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
제1회 농촌기본소득 정책포럼
기본소득 사회실험 의미 등 짚어

인도 기본소득 사회실험 설계자
“창업·경제활동 늘고 취학률도 상승
효과 검증 넘어 공론화 작업 큰 의미”

충남 장고도·제주 행원리 등
공유자산 활용 수익배분 눈길

“경기도 농촌기본소득 실험 때
지역 공동체 미치는 영향 살필 것”

지난 29일 서울 중구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복합문화공간 ‘채비’에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등이 주최한 제1회 농촌기본소득 정책포럼이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사회를 맡은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토론 좌장을 맡은 이원재 랩2050 대표, 발제자인 강제윤 섬연구소 소장. 기조 발제자인 사라트 다발라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의장을 비롯해 나머지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줌을 통해 토론에 참여했다. 이주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보조연구원
지난 29일 서울 중구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복합문화공간 ‘채비’에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등이 주최한 제1회 농촌기본소득 정책포럼이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사회를 맡은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토론 좌장을 맡은 이원재 랩2050 대표, 발제자인 강제윤 섬연구소 소장. 기조 발제자인 사라트 다발라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의장을 비롯해 나머지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줌을 통해 토론에 참여했다. 이주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보조연구원

경기도가 올해 하반기에 실시할 계획인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의 의미와 쟁점을 짚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역공동체 중심 기본소득 사회실험의 의미와 쟁점'이란 주제로 지난 29일 개최된 제1회 농촌기본소득 정책포럼에서 인도의 기본소득 실험, 국내 장고도(충남 보령)와 제주도에서의 공유자산 수익 분배 등의 사례가 소개되고 시사점이 논의됐다. 이번 포럼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경기도의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을 주관하는 경기도농수산진흥원,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민간 정책연구소 랩2050, 고려대 정부학연구소, 지역재단과 함께 마련했다. 일부 발제자와 토론자는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인도 기본소득 실험의 교훈

이날 기조 발제자로 나선 사라트 다발라는 인도의 기본소득 사회실험의 설계자이자, 전세계적으로 기본소득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의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인도와 나미비아에서 실시된 기본소득 실험의 시사점을 전했다.

나미비아는 2008년부터, 인도는 2011년부터 12개월간 2천명에게 각각 월 12달러와 4달러씩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실험을 실시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들은 게을러지지 않았다. 창업과 경제활동이 늘었고, 새로운 교통시설이 생겨났으며 취학률이 올라가고 가계부채가 감소하는 등의 효과가 있었다. 특히 나미비아에선 알코올의 소비가 늘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라트 다발라는 기본소득 사회실험에 이은 정책의 변화도 소개했다. 그는 “사회실험 이후에 실제 인도의 지방정부가 2018년부터 모든 농민에게 농지 면적에 비례한 현금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고, 이 정책으로 해당 정당이 지방 의회의 4분의 3을 석권했다. 하지만 농촌 지역에서 땅의 소유주들에게만 지급이 되면서 소작농들과 농민이 아닌 자들이 배제됐고, 기본소득 논의가 주로 ‘배제된 사람’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진행됐다”며 “기본소득 사회실험을 진행할 때 개별성 원칙이 잘 지켜질 필요가 있고, 지역에서 배제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인도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이라고 밝혔다.

사라트 다발라는 증거 수집을 넘어 사회적 대화를 촉진하는 사회실험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과거 노예제 폐지나 여성 참정권을 쟁취할 때엔 미리 소규모로 사회실험을 실시하지 않았다. 이런 정책은 가치와 철학, 인권을 기반으로 실시됐다. 분명 정책 효과라는 근거는 중요하지만, 증거만 가지고 정책이 실시되진 않는다. 인도에선 사회실험 이후에 정치적 운동이 일어났고, 무엇이 나은 방안인지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공론화하는 작업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가 강조하는 사회실험의 또 다른 역할은 대중과 언론, 전문가, 정당 간에 어떤 대안이 바람직한지를 논의하는 대화를 촉발한다는 점이다. 그는 “한국에서도 지난 5년간 성남시의 청년배당,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 코로나 사태 속에서 전국민 재난지원금 등의 실험적 사례들이 있었고, 그로 인해 소수의 학자들만 논의하던 기본소득이 정치권과 대중의 주목을 받는 의제가 되었다”고 말했다.

해삼 씨앗이 섬 주민 기본소득이 되기까지

이날 토론회에선 지역 공동체가 공유한 자산에서 나오는 수익을 분배하는 사례들도 소개됐다. 강제윤 섬연구소 소장은 장고도에서 해산물 채취로 얻는 수익을 섬 주민들에게 배당하는 사례를 설명했다. 장고도는 81가구, 200여명의 주민이 사는 작은 섬으로 1993년부터 해삼 어장의 수익을 배당해 2019년엔 가구당 연간 1100만원이 지급됐다. 강 소장은 “해삼은 다른 어류 양식과는 달리 씨앗만 뿌리면 알아서 해초를 먹고 자란다. 성체가 될 때까지 주민이 신경 쓸 일이 하나도 없고, 다 자란 것을 채취만 하면 된다. 장고도 주민들은 거의 노동을 투입하지 않는 해삼 양식으로 기본소득을 받고, 두달간 열차례 바지락을 채취하는 노동소득으로도 동일한 금액을 배당받는다. 기본소득과 노동소득을 합쳐 마을 공동체로부터 받는 배당액이 가구당 연 2000만원 정도 되기 때문에 양식업을 하느냐에 따라 소득 격차가 큰 다른 섬들과는 달리 장고도 주민들은 균등하고도 안정적인 소득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충남 장고도에서는 해산물 채취로 얻는 수익을 주민들에게 배당하는 기본소득 실험이 진행 중이다. 강제윤 섬연구소 소장 제공
충남 장고도에서는 해산물 채취로 얻는 수익을 주민들에게 배당하는 기본소득 실험이 진행 중이다. 강제윤 섬연구소 소장 제공

하지만 장고도 주민들이 균등한 배당액을 받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을 겪었다. 애초 장고도의 어장은 양식업자에게 임대를 주고, 마을 공동체인 어촌계가 임대료를 받는 구조였다. 강 소장은 “(누구의 소유도 아닌) 어장을 임대해주는 것이 불법인데다, 임대료가 1983년 당시로서도 터무니없는 가격인 연 50만원이었다”며 “1983년 양식업자가 임대료를 내리려고 시도하자, 새로 부임한 청년 이장이 주민들을 설득해 어장을 되찾았고, 10년간은 어장에서 나온 수익을 마을 재산으로 관리하며 대부업 등에 사용했다. 논란 끝에 1993년에 처음 배당이 시작되자 더 이상 어장 수익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사라졌고, 어장이 공동의 관심으로 잘 관리되면서 매년 배당액이 커졌다”고 전했다. 공정한 분배체계가 공유자산의 관리에 도움이 된 것이다.

장고도와 마찬가지로 제주도에서 공유자산을 통한 기본소득의 가능성을 발표한 김자경 제주대 학술연구교수는 “제주도는 목장과 어장의 수익을 마을 공동체가 함께 운영하며 수익을 배분한 전통이 있다. 예를 들어 (해초류인) 톳과 우뭇가사리는 공동 작업해 배분하고, 미역은 개인이 채취한 만큼 가져가는 등 101개의 어촌계가 각기 나름의 관습과 질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제주에서 새로운 공유자산으로 주목받는 것은 풍력발전의 원동력인 ‘바람’이다. 김 교수는 제주도 동쪽 지역의 구좌읍 행원리 풍력발전 단지를 사례로 제시했다. 그는 “행원리의 6개 마을이 풍력발전 수익의 일부를 배당받고, 기금으로 적립하고 있다”며 “마을 내 갈등과 이견이 생길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고, 이로 인해 마을의 의사결정 권한을 특정인이 독단적으로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새롭게 등장한 공유자산의 수익을 적절하게 분배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하는 숙제가 남은 것이다.

제주 행원리에서는 풍력발전 수익 일부를 주민들에게 배당하고 있다. 김자경 제주대 교수 제공
제주 행원리에서는 풍력발전 수익 일부를 주민들에게 배당하고 있다. 김자경 제주대 교수 제공

분배체계가 지역 주민에 미치는 영향 고려

경기도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을 설계한 지역재단의 이창한 이사는 기본소득이 지역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살펴보는 것이 실험의 주요 목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농촌기본소득이라는 이름 때문에 많은 분들이 농민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이냐고 오해를 한다. 하지만 경기도의 농촌 지역에도 농업인의 비중은 전체의 16% 정도에 불과하다”며 “농업인과 비농업인이 농촌이라는 같은 생활공간에서 서로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장고도처럼 분배체계가 주민들의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박경철 충남연구원 연구위원은 “2019년부터 여러 지자체에서 농민수당을 도입하고 있고, 농민을 대상으로 한 농민기본소득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농촌에는 농민이 아닌 주민들도 농업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고, 함께 지역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농촌의 활성화를 위해선 모든 농촌 주민에게 지급 대상을 확대하자는 개념이 농촌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이지은 기본소득신진연구자네트워크 대표는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은 분배 정의를 넘어 기후정의 측면에서 재평가될 수 있다”며 “농촌이라는 특수성을 반영해 이 실험으로 커먼스(공유자산)를 재발견하고, 지속 가능한 작은 경제 모델을 발굴하며 생태적인 페미니즘을 활성화하는 논의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의 좌장을 맡은 이원재 랩2050 대표는 “경기도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은 핀란드에서 실시된 기본소득 실험과 함께 독특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며 “핀란드에서도 집권한 총리가 정책실험을 실시한 것이었고, 한국에서도 기본소득이 정치권의 주요 의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실시되는 실험”이라고 말했다. 사회실험의 결과에 따라 국가 전체의 정책이 좌우될 수 있는 환경이란 의미다.

윤형중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정책위원 philyoon23@gmail.com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812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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