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사회] 기획/행복한 아파트 공동체 만들기①

10대부터 60대까지 세대 뛰어넘어
동네 맛집, 세탁소, 놀이터부터
동파 대처요령 등 이야기해보니
‘삭막한 아파트’ 아닌 ‘이웃’과 함께할
다양한 아이디어 나와

“공동체의 가치만 강조하기보다
일상 매개로 가벼운 활동 해보면
자연스럽게 주민 관계 형성되고 
이웃의 필요성도 알게 돼”

서울주택도시공사와 희망제작소가 진행하는 ‘행복한 아파트 공동체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상생활 기술 나눔’ 프로그램에 참가한 서울 신내동 신내데시앙 주민들이 동네에서 세대를 아울러 할 수 있는 활동이 뭐가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울주택도시공사와 희망제작소가 진행하는 ‘행복한 아파트 공동체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상생활 기술 나눔’ 프로그램에 참가한 서울 신내동 신내데시앙 주민들이 동네에서 세대를 아울러 할 수 있는 활동이 뭐가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요즘 날씨가 너무 추워서 세탁기가 안 돌아가기에 후배한테 물으니까 헤어드라이어로 녹이면 된대요. 해봤더니 되더라고. 이런 것들을 주민들한테도 알려주면 좋겠네요.”(김군수 임차인대표회장)

“동파뿐만이 아니라, 당장 도움이 필요한데 어디에 얘기하면 좋을지 난감한 문제들이 생길 때 같은 동 안에서 해결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아파트 1층에 메모지 붙일 수 있는 소통판을 만들어서 ‘언제까지 세탁기 쓰시러 오세요’라든가 ‘쌀이 너무 많은데 좀 가져가세요’ 같은 걸 붙여두면 좋을 것 같아요. 젊은 엄마들은 온라인 주민모임을 잘 활용하지만 연세 드신 분들은 못하시잖아요.”(주민 기숙영씨)

서울 신내동 아파트단지들 속 신내데시앙의 책울터 작은 도서관에 최근 모인 주민들 열댓명이 세 조로 나뉘어 ‘공동 버킷리스트 찾기’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울주택도시공사와 희망제작소가 진행하는 ‘행복한 아파트 공동체 만들기’ 사업 가운데 하나인 ‘일상생활 기술 나눔’ 프로그램이었다. 주민들이 발 벗고 나서 세대 간 벽을 허물고 사람 냄새 나는 공동체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다. 일상생활의 기술은 삶을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소소한 지혜로, ‘이웃’이 아닌 다른 데서는 배우기 어렵다. 이 이웃들과 공동 생활공간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정보를 나누다 보면 아파트라는 삭막한 공간도 든든하고 따뜻해질 수 있다.

이튿날 저녁 중계동 중계센트럴파크 주민카페에도 이런 자리가 마련됐다. 주제는 ‘알쓸신잡 가이드북 만들기’. 동네 숨은 맛집이나 질 좋은 옷 싸게 파는 곳, 친절하고 세탁 잘하는 세탁소 같은, 동네에서 생활하는 데 꼭 필요하지만 막상 검색하려면 막막한 ‘깨알 정보’를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같은 ‘동네 활동’이라도 참여하는 주민들이 하고 싶은 것이 다르기 때문에, 각 동네의 주제는 사전에 실시한 주민투표로 결정됐다.

이날 모임에선 김수진(40)씨의 정보력이 빛을 발했다. “(한국가스공사가 운영하는) 천연가스체험관에 가면 빨래건조기를 쓸 수 있어요. 직원이 아닌 사람도 이용할 수 있는 회사 구내식당이 아파트 근처에 몇 곳 있는데 ○○은 돈가스가 정말 맛있고, △△은 가격이 저렴해요. 아이들 데리고 한 번씩 가보세요. 시장 반찬가게 중엔 □□이 제일 훌륭해요.” 열댓명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우와” 탄성과 함께 “어떻게 그런 걸 다 알아요?” 하는 반응이 쏟아졌다.

서울주택도시공사와 희망제작소가 진행하는 ‘행복한 아파트 공동체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상생활 기술 나눔’ 프로그램에 참가한 서울 중계동 중계센트럴파크 주민들이 맛집 등 동네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서울주택도시공사와 희망제작소가 진행하는 ‘행복한 아파트 공동체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상생활 기술 나눔’ 프로그램에 참가한 서울 중계동 중계센트럴파크 주민들이 맛집 등 동네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모임을 진행한 희망제작소 쪽은 주민들이 동네에서 맘 편히 말 걸 수 있는 새로운 관계망을 만들 계기를 마련하는 데 특히 공을 들였다. 조별로 활동비 10만원을 지급하면서 일주일 안에 할 수 있는 동네 활동을 해보라고 한 게 대표적이다. 일회성 만남에 그치지 않고, 동네 활동을 계기로 얼굴 한번 더 보고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이웃이 있는 삶’을 꾸려볼 수 있게 유도한 것이다.

중계센트럴파크 주민들이 공유한 동네 정보들.
중계센트럴파크 주민들이 공유한 동네 정보들.

신내동에서 조현(11)양의 이야기를 30~40대 주부들이 귀 기울여 듣던 조에선 주말에 가족, 친구들까지 함께 불러 아파트 놀이터에서 배드민턴도 치고 달리기 시합도 하기로 했다. 구자순(67)씨의 조에선 “아파트 근처에 새로 생긴 카페의 치즈케이크가 맛있다”는 한지윤(39) 책울터 도서관장의 소개로 그곳에서 ‘세대공감 수다’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김군수 회장의 조에선 당장 이날 저녁 볼링장에 가기로 했다. “동네에서 소통할 친구가 필요한 것 같다”며 조별 이야기에 적극적이던 노현정(36)씨는 “아이 맡길 사람을 찾아봐야겠다”며 신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동네에서 편안한 수다와 일상을 나누는, 이웃이라는 ‘비빌 언덕’ 하나가 각자에게 생길 것이라는 기대를 품기에 충분했다.

역시 세 조로 나뉜 중계동 주민들은 각각 △동네 반찬가게 비교 분석 △가장 맛있는 배달음식점 찾기 △아파트에 붙은 과외나 공부방, 요리교실 등의 생활정보 전단지 내용을 모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이웃과 공유하기를 하는 데 조별 활동비 10만원을 쓰기로 했다.

주민들의 만족감은 높아 보였다. 중계동 주민 채명희(39)씨는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동네에 뭐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유모차 끌고 다니다 보니 멀리 갈 수가 없고 자연스럽게 동네에 관심이 생겼다”며 “이렇게 동네에서 편한 차림으로 같이 애 키우는 얘기도 하면서 정보를 나눌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신내동 주민 구자순씨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 이런 프로그램을 한다는 아파트 안내방송이 나와서 한번 와봤는데, 여기서 손자들, 딸, 며느리 같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참 기쁘다”며 “여태 그냥 나와 가족이 잘 사는 거만 생각했지, 동네를 위해서 뭘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 (다른 생각을 해보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했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안수정 희망제작소 연구원은 “공동체의 가치를 강조하면 주민들이 부담스러워하고 참여하기도 어렵다. 공동체 활동은 ‘의무’가 아니다”라며 “하지만 일상에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이웃과 함께 가볍게 할 수 있는 것, 세대나 지역정보를 매개로 한 이런 활동에 한 발 정도만 담가보면 관계가 형성되고 이웃이 왜 필요한지 스스로 알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글·사진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클리블랜드가 보여준 지역재생 모델

[더 나은 사회] 산업 공동화 지역의 자생력 회복 전략 병원 등 앵커조직과 협동조합이 연계 2009년 설립된 에버그린 세탁 협동조합은 클리블랜드 안에서 실업 및 빈곤 문제가 심각한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위키피...

  • HERI
  • 2018.05.04
  • 조회수 687

재능 나누는 재미 쏠쏠, 이웃 간 쌓는 정이 폴폴

[더 나은 사회] 기획/행복한 아파트 공동체 만들기② 김밥 만들기·손바느질 등 혼자서는 힘들던 ‘숙원사업’ 동네의 숨은 고수 만나 함께하니 정보·친구 모두 얻는 ‘일석이조’ 서울주택도시공사(SH)와 희망제작소가 진행하는 ‘...

  • HERI
  • 2018.04.13
  • 조회수 709

한 지붕 한 가족 되니 힘이 '두 배'

[더 나은 사회] 공동자금 모아 만든 공유공간 ‘나눔’ 사회적 경제 조직 등 한 건물에 모여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 위치한 공유공간 ‘나눔’ 스케치 전경. 지난해 11월 광진주민연대는 회원과 입주단체들이 공동으로 자금을 ...

  • admin
  • 2018.04.12
  • 조회수 772

소소하지만 위대한 돈, 지역에 생기 불어넣는 '공동체 기금'

[더 나은 사회] 더불어 살아가는 지역 위해 ‘십시일반’ 시민단체와 사회적 경제 공동 기금 조성 지역공동체 이익과 발전 위해 운용 민간 주도 사회적 금융 생태계 씨앗 지난 1월 열린 관악공익활동가대회에서 관악뿌리기금의...

  • admin
  • 2018.04.12
  • 조회수 753

마을정치의 힘으로 '세월호 이후' 희망 찾기

[더 나은 사회] 6·13 지방선거 출사표 던진 마을공동체 활동가들 아이들 못 지킨 죄책감 ‘가만히 있으라’에 분노 등 출마 결심 이유 제각각이지만 삶을 바꾸는 게 먼저라는 인식과 생활정치의 권력 교체에 ‘공감 6·13 지방...

  • HERI
  • 2018.04.10
  • 조회수 845

“여기가 맛집” 깨알 정보 나누며 어느새 ‘동네 친구’

[더 나은 사회] 기획/행복한 아파트 공동체 만들기① 10대부터 60대까지 세대 뛰어넘어 동네 맛집, 세탁소, 놀이터부터 동파 대처요령 등 이야기해보니 ‘삭막한 아파트’ 아닌 ‘이웃’과 함께할 다양한 아이디어 나와 “공동체의...

  • admin
  • 2018.02.19
  • 조회수 1421

“나이 들어 잘 모르는데 일할 기회 알려줘 고마워”

[더 나은 사회] 기획/집이 복지다③ SH ‘찾아가는 임대주택 일자리 상담’ 살펴보니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의 임대주택 일자리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한 서울 가양동 주민 안경조씨(오른쪽 위)와 박종문씨(오른쪽 아래). 박종문...

  • admin
  • 2018.02.19
  • 조회수 820

올해 입법 등 거쳐 본격 추진 예정…현장에선 “인력 확충” 목소리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더 나은 사회]지원주택 제도화 현황과 과제 지원주택 입주자인 박윤하(가명)씨가 설거지를 하고 있다. 서울시와 서울도시주택공사 등은 노숙인·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지원주택 제...

  • admin
  • 2018.01.18
  • 조회수 1177

“이 집 지키고 싶어지니 전엔 못하던 생각 해…더 좋은 사람 되고파”

[더 나은 사회] 입주자들이 말하는 서울 지원주택 독립 거주공간과 지원서비스 결합한 노숙인·장애인 지원주택 시범사업 1년여 만에 입주민들 긍정적 변화 노숙인 출신 홍씨, 수급자 벗어나고 발달장애 이씨, ‘내 공간’ 꾸미기...

  • admin
  • 2018.01.18
  • 조회수 850

“시민은 서비스 소비자 아닌 ‘정부 파트너’…자발성 제고 지원해야”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더 나은 사회] 사회적경제 지도자 마이클 루이스 대담 “‘회복력’ 있는 사회로 가는 데 지름길 없어 몬트리올 지역재생 사업 땐 주민 인식 제고에만 1~2년 정부는 중앙관...

  • admin
  • 2018.01.04
  • 조회수 842

“사회적 가치 측정은 민간에…정부는 지원만”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더 나은 사회] 한국사회학회 ‘사회적 가치’ 심포지엄 “10여년 연구 영국도 표준화 못해” 민간 주체들, 자율성에 방점 “정부가 혁신 고속도로 깔아야” 공공부문선 ‘적극...

  • admin
  • 2017.11.23
  • 조회수 975

“‘원가연동형 표준임대료’ 도입해 사회주택 뿌리내리게”

[더 나은 사회] 민간공급량 축소분 사회주택이 메우도록 사회취약층은 주거보조비 지급으로 보완 덴마크 코펜하겐시 외곽 사회주택의 모습. 서재교 미래세대정책연구소장 제공 한국에서도 사회주택이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려면 ‘원...

  • admin
  • 2017.11.23
  • 조회수 905

‘싸고 좋은 집’에 사는 데 ‘자격’이 필요한가요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더 나은 사회] 덴마크 사회주택 찾아가보니… 입주자격 없이 ‘누구나' 사는 공간으로 입주기간 없이 원하는 만큼 ‘내 집'으로 ‘입주자 민주주의법’ 도입해 정주의식 높여 ...

  • admin
  • 2017.11.23
  • 조회수 868

‘주거 119’, 주거복지센터 들어보셨나요?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더 나은 사회] 상담 통해 맞춤형 서비스 제공 서민 주거복지 마중물 역할 톡톡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왼쪽 셋째)이 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서울강서권주거복지센터...

  • admin
  • 2017.10.23
  • 조회수 1005

“주거복지에도 사회적 경제의 옷을 입히자”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더 나은 사회] ‘주거복지와 사회적경제’ 국회포럼서 민주당 의원·민간 전문가 정책제안 “박근혜 정부 역점 ‘뉴스테이’ 정책 공공성 잃고 건설사 배불리기만” “수요자 직...

  • admin
  • 2017.10.23
  • 조회수 1205

‘주거 119’, 주거복지센터 들어보셨나요?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더 나은 사회] 상담 통해 맞춤형 서비스 제공 서민 주거복지 마중물 역할 톡톡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왼쪽 셋째)이 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서울강서권주거복지센터...

  • admin
  • 2017.10.23
  • 조회수 1151

측정하고 평가하자, 세상이 착하게 바뀌도록

[더 나은 사회] 사회적 가치 측정과 평가 토론회 문재인 법 ‘사회적 가치 기본법’ 주목 공공기관의 모든 정책 수행 원리로 민간기업의 사회책임경영 활성화 견인 창출된 가치 측정·평가에 어려움 예상 지표 마련하는 사회적...

  • admin
  • 2017.09.21
  • 조회수 1147

돕는 이웃된 한국, 좋은 의도가 전부는 아니야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더 나은 사회] 국제개발협력의 현실과 방향 진단 좌담회 빈곤 포르노그래피 이제 지양해야 국제개발협력의 철학과 가치 성찰할 때 한국 꼬리표 떼고 국제사회 일원 되자 누군...

  • admin
  • 2017.09.14
  • 조회수 989

[더나은사회] ‘장미 대선’, 보건의료 일자리 대타협 물꼬 틀까

보건의료산업 노사공동포럼 “일자리 창출·의료서비스 질 제고 노사정 대타협 시작하자” 제안 일자리 창출 규모 12만~50만개 분석 주요 정당 대선 캠프도 공감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제정 약속 보건의료산업 노사공동포럼이 지난 17...

  • HERI
  • 2017.04.20
  • 조회수 1138

[더나은사회] “시민이 참여하는 새 의료 모델 만드는 게 목표”

[인터뷰]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임종한 대표 “국민주치의 제도로 취약계층 질병예방·관리·복지 결합” “통합돌봄지원센터 통해 사회가 함께 짊어지는 돌봄으로” 임종한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대표. 김태형 기자 ...

  • HERI
  • 2017.04.20
  • 조회수 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