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사회]
불황기에 고용 중심 청년지원 힘쓴 일본
호황에도 니트·히키코모리 등 심해져 
‘일자리 만능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주거·문화 등 사회 안전망 확충 힘써야

“교수님, 적당한 때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냥 남들처럼… 그게 인생입니까?”

한 일본 대학생이 교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며칠 후, 학생은 자살을 시도했다. 일본 리츠메이칸대 야마모토 코헤이 교수가 겪은 일화다. 그는 연구자이면서 전국 히키코모리협회 회장까지 지낸 활동가다. 이른바 ‘히키코모리’(방안에 틀어박혀 경제·사회생활을 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쏟고 있다.

우울증과 히키코모리 생활을 주제로 한 유튜버 ‘안녕아랑’ 갈무리. 시청자가 남긴 악플을 읽고 그에 대한 대답을 하는 콘텐츠다.
우울증과 히키코모리 생활을 주제로 한 유튜버 ‘안녕아랑’ 갈무리. 시청자가 남긴 악플을 읽고 그에 대한 대답을 하는 콘텐츠다.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열린 ‘한·일 청년층 지원정책의 현황과 과제’ 포럼 참석차 한국을 찾은 야마모토 교수는 “이 학생과 같은 고민을 하는 청년이 한국에도 많은 것으로 안다”며 “이를 개인의 일탈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엇보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 ‘고용’의 관점에서만 청년 문제를 바라보는 현실에 주목한다. 단지 고용을 늘리는 게 히키코모리 현상과 같은 다양한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처방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경기 살아나도 피로감·무력감은 더 심해져

일본의 경험이 잘 보여준다. 장기간 경기침체를 겪던 일본은 2003년 들어 청년실업자 100만 명,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는 사람들이 200만 명에 이르자 청년실업 해결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커리어 개발 △직업·창업 교육을 뼈대로 하는 고용촉진 제도인 ‘청년 자립·도전 지원정책’이 대표적이다. 실업률이 뚝 떨어진 2010년대 들어 사정은 달라졌을까? 아니다. 니트(71만 명)·히키코모리(26만 명)뿐 아니라 자살이 청년층 사망 원인 1위가 될 정도로 문제는 외려 심각해졌다.

다른 전문가들도 ‘고용 만능주의’ 관점의 한계를 지적했다. 일본 방송대 미야모토 미치코 교수는 “새로 생겨난 일자리는 불황 중 성장했음에도 교육과 정서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상대적 고학력·중산층 청년들에게 돌아갔다”며, 청년세대 내 격차에 주목했다. 그는 또 “당장 눈앞의 취직 기회는 늘어났을지 몰라도 경쟁중심·획일적 사회가 안겨준 피로감과 무력감이 청년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는 분석도 곁들였다.

대책은 뭘까. 전문가들은 ‘사회적 안전망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을 한목소리로 강조한다. 히키코모리로 상징되는 청년 소외 문제를 풀기 위해선 전 생애에 걸친 주거·돌봄 등 사회적 안전망 확충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사회에 참여하는 이행기’라는 의미에서 청년의 범위를 44세까지로 연장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수치만 놓고 봐도, 우리나라 사정은 일본보다 훨씬 심각하다. 12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고용동향을 보면, 청년 실업률은 10.0%로, 8월 기준으로 1999년(10.7%)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구직활동 자체를 포기한 ‘니트’ 비율은 18.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 15.4%를 웃돈다.

우울증과 히키코모리 생활을 주제로 한 유튜버 ‘안녕아랑’의 일상 소개 영상 갈무리.
우울증과 히키코모리 생활을 주제로 한 유튜버 ‘안녕아랑’의 일상 소개 영상 갈무리.

일자리나 주거 사정이 지금보다 다소 개선되더라도, 청년층이 느끼는 피로감과 무력함이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젊은 여성의 우울증 치료 수기를 담은 책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흔, 2018)가 한 달 가까이 각종 서점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키고, “인간관계에 지쳐 사회에 나가지 않으려 합니다”라며 ‘우울증’, ‘히키코모리’를 주제로 한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인기를 끄는 건 시사하는 바 크다. 니트 청년을 위한 사회적기업 ‘유자살롱’을 운영하기도 한 이충한 하자센터 기획부장은 “청년들이 경쟁사회에 이미 지칠대로 지쳤고, 다른 길을 개척해 사회에 뿌리내릴 방법도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경험 쌓여야”

물론, 국내 청년정책의 성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민달팽이 유니온·청년정책네트워크·청년허브 등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청년 당사자 조직도 늘어났다. 민달팽이 유니온 등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청년 대상 사회주택 공급도 눈여겨볼 만한 시도다. ‘돈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을 받는다’는 서울시의 청년수당이나 성남시의 청년배당, 잠시 멈추고 자신에 대해 고민해보는 ‘갭이어’도 빼놓을 수 없다. 안연정 서울시 청년허브 센터장은 “‘다른 질문을 가져도 괜찮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경험이 쌓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시도조차 대부분 서울에 집중된 탓에, 지방 청년들은 여전히 소외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는 대학생 최은영씨(가명·24)는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기회 자체가 서울에 몰려있다”며 “부산에서 뭘 하려고 해도 여전히 취업 자체가 중심”이라고 말했다.

지난 2일 열린 2018 서울청년의회 모습.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페이스북 갈무리.
지난 2일 열린 2018 서울청년의회 모습.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페이스북 갈무리.

이원재 랩(LAB)2050 소장은 “노동 환경 자체가 바뀌는 가운데 고용만을 목표로 하는 청년대책으로는 부족하다는 데 공감한다”며 “다음 세대의 동력이 될 청년이 사회가 보장하는 가운데 다양한 혁신을 실험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선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sona@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이런 도시 어때요?”…시민들이 그리는 ‘미래 서울’

[더 나은 사회] ‘전환도시’ 내건 ‘위 체인지’ 시민포럼 평화감수성·공유도시 등 열띤 토론 13개 열쇳말 추려 서울시정 활용 예정 지난 12일 서울 중구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린 ‘위 체인지’ 오픈 포럼에 ...

  • HERI
  • 2018.10.18
  • 조회수 21

‘나눠주기’식 이전은 안 돼…지역 스스로 마스터플랜 짜야

[더 나은 사회] 지역혁신 전문가 좌담회 김영수 “가장 효과적인 건 앵커 기업의 이전 지역에 성과관리 재량 좀 더 줘야” 류세선 “중앙정부 정책은 공급과잉 상태 중소·중견 기업 중심 생태계 만들자” 정성훈 “광역시·도 ...

  • HERI
  • 2018.10.18
  • 조회수 17

서울 같은 대도시도 해법은 마을과 골목에서 찾아야

[더 나은 사회] 박원순-데이비드 코튼 좌담 박원순 서울시장 “전환도시 방향 확고하게 정할 시점 협동으로도 경제 살릴 수 있어 1 대 99의 사회, 마을에서 눈으로 확인” 데이비드 코튼 교수 “현재의 경제체제는 ‘자살경제’...

  • HERI
  • 2018.10.11
  • 조회수 92

“장애인에게 여행은 세상에 나와도 된다는 메시지”

[더 나은 사회] 장애인여행 전문 기업 ‘두리함께’ 방대한 자료 ‘무장애관광지도’ 펴내 “도움만 받다 자기주장도 펴더라… 하고 싶은 게 있는 주체 된 거죠” 두리함께를 통해 제주 바닷가를 여행 중인 관광객들. 두리함...

  • HERI
  • 2018.09.27
  • 조회수 80

공정여행의 진화…사회운동에서 ‘주민 참여형 산업’으로

[더 나은 사회] 지역경제 살릴 해법으로 새롭게 주목 ‘구름에’ ‘제주생태관광’ ‘동네봄’ 등 마을 특색 살린 프로젝트 잇달아 선봬 “정부의 관광정책 틀 다시 세워야” 지난 8일 경북 안동 성곡동에 위치한 전통리조트 ...

  • HERI
  • 2018.09.27
  • 조회수 132

‘고용’을 넘어 ‘사회적 포용’으로…“‘청년 문제’ 바라보는 시각 바꿔야”

[더 나은 사회] 불황기에 고용 중심 청년지원 힘쓴 일본 호황에도 니트·히키코모리 등 심해져 ‘일자리 만능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주거·문화 등 사회 안전망 확충 힘써야 “교수님, 적당한 때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

  • HERI
  • 2018.09.20
  • 조회수 137

“자영업 위기, ‘최저임금 때리기’로 해결될 일 아니다”

[더 나은 사회] 국회에서 ‘한국의 자영업’ 토론회 열려 해외소비 늘고 외국인 소비 감소 겹쳐 한계 자영업자에 임금인상 부담은 사실 ‘기-승-전-최저임금’은 구조적 원인 호도 “자영업자, 현 정부 급격히 ‘지지 철회’” ...

  • HERI
  • 2018.09.20
  • 조회수 213

문제는 ‘전기요금 폭탄’이 아니라 ‘에너지 불평등’

관측사상 최악 폭염에 ‘전기요금 폭탄론’ 들끓자 한시적 인하 카드 꺼낸 정부 정치권 일부선 누진제 폐지 주장도 논란 소용돌이 속에 정작 폭염·에너지 대책 논의 사라져 에너지·환경 시민단체 쪽 “누구나 공급받아야 하지만...

  • HERI
  • 2018.09.20
  • 조회수 210

‘책임 있는 자본주의법’은 묻는다…“기업, 넌 대체 누구니?”

[더 나은 사회] 민주당 대권주자 워런이 발의한 법안 ‘연방법인’ 인가제…지배구조에 칼날 재계 반대 등 당장 현실화는 힘들 듯 불평등 해결하는 ‘새로운 상상력’ 의미 엘리자베스 워런 미국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민주당)이...

  • HERI
  • 2018.08.30
  • 조회수 345

동네가 미디어다…삶의 현장을 바꾸는 저널리즘의 새 얼굴

[더 나은 사회] 어반플레이·닷페이스 등의 ‘다른 문법’ ‘내 이야기’에 주목하는 마을미디어들 독자를 ‘해결자’로 이끌어내는 데 성공 사회혁신의 대표 사례로 자리잡는 중 도시 문화 콘텐츠 기업 어반플레이는 “(도시에도) ...

  • HERI
  • 2018.08.24
  • 조회수 231

최저임금 효과 측정할 통계 절실…예산 들여 체계 갖춰야

[더 나은 사회] ‘가계동향조사 논란’ 해법 모색 좌담 강신욱 보사연 선임연구위원 “조사마다 방법 각기 달라 불평등 지표 다르게 나오는 건 당연 다양한 정책수요 충족시킬 안정적 데이터 확보·유지 필요 공개 범위도 넓혀...

  • HERI
  • 2018.08.10
  • 조회수 384

“초과세수 근거로 증세 회피해선 안 돼”

감세 기조 ‘세법개정안’ 비판 봇물 고소득층·대기업에까지 세제 혜택 재정지출 늘렸지만 ‘돈 나올 곳’ 안 보여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지난달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18년 세법개정안’을 설명하는 자...

  • HERI
  • 2018.08.02
  • 조회수 328

극한 치닫는 ‘을들의 다툼’…‘갑질’ 구조 개선 등 유기적 정책 필요

[더 나은 사회] 최저임금 인상·노동시간 단축 등 소득주도성장 핵심정책들 종합적 고려 없이 추진해 ‘반발’ ‘미지근’ 종부세 개편안도 여론 지지 못 얻어 원하청 거래 개선·임대료 규제 등 영세자영업자 대책 실시하고 집값...

  • HERI
  • 2018.08.02
  • 조회수 381

“같은 고민 나누니 농촌에서 계속 살아갈 힘 생기던데요”

[더 나은 사회] 농촌청년여성캠프 연 해원과 들 농촌 2030 여성들 살아가는 이야기 일상의 고민 나누는 느슨한 ‘연대’ “내 고민 말하니 사회로 연결되더라” 지난 14∼15일 충남 홍성 정다운농장에서 열린 제4회 농촌청년여...

  • HERI
  • 2018.07.19
  • 조회수 492

'같이'의 가치를 찾는 청년들의 자립 실험

[더 나은 사회] 귀농·비대졸 청년 자립 돕는 활동 늘어 ‘팜프라’·‘소풍가는 고양이’ 등 대표적 다양한 계층 감싸는 지원책 아쉬운 현실 실패 부담 덜어줄 사회안전망 갖춰야 청년 농부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팜프...

  • HERI
  • 2018.07.18
  • 조회수 426

‘삶의 질’ 초점 맞춘 ‘중장기 국가 비전’ 속속 나온다

학계와 정부기구 두루 통합적 사회정책 비전 마련 분주 정책기획위, 국가 미래비전 수립 사회정책 중장기 비전도 작업중 사회보장위, 사회보장기본계획 바탕 될 ‘사회보장 2040’ 준비 박차 복지부·기재부도 각각 경제·사회 패러...

  • HERI
  • 2018.07.06
  • 조회수 507

"지역의 윤리적 소비자가 에너지 전환의 주역"

마르코스 로마노스 ‘클레너지’ COO 세계 최초로 블록체인 기술 활용한 에너지 플랫폼 ‘파일론 네트워크’ 소개 “윤리적 소비자 정치력 높이는 게 목표” 지난 1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18 사회적 경제 ...

  • HERI
  • 2018.06.21
  • 조회수 527

사회적기업, 새터민 앞으로 한걸음 더 가까이 가려면…

[더 나은 사회] 해주부용식품·모어댄 등 사례 주목 문화충격 흡수하는 ‘완충장치’ 역할 일자리 이동 잦고 경쟁력 낮은 건 한계 ‘취약계층 보호’ 낡은 시선 벗어나야 북한이탈주민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열린 한 취업지원...

  • admin
  • 2018.06.21
  • 조회수 559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도 ‘집합적 임팩트’ 성공 ‘방정식’이

【HERI 더 나은 사회】 자동차 공장유치란 구체적 목표 세우고 이해관계자가 각자 전문성으로 시뮬레이션 대화와 소통으로 목표, 방법의 공감 넓혀 ‘‘집합적 임팩트’ 방법으로 일군 사회적 대화 윤장현 광주시장(왼쪽에서 5번...

  • HERI
  • 2018.06.08
  • 조회수 677

“혼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집합적 임팩트’ 주목

【HERI 더 나은 사회】 ‘지역 균형발전과 사회공헌’ 포럼 ‘집합적 임팩트’ 협력 모델 소개 복잡한 문제에 여럿이 함께 대응 서로 배우고, 고민하고, 성장하고 지역문제 푸는 소통, 참여의 해법 기업 사회공헌 새 모델로도...

  • HERI
  • 2018.06.08
  • 조회수 5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