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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WTO 사무총장 도전했던 유명희 경제통상대사

유명희 전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15일 법무법인 삼양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춘재 선임기자
유명희 전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15일 법무법인 삼양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춘재 선임기자

유명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020년 여름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에 도전한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았다. 현 사무총장인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나이지리아 전 재무장관은 아프리카 회원국 44개 나라와 유럽연합 소속 여러 회원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유 전 본부장을 공개 지지했지만, 세계무역기구는 유엔처럼 분담금을 많이 내는 나라의 입김이 세지 않다. 164개 회원국이 동등하게 한 표를 행사한다. 비록 사무총장에 선출되지는 못했지만 그의 도전은 해외 통상 전문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한국이 자유무역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뤄낸 과정에 많은 이들이 공감을 나타냈다.

지난 15일 만난 유 전 본부장은 “지난해 8월 공직을 떠날 때 협상 파트너였던 해외 통상 관료들이 이메일을 보내 격려를 많이 해줬다”며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 출마는 내게 큰 자산이 될 것 같다. 많은 후배가 도전에 나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후배들을 키우기 위해 3월부터 대학 강단에 선다.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신통상 이슈와 대응’ 주제로 강의한다. 통상 분야에서 30년 동안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기업들과 공유하기 위해 최근 국내 작은 로펌(법무법인 삼양)에 둥지를 틀었다. 그는 정부의 경제통상 분야 외교 활동을 지원하는 경제통상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통상 분야에서만 30년간 공직 생활을 했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행정고시(35기) 합격 후 1994년 통상산업부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작년에 퇴직할 때까지 한우물만 판 셈이다(웃음). 2006년 한-미 에프티에이(FTA) 첫 협상 때 과장급이었고, 2018년 재협상 때는 수석 대표로 참가했다. 국제 통상은 한우물을 파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해외 협상에 나가보면 수십년 동안 쌓은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들이 즐비하다. 이들은 협상 파트너로서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까다로운 협상도 원만하게 진행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대학 강의도 한우물 파는 인재를 키우려는 바람인가?

“그렇다. 특히 여성 후배들을 좀 키우고 싶다. 국내 통상 분야는 과거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30년 전 해외 협상 테이블에 나가보면 다른 나라들은 여성 인력들이 매우 많았다. 유독 한국과 일본만 죄다 검은색 양복 차림의 남자들이었다. 내가 유일한 여성이었다. 그때 ‘언젠가 공직을 그만두게 되면 여성 후배들을 키우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11월 미 무역대표부 캐서린 타이 대표가 방한했을 때 ‘한국 여성 인재들과 대화를 해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마침 내가 통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후배들과 몇해 전부터 사적인 공부 모임을 해오고 있었다. 그래서 타이 대표 쪽에 모임을 소개했더니 너무 좋아하더라. 애초 1시간 예정된 대화가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타이 대표는 다른 일정을 미루면서까지 더 대화하고 싶어했다. 나와 후배들에게 아주 유익한 자리였다. 앞으로 이런 기회를 더 많이 만들고 싶다.”

“미 탄소 규제엔 중국 견제 노림수
미·중 무역 갈등 본질은 ‘패권 다툼’
편들기보다 핵심기술 확보 중요”

통상 분야만 30년 공직 생활
2년 전 ‘WTO 사무총장’ 도전
내달부터 대학서 ‘통상이슈’ 강의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이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탄소중립은 앞으로 새로운 무역장벽이 될 것 같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우리나라와 같은 수출 중심 국가엔 큰 리스크가 될 것이다. 지난해 7월 프란스 티머만 유럽연합 환경담당 집행위원이 방한했을 때 이런 말을 했다. 자기가 유럽 재계에서 가장 인기가 없는 정치인이라고. 탄소배출 규제로 유럽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에너지 가격이 급등해서 유럽에서도 산업계를 중심으로 탄소중립에 대한 저항이 크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렵게 탄소중립 경제체제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에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이 도입하고자 하는 탄소국경조정세 등은 앞으로 새로운 무역장벽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도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탄소중립 관련 규제를 강화하려고 한다. ‘중국의 더러운 철강을 못 들어오게 하겠다’는 바이든 미 대통령의 발언이 이를 잘 보여준다. 미국은 탄소중립으로 ‘1타3피’ 효과를 노린다. 철강 등 미국 내 주요 기간산업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국제적 노력에 공조하는 이미지 제고 효과가 있다. 또 철강 등은 선거 때 경합 지역인 ‘스윙 스테이트’의 주요 산업이기 때문에 이곳의 여론을 우호적으로 만드는 효과도 있다. 미국과 유럽이 탄소중립으로 산업구조를 바꾸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대응하지 못하는 나라들은 새로운 무역장벽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미·중 무역 갈등은 언제까지 갈 것 같나?

“앞으로 상당 기간 간다고 봐야 한다. 이건 단순한 무역 분쟁이 아니라 차세대 패권 경쟁이다. 미국 학계에서 최근 나오는 보고서를 보면 이대로 가다간 5G와 양자컴퓨터,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이 앞서게 된다는 전망이 많다. 이런 기술은 언제든지 군사기술로 쓰일 수 있다. 첨단기술을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 패권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계심이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미국의 첨단기술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시도는 상당 기간 오래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미국과 중국 어느 편에 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핵심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우리가 차세대 기술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면 미국과 중국 어느 나라도 우리를 무시하거나 배제할 수 없다. 반도체 기술 경쟁력이 있으니까 바이든 대통령이 우리 기업을 찾은 것처럼 말이다. 동시에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 즉 시장경제·자유무역·개방경제·공정한 무역 등의 가치를 확실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은 세계무역기구 같은 다자간 무역규범에 없는 규제가 등장하는 시대다. 경제적 요인 외에 환경, 노동, 인권 그리고 지정학적 안보 등 비경제적 요인으로 생기는 규제가 나라별로 발생한다. 이런 리스크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cjlee@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0318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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