로 출발했다. 최근 대량 은퇴한 베이비부머 1세대가 고령화의 한 축이 되면서 핫이슈로 부각됐다. 특히 비대화한 수도권에서 은퇴 이후 수익원이 없는 처지로 전락한 경우가 상당수다. 최근 한 통계를 보면, 서울을 비롯한 전국 대도시에 분포한 1세대 베이비부머가 거의 1200만명에 육박한다. 반면, 농산어촌은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데다, 사회보장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등 복지혜택의 사각지대로 방치된 곳이 태반이다. 정부가 소득이 부족한 농촌과 귀농귀촌인들에게 사회보장 혜택을 강화해 도시와 농촌이 공존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농촌 공동체에 젊은 세대와 베이비부머 세대까지 오가면서 서로 교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 정부와 지자체의 농촌 정책을 보면, 주택과 의료복지, 교육 제공, 환경관리, 돌봄 등 기초 인프라 구축에만 치중해온 측면이 강하다. 앞으로는 도시와 농촌에 에너지와 자원, 정보가 물 흐르듯 이동하도록 새판을 짜야 한다. 농산어촌에서 구성원 각자가 원하는 ‘개인 행복과 좋은 삶’을 충족시킬 수 있는 단계, 즉 상위 개념인 자아실현까지 도달해야 한다. 이런 여건을 만들고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다름 아닌 농촌 공동체이며, 이를 총괄해서 개념화하는 것이 바로 ‘농산어촌 유토피아’다.”

―그간 농산어촌 유토피아와 관련해 전국적으로 다수의 포럼과 현장 토론회 등을 열었다. 지역재생 사업과 관련한 발굴 성과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

“연구원 산하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이미 2018년 초부터 농산어촌 인구 과소화와 저출산 고령화라는 난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농산어촌 플랜’을 구상해 왔다. 지금까지 전국 농산어촌을 대상으로 지역재생 사업을 통한 주요 성공사례 등을 발굴하고 정책지원 방안 등을 추진해 왔다. 경사연은 해당 정부 부처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농산어촌 유토피아 기획단’을 꾸려 지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서울과 충남 홍성, 전남 나주, 경남 함양, 경북 의성 등지에서 모두 6차례에 걸쳐 ‘포용사회를 향한 농산어촌 유토피아 실천구상’을 주제로 현장 토론회를 열었다. 기획단에는 농림축산식품부와 산림청, 행정안전부, 한국농어촌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농협,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 등이 참여하고 있다.

성공 모델로는 경남 함양군의 ‘서하 아이토피아(아이+유토피아)’ 플랜을 들 수 있겠다. 한 시민활동가가 지핀 ‘작은학교 살리기 운동’이 전국적 호응을 얻은 결과다. 전교생이 10명 안팎이라 폐교 조치가 임박한 서하초등학교로 전입을 희망하는 문의가 전국에서 쇄도한 것이다. 엄격한 심사 끝에 17명의 전입생을 선발하고 학부모들이 같이 거주할 주택단지 조성 작업이 이뤄졌다. 이 주택단지는 이달 말 준공식을 앞두고 있다. 인구소멸 지역으로 여겼던 경북 의성에서는 청년 대상 창업과 주거지원 사업 등이 호응을 얻어 최근 5년여 사이에 귀촌 인구가 700명 이상 늘었다. 둘 다 농산어촌 지역재생 사업의 대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최익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choi21@hani.co.kr

녹취록 정리 이주형·김슬아 보조연구원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839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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