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코로나19 감염자 6천명 선 돌파
노인·장애인 등 취약계층 피해 커

비위생적이고 채광·환기도 안되는
열악한 민간 수용시설 환경 ‘숙주’
실당 수용인원 제한 기준 만들고
공공의료체계 확충·탈시설 논의를

긴급대응에 밀려난 주변주 취약층
방치 막아줄 지역돌봄 체계 필요
종류별 취약계층 지원방안 포함한
재단 대처 상세 매뉴얼 구축해야
“코로나20, 21 또 찾아올 수밖에…
단단한 사회안전망 구축 계기돼야”

경북 청도 대남병원 정신병동에 파견됐던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가 찍어 언론에 지난달 26일 공개한 병동 내부 모습.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제공
경북 청도 대남병원 정신병동에 파견됐던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가 찍어 언론에 지난달 26일 공개한 병동 내부 모습.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제공

“이번 감염병 유행에서 기억해야 할 다른 장면이 있다. 바이러스는 우리 몸과 사회의 가장 약한 부분을 먼저 찾아간다. 3월4일 오전 현재 사망자 32명 중 7명이 폐쇄병동의 환자였고, 나머지도 대부분 가난하고 병든 외로운 노인이었다.”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가 최근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나쁜 바이러스는 없다)의 한 대목이다. 실제 장애인·노인·아동이나 빈곤층 등 취약계층은 재난이 발생하면 보통 사람들보다 더 어렵고 곤란한 상황에 부닥친다. 재난의 종류와 상관없고, 동서고금의 사례가 다르지 않다. 1995년 일본 한신대지진 때에도 저소득층 밀집지역으로 재일교포와 유학생 등도 많이 거주하던 고베시 나가타구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와 부상자가 나왔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다. 감염·사망자 가운데 취약계층 비중이 높을뿐더러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각종 돌봄·일자리사업 등이 중단돼 취약계층 다수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누구나 아는 불편한 진실인 ‘재난 앞에 더 취약한 취약계층’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위험의 불평등한 재분배’의 실태와 이를 완화할 방안들을 검토해봤다.


■ 다인 생활시설에 집중된 피해자들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생활에 위협을 받게 된 취약계층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바이러스 공격에 대응력이 떨어져 직접적 감염 위험에 노출된 건강약자들과 각종 사회복지 관련 프로그램 가동이 중단되면서 방치 위기에 놓이게 된 취약계층 일반이다. 물론 재난의 직접적 피해자인 전자의 경우가 더욱 시급하고 심각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집단 수용시설에서의 집단 감염이라는 ‘한국적 현상’이 눈길을 끈다.


“문제의 알파요, 오메가는 다인 시설이다. 장기요양은 4인 1실이 기준이지만, 일반 노인·장애인·아동들이 먹고 자는 다인 생활시설은 기준이 없고 장애인이 최근 ‘1실 6인 이내로 맞추도록 노력한다’ 정도가 생겼을 뿐이다. 인권이나 삶의 질을 고려해 선진국들처럼 1인 1실 체제로 가야 하는데, (코로나19 유행을 겪은 만큼) 이제는 건강과 생존을 위해서라도 1인 1실 또는 2인 1실 체제로 바꿔나가야 한다.”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지적이다. 실제 입원환자 100여명 거의 전원이 확진 판정을 받고 7명이 사망한 경북 청도 대남병원의 실상은 국민에게 충격을 줬다. 5층 폐쇄병동 수용자들은 침대가 아닌 방바닥에 매트리스를 펴고 생활했는데, 매트리스는 성인이 누우면 다리가 삐져나올 정도로 작았고 매트리스 사이 폭도 한두뼘에 불과했다. 코로나19 국내 첫 사망자는 이런 환경에서 20년 넘게 생활하던 수용자였다.


국가인권위도 대남병원과 칠곡 밀알사랑의집에서 발생한 장애인 집단 감염과 관련해 지난 3일 “과도한 장기입원과 건강관리 소홀, 채광과 환기가 원활하지 않은 시설환경, 적절한 운동시설의 부족” 등 문제점을 지적했다. 열악한 거주환경이 바이러스 확산의 ‘숙주’ 구실을 한 셈이다.


양 교수는 수용자 인권침해와 학대로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던 중증장애인·치매노인 수용시설인 대구희망원에서의 인터뷰 경험도 얘기했다. “연령대나 장애 종류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10여명씩 한방에서 생활하도록 해 수용자들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직원들이 퇴근한 뒤에는 자기들끼리 서열을 정하고 싸우느라 무법천지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비용 문제가 있겠지만, 제대로 된 방향으로 변해가도록 우리 사회가 컨센서스(합의)를 모으기 시작할 때”라고 덧붙였다.



장애인 등을 집단거주시설에 함께 모여 지내도록 하는 ‘시설 체제’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자립생활을 할 수 없고, 가족들도 생활을 책임지지 못해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은 3만명가량으로 추산된다. 2008년 정부가 비준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서는 장애인 자립생활 및 지역사회 동참 등 권리를 규정하고 있고,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14년 한국 정부에 ‘탈시설 전략수립’ 등을 권고한 바 있다. 장애인을 시설에 장기수용하는 대신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들과 더불어 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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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의료 공공성 강화도 중요

불가피하게 시설 수용을 해야 하는 경우는 공공성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집단 감염이 발생하는 시설들은 대개 공공성이 약하고 지역사회가 개입할 여지가 적어 문제를 키운 경우였다는 것이다.


실제 코로나19 확산 기폭제 구실을 한 청도 대남병원, 지난달 말 20여명이 집단 감염된 경북 칠곡 장애인시설 밀알사랑의집은 민간 운영 기관들이다. 지난 4일 직원과 수용 장애인 등 9명 연쇄 감염이 확인된 대구 북구 장애인 거주시설 성보재활원도 마찬가지다. 5일에는 경북 봉화 노인의료복지시설 푸른요양원에서 49명 확진자가 나왔다.


반면 지난달 25일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치료시설인 서울재활병원(은평구 구산동)에서도 작업치료사가 확진 판정을 받아 기관 폐쇄 조치가 이뤄졌지만, 추가 감염자는 나오지 않았다. 김창보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대표이사는 “사실 서울시에서 긴장했었는데, 다행히 추가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 알아보니, 1월 말부터 직원들 건강상태 점검과 환자 발생 시 행동요령 숙지 등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여러 활동을 해왔더라”고 말했다. 매뉴얼화된 민주적이고 투명한 기관 운영만으로도 감염 확산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밀집 생활을 하면서도 손 소독제 하나 배치해두지 않았던 청도 대남병원 등 사례와 대조되는 대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각종 복지관과 아동센터 등이 문을 닫으면서, 평소 이들 기관을 이용하던 취약계층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방치 가능성이 있는 어린이, 노인 등을 조사하고 도울 수 있는 지역돌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사진은 지난해 7월 급식이 중단된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 급식실. &lt;한겨레&gt; 자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각종 복지관과 아동센터 등이 문을 닫으면서, 평소 이들 기관을 이용하던 취약계층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방치 가능성이 있는 어린이, 노인 등을 조사하고 도울 수 있는 지역돌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사진은 지난해 7월 급식이 중단된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 급식실. <한겨레> 자료

■ ‘밀려난 환자들’ 돌보는 매뉴얼을

“정부 대응이 메르스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나아진 게 사실이다. 위험 소통 프로세스가 확립됐고, 선별진료-진단-치료, 접촉자 조사-격리 등의 절차도 비교적 매끄럽게 진행됐다.”(시민건강센터 김명희 선임연구원)


치사율이나 확산 정도 등 차이가 있지만,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 경험은 정부 방역체계 운영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대목도 적지 않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으로 시 방역대책을 총괄했던 김창보 대표이사는 “당시 국립중앙의료원 등 공공의료기관들이 제일 먼저 동원돼 기존에 치료 중이던 장애인과 결핵, 에이즈 환자 등을 다 내보냈다. 당시 일부는 다른 병원으로 옮겨갔지만 일부는 퇴원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번에도 공공의료 자원이 제일 먼저 동원되면서 같은 상황이 반복된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시급한 상황에 대처하느라 중요도에서 밀린 또다른 사회적 약자들이 반복 양산됐다는 얘기다. 그는 “비상 상황에서 공공의료 자원이 가장 먼저 동원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나라는 공공의료 자원이 양적으로 너무 부족해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만큼 (장기적으로) 공공의료체계를 확충해야 한다. 또 단기적으로는 관심·경계·주의·심각 등 위기대응 4단계 구분 기준을 명확히 하고, 단계별로 어떤 자원을 얼마나 동원하고 취약계층 대책은 어떻게 할지 등을 담은 상세한 계획을 세워둬야 한다”고 말했다.


백재중 녹색병원 호흡기내과 과장도 “폐쇄적이고 집단화된 시설은 전염병 위험에 취약하고 (청도 대남병원의 경우처럼) 문제가 발생하면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게 된다. 이때 이송되는 장애인들은 혼자 지낼 수 없는 만큼 지원 인력이나 물자가 추가로 필요할 수밖에 없다”며 “이런 (장애인 등의) 특성을 고려한 방역체계 수립이나 매뉴얼 작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꼼꼼한 매뉴얼 작업을 통해 방역 역량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취약계층 보호 대책도 함께 강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태가 진정된 뒤에도 ‘눈에 보이지 않게’ 오래 남을 수 있는 트라우마와 스트레스 등 정신건강 관리의 중요성도 지적된다. 2014년 보건사회연구원은 ‘재난 발생 시 취약계층 사회보장 대책’ 보고서에서 △개인·가구 단위 소득지원과 사회서비스 확대 △사회보험료 감면 때 수급요건 완화와 수급기간 확대 등과 더불어 △아동·장애인·노인 등 대상 정신건강과 심리지원 서비스 확충 △재난 발생 시 정신건강 지원 컨트롤타워 구축 △정신건강 지원을 위한 전문인력 확충 등을 정부에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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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곽 취약계층들 챙기기…지역사회 노력 결합을


재난 대처 과정에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쉬운 취약계층 보호와 관련해서는 지역사회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컸다.


백재중 과장은 “중국에서는 보호자가 확진 판정을 받고 입원하면서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이 집에 방치돼 숨지는 일이 일어났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정부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는 만큼, 이런 경우에는 지역사회 단체들이 돌봄공백을 막도록 하는 커뮤니티케어(지역돌봄) 시스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방문 서비스를 받는 장기요양 등급을 받거나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대상과 달리, 그보다 상황이 나아 본인이 직접 복지관 등을 찾아 프로그램을 이용하던 이들이 사각지대에 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혼자 지내는 경우 필요한 물자 등을 제대로 조달받고 있는지 확인이 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전국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대구에서는 최근 대구사회서비스원과 대구시사회복지사협회가 공동으로 긴급돌봄 지원자 모집에 나섰다고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쉬게 된 복지관이나 지역아동센터 등 근무 인력들을 뽑아, 긴급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돕도록 조치한 것이다.


백 과장은 “스스로 고립돼 전염병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라는 게 ‘사회적 거리두기’인데, 누군가에게는 그 고립이 위기 봉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기본적으로는 ‘거리두기’를 하면서도 사회적 약자들과는 ‘사회적 연대’도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전 을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도 “일상적 돌봄이 필요한 계층이 가정에서 방임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필요하면 제한적으로나마 다시 여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상임연구원은 아울러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이주민은 지방자치단체·노동청을 통한 소통 채널 구축 △사업장에서 안전보건 차별 조치 가능성이 있는 비정규직·불안정노동층은 노동청의 차별행위 단속 의지 공언 △결핵·에이즈 등 특수질환자는 전원·퇴원 때 전문기관 자문 필수화 등 취약계층 유형별로 맞춤형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유행 사태는 평소 간과하고 있던 한국사회의 여러 민낯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한국은 이번 위기를 계기로 재난 대비와 취약계층 돌봄 시스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을까. 사진은 지난달 21일 경북 청도 대남병원 앞에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는 모습. &lt;한겨레&gt; 자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유행 사태는 평소 간과하고 있던 한국사회의 여러 민낯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한국은 이번 위기를 계기로 재난 대비와 취약계층 돌봄 시스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을까. 사진은 지난달 21일 경북 청도 대남병원 앞에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는 모습. <한겨레> 자료

전례없는 코로나19 유행은 평소 모두가 소홀히 생각했던 한국사회의 여러 민낯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소를 잃은 뒤에라도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려는 노력이나 자세 아닐까. 신영전 교수는 “상처가 드러나면 치료하면 된다. 이번에 드러난 문제점들을 살펴, 단단한 사회안전망을 만드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드는 게 중요하며 “앞으로 코로나20, 21이 계속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명희 상임연구원은 “어느 정도 (긴급한 상황이) 지나간 뒤 시민사회의 다양한 당사자들이 모여 전염병 유행 대응과 준비 과정 등을 평가하고, 이러한 내용이 정부의 다음 계획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순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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