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도에서도 <가디언>은 9명의 기자를 배치해 기후변화 섹션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기사 작성의 지침인 스타일북을 개정해, 기후변화(climate change)란 말 대신 ‘기후위기’(climate emergency),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 대신 ‘지구가열화’(global heating)란 단어를 쓰겠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기후위기와 연관된 문제들은 체계적이며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요구한다”며 “우리는 미래 세대의 편에 서고, 인류 보존을 위해 두려움 없이 나서는 개인과 공동체를 지속적으로 보도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기후변화가 환경을 넘어 경제·사회의 틀을 흔드는 힘으로 다가오자 세계 언론의 보도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기후변화와 그 주요 대책인 에너지 전환에 대한 뉴스를 더 다양하고 충실하게 보도하고, 용어도 위기의 실상에 부합하는 말로 바꾸어가고 있다. ‘탈원전’ 공방에 휘말려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가 언론의 뭇매를 맞는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미국 뉴스채널 <시엔엔>은 지난해 9월, 10명의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예비주자를 차례로 불러 기후변화 정책 간담회를 열고, 7시간에 걸쳐 중계했다. <시엔엔>은 관련 기사에서 여론조사 결과 유권자가 건강보험이나 총기규제보다 기후변화를 더 중요한 이슈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기후변화가 2020년 대선의 주요 이슈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논리에 우호적일 수밖에 없는 <파이낸셜 타임스>도 지난해 9월 기후변화에서 뉴스의 역할을 짚어보는 9분짜리 ‘기후변화: 내가 무슨 말을 하길 원하는가?’라는 동영상을 발행했다. 2050년에 뉴스를 진행하는 가상의 앵커로 등장한 배우 니컬라 워커는 “과학적 사실을 팝송 부르듯 했으면 지금쯤 합창에 이르렀을 텐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고 반성한다.
언론의 인식 변화는 기후변화에 대한 협업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4월 세계 주요 신문, 방송, 통신, 잡지사는 ‘커버링 클라이밋 나우’라는 공동전선을 구축했다. 미국의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와 <더 네이션>이 주도한 이 단체는 온라인 누리집을 만들어 뉴스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미주의 <블룸버그>, <시비에스 뉴스>, <로이터> 등과 아랍의 <알자지라>, 일본의 <아사히신문>을 포함해 참여 언론사가 현재 400여곳에 이르는데, 이들의 영향을 받는 독자가 10억명에 이른다고 이 단체는 밝혔다.
언론의 이런 변화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018년 10월 지구 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지 않으면 큰 재앙이 온다고 경고한 이후 본격화됐다. 위기는 분명해 보이지만 한두명이 대처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런 점에서 구성원의 의식과 행동에 큰 영향을 주는 언론이 그간의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공론장의 책무를 다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치·경제적 이해에 얽힌 기후과학
사실 기후변화 보도는 과학적인 외양과 달리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붙는 영역이었다. 199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의 큰 정유, 가스, 석탄회사들이 보수 연구소에 자금을 지원하고, 이곳에서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연구 결과가 나와 기후변화는 논쟁적인 사안이 됐다. 기후변화 ‘회의론’자로 불리는 이들의 영향을 받아 아직도 미국인의 38%(2018년 조사)가 기후변화가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 때문이란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관련된 과학자의 97%가 기후변화가 인간의 책임이라는 데 의견 일치를 보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렇게 된 데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지난 30년간 언론은 기후변화가 너무 기술적이고 정치적이며, 칙칙한 소식이란 이유로 보도를 소홀히 했다. 보도하더라도 ‘객관성’ 원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했다. 그 결과 한 줌에 불과한 회의론자의 목소리가 과잉 대표되어 왔다. 하지만 이제 언론은 그런 의도적 균형 잡기와도 결별하고 있다. 영국 공영방송 <비비시>는 2018년 10월 보도국에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그동안 기후변화 보도에서 너무 많은 잘못을 범했다”고 후회하며 “노골적으로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사람을 불편부당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뉴스에 등장시킬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가디언>이 기후변화 회의론자(climate sceptic)란 말 대신 ‘기후과학 부인자’(climate science denier)로 바꾼 것도 더 이상 이런 논쟁이 불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은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는 전문가도, 그런 보도를 노골적으로 하는 언론사도 드물다. 그렇다고 언론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맞게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없다. 김지석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스페셜리스트는 11일 “외신을 인용해 우리나라와는 상관없는 다른 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처럼 보도하거나, 탄소배출 감축과 재생에너지 확대 같은 조처가 경제에 큰 부담을 줄 것이란 과거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진단한다. 한때 신자유주의의 첨병이었던 국제통화기금(IMF)이 이산화탄소 1톤당 현재 2달러인 탄소세를 2030년까지 75달러로 높여야 한다고 파격적으로 촉구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기후변화 앞에서 꾸물거리는 나라는 경제와 산업이 휘청거릴 것이란 국제적 인식과도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