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사회]
경제 45% 협동조합이 담당하는 볼로냐시
협동조합 이끄는 주요 인사들 한국 찾아
‘사회적 경제’ 활성화 방안 등 조언 내놔

“사회 다양한 요구들에 민간이 먼저 반응
관, 민간 이니셔티브 인정·문제해결 협력을
민관 수평관계 담은 법제화 작업 준비하고
협동조합끼리 협업 통한 사업확대 등 고려를”
불평등 심화·고령화 등 직면 한국에 시사점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2019 국제희년재단 심포지엄-소외와 배제 없는 사회를 위하여’ 행사에 이탈리아 볼로냐시 협동조합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협동조합 활성화와 관련한 여러 조언들을 내놨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2019 국제희년재단 심포지엄-소외와 배제 없는 사회를 위하여’ 행사에 이탈리아 볼로냐시 협동조합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협동조합 활성화와 관련한 여러 조언들을 내놨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

이탈리아 중북부에 있는 볼로냐는 흔히 ‘협동조합의 성지’로 불린다. 조 단위 매출을 올리는 소비자협동조합 체인을 비롯해 농민·낙농·주택·유치원·급식·택시·연극·인쇄 등 수백개 협동조합이 활발하게 활동 중이기 때문이다. 인구 50만명이 채 안 되는 중소도시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이탈리아 전체 평균보다 두배 가까이 높고, 실업률은 5% 수준으로 이탈리아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다.


이런 ‘협동조합의 도시’ 볼로냐 협동조합연합회를 이끄는 리타 게디니 회장, 돌봄서비스 사회적 협동조합 카디아이(CADIAI) 프랑카 굴리엘메티 회장, 볼로냐시 안젤로 피오리티 정신보건국장 등이 한국을 찾았다. 국제희년재단 등 주최로 지난달 31일~이달 1일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소외와 배제 없는 사회를 위하여’ 심포지엄에 참석해, 자신들의 경험을 한국의 활동가들과 함께 공유, 전수한 것이다. 이들은 수평적인 민관 협력관계 구축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협동조합 사이 협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리타 게디니(Rita Ghedini) 볼로냐 협동조합연합회장.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
리타 게디니(Rita Ghedini) 볼로냐 협동조합연합회장.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

■ 협동조합이 GDP 45%…위기 땐 안전망 구실도 “볼로냐시 협동조합들 매출은 165억유로(약 22조원)로 시 국내총생산(GDP)의 45%를 차지한다. 협동조합들이 최근 1년 동안 만들어낸 일자리가 7만4천개인데, 이 가운데 86%는 영구계약직으로 안정성도 높다. (볼로냐 협동조합들은) 가진 자들의 착취나 소외가 없는 (자본주의를 벗어난) 다른 사회 형태를 선보였다고 할 수 있다.”

심포지엄 기조발제를 맡은 임종한 인하대 의대 교수(국제희년재단연구원장)의 평가다. 리타 게디니 볼로냐 협동조합연합회장은 이탈리아 고용동향 데이터를 제시하며 이를 뒷받침했다. ‘사회적 경제는 어떻게 볼로냐 사회발전의 핵심 동력이 되었는가’를 주제로 발표한 게디니 회장은 “2013~16년 이탈리아에 경제위기가 왔고, 이때 일반기업들은 해고 등을 통해 고용을 줄였다. 하지만 협동조합이 경제를 주도하는 (볼로냐가 주도인) 에밀리아로마냐주에서는 고용이 더 늘었다. 경제가 어려울 때 협동조합은 더욱 발전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실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과 2015년을 비교하면 볼로냐 전체 협동조합들의 자산 규모는 줄었다고 한다. 마진이 줄어들더라도 고용은 줄이지 않은 결과였다. 게디니 회장은 “협동조합이 경제위기의 영향력을 완화하는 구실을 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게디니 회장은 어린이·청소년·노인·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협동조합 카디아이에서 30년가량 몸담다 이탈리아 상원의원이 돼 정계에 진출했고, 2014년 볼로냐 협동조합연합회장으로 ‘현업’에 복귀했다.

알세스테 산투아리(Alceste Santuari) 볼로냐 대학 경영대학원 교수.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
알세스테 산투아리(Alceste Santuari) 볼로냐 대학 경영대학원 교수.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

프란카 굴리엘메티(Franca Guglielmetti) 카디아이 회장.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
프란카 굴리엘메티(Franca Guglielmetti) 카디아이 회장.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

■ 수평적 민관협력관계 중요…협동조합끼리 협업도 자본주의 사회이면서도 영리추구 목적이 아닌 협동조합이 어떻게 전체 경제의 절반 가까이 차지할 수 있을까. 볼로냐 인사들은 수평적 민관 협력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한입으로 강조했다.

볼로냐대 경영대학원 알체스테 산투아리 교수는 “민관 협력 파트너십이란 정부가 시장에서 (입찰을 통해) 사회적 기업이나 비정부기구(NGO), 협동조합의 서비스나 물품을 구매하는 공공조달과는 다르다”며 “(파트너십이란) 상호 신뢰에 바탕해 공공기관과 민간이 동등한 책임과 권한을 가지는 관계”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사회에서 시민들의 요구는 다양하고 복잡하며 중층적이어서 공공기관이 이를 다 처리할 수 없다. 공동체의 필요에 시민들과 봉사자 등 민간에서 먼저 반응해 움직이게 되는데, 관은 이런 민간의 이니셔티브를 인정해줘야 한다”며 “(관은) 구매하면 된다는 마인드가 아니라, 어떻게 시민들의 필요에 응할지 함께 협의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민관이 동등한 관계에서 협력한다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이들 두고 청중들 사이에서 ‘갑을 관계가 많고, 관 우위 전통이 오랜 한국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법제화해야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등 반응이 나왔고, 산투아리 교수는 “20년 전 볼로냐에서도 (뭘 어떻게 법제화할지) 막연해했다. 필요하다면 여러분께 법제화 내용을 건네주겠다”고 화답했다.

협동조합 사이 협업의 중요성도 얘기됐다. 카디아이 프랑카 굴리엘메티 회장은 “카디아이는 (사회복지 노동자들) 노동조합에서 시작했지만 단순한 노동조합이 아니라 기업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다. 다만 그 목적은 이익이 아니라 영속성이었다”며 “생산성 향상을 통해 수요를 창출해야 하고, 지역적 기반을 확실히 하되 컨소시엄과 향토기업 상품 프로모션 활용 등 다른 조합들과 협력을 통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협동조합은 독자적인 기술과 경영 역량만으로는 성장하기 어렵다. 정부와 다른 협동조합, 지역사회와의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한 협력 네트워크가 중요하다”며 “규모가 큰 협동조합일수록 중소 협동조합이 성장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주는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안젤로 피오리티(Angelo Fioritti) 볼로냐 정신보건국장.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
안젤로 피오리티(Angelo Fioritti) 볼로냐 정신보건국장.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

■ 정신병원, 사라져도 별일 없더라! 프랑스의 철학자·사회학자인 미셸 푸코는 서구에서 근대 출범의 지표 가운데 하나로 정신병원의 탄생을 들었다. 이성과 상식, 표준을 표방한 근대에 들어서면서 광인을 치료 대상으로 분류하고 감금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이탈리아는 탈근대국가다. 정신병원이 사실상 사라진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1978년 국립정신병원을 점진적으로 없애고 의료진을 재배치하는 내용의 법률을 제정했고, 그 결과 2000년께 70여개에 이르던 국립정신병원이 모두 폐쇄됐다. 이들 병원에 수용돼 있던 정신질환자 7만여명은 각자 지역사회로 돌려보내져 돌봄과 치료를 받게 됐다. 안젤로 피오리티 볼로냐시 정신보건국장은 ‘이탈리아 정신보건의 역사’ 발제에서 감금과 억압에서 지역사회 돌봄으로 점진적으로 옮겨간 정신의료 개혁 과정을 소개했다. 지역마다 설치된 정신건강센터를 중심으로 종합병원 외래, 주간치료센터, 공동거주 등 네트워크를 구축해 정신장애인들은 지역공동체 일원으로 생활하도록 했다는 내용이었다. 피오리티 국장은 “지난 10여년간 (지역사회 돌봄 중심 정신보건정책) 시스템이 위협받기도 했다. 경제위기로 인한 재정 악화로 위기가 오기도 했었지만 개혁 과정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라라 퓨리에리(Lara Furieri) 카디아이 협동조합 국제 프로젝트 총 책임자.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
라라 퓨리에리(Lara Furieri) 카디아이 협동조합 국제 프로젝트 총 책임자.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

이틀 동안 진행된 심포지엄에서 볼로냐 쪽 인사들은 긴 기대 수명과 산악지대가 많은 반도 국가, 인구 규모 등 이탈리아와 한국의 공통점을 언급하며 친근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처지나 조건이 비슷하니 한국에서도 협동조합 모델이 성공할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 담긴 응원이었다. 임종한 교수는 “사회 불평등 심화, 실업 증가, 비정규직 증가 등 고용의 질 저하, 고령화에 따른 건강 취약계층의 증가, 의료 및 복지 비용의 증가 등 현대사회의 복잡한 사회문제들은 시민 참여에 따른 직접민주주의 실현, 사회적 경제 육성, 경제민주화 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음을 ‘볼로냐 모델’이 실증적으로 보여준다”며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의미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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