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경제연구소

등록 : 2012.04.03 19:49

이숙진 젠더사회연구소 소장(왼쪽)과 김은경 지속가능발전센터 ‘지우’ 대표가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경제연구소 회의실에서 ‘생태’와 ‘여성·가족’의 관점에서 본 각 정당의 정책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환경·에너지·여성·가족 분야 총선정책 평가
김은경 ‘지우’ 대표-이숙진 ‘젠더사회연구소’ 소장 좌담

세계 경제위기와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현재진행형’이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해법은 불분명하다. 사실 성급하게 해법을 찾기보다는 근본적 성찰을 바탕으로 한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 새로운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정치나 경제 같은 주류의 관점에서 한발 떨어져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생태’와 ‘여성·가족’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가치와 정당의 정책들을 살펴보기로 했다. 이 두 분야에서 오래 연구와 실천을 해 온 김은경 지속가능발전센터 ‘지우’ 대표와 이숙진 ‘젠더사회연구소’ 소장의 좌담을 마련했다. 이들은 지속가능하고 성평등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지만, ‘발전’ 개념의 정치적 효과성, ‘복지국가’ 담론의 제한성과 확장성에 대해서는 견해 차이가 뚜렷했다. 좌담은 3월28일 오전 한겨레경제연구소 회의실에서 홍일표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의 사회로 진행됐다.

사회 각 정당의 ‘환경·에너지’, ‘여성·가족’ 분야 총선정책을 평가한다면?

김은경(이하 김) 4대강과 원전, 제주해군기지 문제 등 환경·에너지 분야에 대한 여야 차이는 확연하다. 야당 통합 과정에서 시민단체들의 의견이 많이 수용되었고, 야당 간 정책연대도 ‘탈토건’, ‘탈원전’ 정책수립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녹색당의 견인차 역할이 크다. 여당의 경우 복지국가나 경제민주화 영역과 달리, 환경·에너지 분야에선 과거 태도를 그대로 견지하고 있다. 단 ‘녹색성장’이라는 용어는 전혀 쓰지 않고 있다.

이숙진(이하 이) 여야 차이가 뚜렷하지만, 야당 내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새누리당은 ‘성평등’, ‘성희롱’, ‘성폭력’ 관련 공약이 없고, 보수적 가족모델을 고수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역시 기존 가족정책의 근간을 건드리지 않는다. 성소수자 문제나 차별금지법 등에 대해선 얘기가 없다. 통합진보당은 시민단체들의 의견을 대체로 수용했지만, 정책의 체계성과 일관성이 부족하다. 진보신당과 녹색당은 비교적 일관되게 ‘일과 가족의 양립’이 ‘성역할 균형’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짚고 있다.

사회 여성·가족 정책이 뚜렷한 정치적 쟁점은 되지 않고 있다.

 여성·가족 정책이 다른 정책의 하위범주로 다뤄지거나, 노인·장애인·여성·청소년 등 대상별 접근의 한 형태로 취급되고 있다. 여성·가족 문제는 후기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위기의 근원지이자 해결점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가족의 위기, 돌봄의 부재, 고용 불안정에 따른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의 위기 등에 대한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재생산의 위기가 생산의 위기’라는 차원에서, ‘젠더 레짐’이라는 큰 틀로 접근해야 한다.

 환경·에너지 정책 역시 환경부 관련 정책 차원이 아니라 ‘지속가능발전’이라는 프레임으로 다뤄져야 한다. 현 정부 실정에 대한 비판을 넘어, 대안을 만들어 낼 역량을 야당들이 갖추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사회 ‘녹색성장’과 ‘지속가능발전’은 무엇이 다른가?

 녹색성장은 지속가능발전이 중시하는 ‘사회적 형평성’을 배제하고, 생태가치를 사업 대상으로 삼아 그린 비즈니스화한 것이다. 성장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 국내총생산(GDP)의 양적 확대에만 초점을 맞춘다. 4대강 사업이 대표적이다. 에너지를 그린 비즈니스화하면서 대기업 중심 공급구조를 확대하고 있다. 원전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토건 마피아’ 구조에 놓여 있다. 지속가능발전은 경제활동 과정이 사회와 생태에 미치는 영향, 창출된 부의 구성과 분배를 염두에 두는 것이다. 국내총생산만이 아니라 경제·사회·환경 영역을 대표하는 지표들 77개로 사회발전을 평가한다. 체중이 아니라 건강이 중요하다.

사회 지속가능발전을 자신의 가치로 내세우는 정치세력은 없어 보인다.

 ‘성장’과 ‘발전’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1960~70년대 이래 한국은 성장을 담보로 한 발전국가였고, 관료적·권위주의적 발전이라는 인식과 용어가 널리 퍼져 있다. 개념적 구분으로 정치적 효과를 내기 쉽지 않다. 복지국가 담론이 훨씬 유용하다. 물론 지속가능하고, 성평등한 복지국가여야 한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복지국가 담론은 답답한 측면이 있다. 지난 6·2 지방선거와 이번 총선을 거치며 토건적 성장 공약은 많이 사라졌다. 담론의 공백이 생겼고, 발전 담론이 이를 채울 수 있다. 그런데 복지국가 담론에서는 토건을 비롯한 경제운영 과정에 대한 인식이 불명확하다. ‘경제민주화’가 복지국가 논의에서 빠져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복지국가 담론에서는 생태 위기에 따른 공동체 와해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김은경 대표

영·프, 통합부처 만들어서
환경 등 정책 통일성 높여
4대강 등 ‘녹색성장’ 사업은
사회적 형평성 뺀 양적 확대

사회 복지국가의 의미와 쟁점을 여성·가족 정책의 관점에서 논한다면?

 케인스주의적 복지국가는 여성과 가족이 돌봄과 사회적 재생산을 담당하는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을 기본으로 한다. 그런데 노동력 부족이라는 사회경제적 조건과 성평등 가치의 결합으로 ‘2인 소득자 모델’이 필요하게 되었고, 스웨덴은 1934년부터 이런 기조로의 정책 변화를 시작했다. ‘탈상품화’를 기준으로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를 가장 진전된 모델로 설명했던 에스핑 안데르센은, 보육과 요양 등 돌봄을 가족 밖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탈가족화’를 추가한 새로운 모델을 최근 구성했다. 현재 한국은 어느 쪽도 아닌 상태다. 80%에 이르는 스웨덴·노르웨이의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과 달리, 한국은 50%가 되지 않는다. 모든 성인이 소득자적 지위를 갖지 못할 때 탈상품화와 탈가족화는 작동하기 어렵다. 복지국가 논의의 핵심에 여성과 가족에 대한 정책과 철학이 담겨야 한다.

 그 지점에서 한계를 느낀다. 기존 산업생산구조가 존치될 것을 전제로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원부족과 오염, 기후변화와 석유고갈을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최근 복지국가 논의는 환경과 생태, 가족과 공동체의 공존·공생·공영을 추구하고 있다. 오히려 환경과 생태에 대한 강조가 성별 분업의 고착화를 낳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숙진 소장

복지국가 논의 핵심에
여성·가족 정책 담겨야
일-가정·일-생활 균형 도울
정치 공동체 건설 고민을

사회 지속가능발전이나 복지국가 모두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을 중요하게 다룬다.

 북유럽 국가만이 아니라 독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70년대 오일 쇼크 이래 재생에너지에 주목해왔고 관련 분야 최고 기술을 거의 다 가지고 있다. 순환이라는 생태적 원칙을 받아들여 산업을 전환하고, 가정과 동네에 새로운 수입과 일자리를 늘렸다. 유럽 국가들은 개별 국가와 유럽연합 차원의 지속가능발전 지표를 개발해 평가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환경부를 없애고 지속가능발전 통합 부처를 만드는 예도 늘고 있다. 영국은 에너지·식품·농업을 묶었고, 프랑스는 생태·에너지·교통을 통합했다. 독일은 ‘녹색 내각’을 구성해 정책의 통일성을 높이고 있다.

 유럽 여성들은 시민권적 자유를 충분히 확보한 상태다. 이들은 ‘기회의 평등’을 넘어 ‘조건과 결과의 평등’을 얘기하는 단계에 들어서 있다. 그래서 기존 성차별 금지법을, 더 넓은 다양성을 반영하여 장애와 성별을 통합한 차별금지법으로 바꾸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여성·가족 등의 젠더 정책이 빈부격차와 사회불평등 해소의 핵심이라는 논의가 활발하다. 스웨덴의 경우 성평등이야말로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으로 간주되며, 일-가정 양립, 일-생활 균형을 통해 이를 실현하려 하고 있다. 독일의 여성·가족 정책은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하다. 가정 내 모성 강화, 여성의 가정주부화를 위한 정책이 선호된다. 최근 한국은 보육이나 노인요양 등 사회서비스가 확대되면서 어떤 유형의 복지국가를 선택할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

사회 환경과 여성, 복지국가의 고차방정식을 풀기 위해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

김 ‘가치에 대한 동의’이다. 정의, 안전, 삶의 질, 온정, 평화 등이 최우선의 가치이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원칙과 기준을 따져 정책이 집행되도록 해야 한다. 지속가능성 평가는 유용한 정책 환류 도구가 된다. 지속가능발전 이행계획을 통한 수평적 논의 구조와 각 부처들의 정책을 통합·조정하는 시스템이 요구된다.

 가치를 정하고 동의를 이끌어 내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공공성·안전성·다양성이 중요하다. 이에 부합하는 정책과 제도가 설계되어 있는지 살피고, 행정 부처의 구조 변경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여러 부처들에 가치가 잘 전파되고, 실제 정책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지속가능성 평가처럼 성별영향평가는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를 통합·조정·심의하며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정치 공동체의 건설이다. 총선 이후 그런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더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정리 홍일표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iphong1732@hani.co.kr


새누리, 원전정책 그대로…4대강 평가 공약 없어
야당, 재생에너지 생산 확대…육아휴직급여 늘려

두 토론자가 본 정당별 주요 정책

총선이 다가오자 선거에 대한 관심이 정책보다는 유명인의 당락 같은 ‘정치 게임’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 선거는 앞으로 4년 이상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행사다. 특히 환경이나 여성·가족같이 생활과 밀접한 정책은 한번쯤 짚어보고 투표장에 가는 것이 좋겠다. 두 토론자로부터 각각의 정책에 대한 평가를 받아 정리했다.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환경 정책 원전에 대해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녹색당 등 야당들은 ‘새로운 원전 건설의 중단과 수명이 다한 원전의 폐쇄’란 큰 방향에 동의한다. 그 대안으로 재생에너지 생산 확대를 제시하고 있다. 반면 새누리당은 ‘신재생·원자력 등 청정에너지 보급 확대 및 에너지 절약’이라는 현 정부의 ‘녹색성장’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원전 중심의 전력 정책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4대강 사업에 대해 야당들은 감사 및 청문회 등을 통해 청산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4대강 주변의 개발사업과 지천으로 확대되는 정비사업 역시 중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자연 상태로 최대한 되돌린다’는 목표는 공유하고 있다. 이와 달리 새누리당은 4대강 사업에 대한 평가나 관련 조처를 공약으로 내놓지 않았다. 대신 ‘훼손된 자연하천 50개 복원’, ‘생태우수지역 50곳 복원’, ‘생태공원 50곳 조성’, ‘생태 탐방로 조성’ 등 ‘녹색’으로 채색된 개발 공약을 제시해 ‘토건국가’의 방향은 변함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주해군기지는 야당들은 전반적으로 재검토 또는 중단 방침을 밝히는 반면, 새누리당은 야당의 ‘말 바꾸기’를 공박하며 강행할 의지를 비치고 있다.

여성·가족 정책 새누리당의 정책은 가족 안에서 남성을 부양자, 여성을 양육자로 보는 전통적인 성역할과 가족관계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방향이다. 여성을 엄마이자 양육자로 한정짓는다. 따라서 이들의 고용과 일자리에 대한 정책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보육정책도 ‘국가 양육자’보다는 ‘시장 양육자’의 역할을 강조해, 공공성 확대가 아니라 사립 보육시설의 시설 개선비 지원 등 시장성 강화에 초점을 둔다.

반면 야당들은 수준은 다르지만 여성이 소득자임을 인정하고, 여성고용률을 높여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여성 일자리 만들기는 주로 (돌봄) 서비스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밖에 가사노동자의 근로자성 인정, 여성·청년 고용할당제, 노동시간 단축 등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새누리당과 달리 여성의 일-생활 균형을 위한 정책들도 제시하고 있는데, 산전후 휴가기간 연장, 육아휴직급여 확대, 돌봄휴가 신설 등이 그것이다.

가족 정책에 관한 한 새누리당은 새로운 정책 비전이 없다. 한부모·조손가족에게 아동양육비 5만원을 10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것이 전부다. 야당은 편차가 큰데, 민주통합당은 현재 가족 정책의 기본틀을 건드리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가족 정책의 기둥이 되는 건강가정기본법(사실혼 불인정 등의 내용)에 대해 입장 표명이 없다. 통합진보당·진보신당·녹색당은 건강가정기본법 폐지, 동반자법 제정 혹은 인정, 성소수자와 성전환자 관련 정책 제시 등 이성애 부부로 이뤄진 정상가족의 틀을 벗어나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가족 정책을 제안한다.

정리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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