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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아시아미래포럼]
대니얼 지블랫 교수 기조강연: 공적 신뢰 어떻게 회복할까
대니얼 지블랫 제공
대니얼 지블랫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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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은 정치를 통해 공익을 실현하고 시민과 권력을 잇게 하는 집단으로, 전통적으로 믿을 수 있는 기관이었다. 하지만 지금 정당에 대한 신뢰는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정당은 민주주의 발전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기 때문에 신뢰 붕괴의 위기를 그대로 방치해둘 수는 없다. 어떻게 해야 정당의 신뢰는 회복될 수 있을까. 과연 정당의 신뢰 회복은 가능한 것일까.


트럼프 시대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분석한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공동 저자인 대니얼 지블랫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당이 ‘상호관용’과 ‘이해’, 그리고 ‘자제’라는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을 지켜야 신뢰를 회복하고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당이 상대방을 정당한 경쟁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위협적인 적으로 간주하면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진다는 것이다. 지블랫 교수는 현대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연구의 권위자다. <보수 정당들과 민주주의의 탄생>으로 2017년 미국 정치학회가 주는 우드로 윌슨 상 등을 수상했다. 제13회 아시아미래포럼에 기조연사로 직접 무대에 오르는 지블랫 교수를 전자우편 인터뷰를 통해 미리 만났다. 질문과 답변은 각각 9월5일과 10월3일 주고받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치인들, 지지자들 입맛 맞춰
라이벌 매도·공격 지나친 몰두

민주주의에 법치주의 필수지만
이해·자제 등 법치 밖의 규범들도
사회·국가 유지에 중요한 역할

- 정치인들이 상호관용, 이해, 자제와 같은 민주주의의 규범을 쉽게 무시하게 되는 이유는?

“현대 사회는 다양하고 복잡하며 다면적이다. 그 결과 시민들이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분야에서 무엇이 옳고 도덕적인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두고 충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견해가 옳고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정치인들이 지나치게 지지자들이 원하는 쪽으로만 반응한다는 것이다. 지지자들을 위해 정치적 라이벌을 매도하고 공격한다. 관용과 자제와 같은 민주적 규범을 발전시킨 것은 19세기 정치인들이었다. 정치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자세가 바탕이 됐다. 하지만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은 깨지기 쉽다. 사회가 양극화됨에 따라 더이상 학습되지 않고 점점 더 심하게 망가졌다. 중요한 정치적 이슈에 대한 정당들의 견해차가 확대되면서 정당은 상대방에 점점더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 정당이 상대 정당에 대해 위협을 느끼면 민주적 규범들을 지키기가 어려워진다.”

- 정치적 극단주의자들을 걸러내기 위한 정당의 역할을 강조했는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중이 합리적 정치인보다 극단주의자를 더 지지하는 이유는?

“극단주의자나 대중선동가는 (민주주의 기원인) 고대 그리스에서도 심각한 문제였다. 이들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대중이 원하는 말만 무책임하게 해댔다. 대중은 그들에게 환호했다. 그만큼 민주주의는 내재적으로 취약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정당들은 이러한 대중선동가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정당들이 부패하기 시작하면서 대중선동가들에게 권력의 문을 열어줬다.”

- 민주주의가 헌법과 같은 성문화된 법보다 상호관용과 같은 규범에 더 영향을 받았다면, 법치주의는 민주주의와 충돌할 위험이 있나?

“헌법과 성문법은 의심할 여지없이 민주주의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모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법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문화되지 않은 규칙들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러한 규칙들은 가족, 학교, 회사가 어떻게 유지되고, 나아가 사회와 국가가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관한 것들이다. 여기서 핵심은 성문화되지 않은 규칙들이 법(제도)이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 아니면 방해가 되느냐 여부다. 예를 들어 상호관용은 다원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 반면 태생적으로 남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인종주의나 성차별은 정치적 평등을 해치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방해가 된다.”

- 미국 민주당에 ‘정체성 정치’(개인의 정치적 견해는 인종, 민족, 종교, 성의 등 정체성을 기준으로 형성된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 정치)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는데, 집권하려면 소수자 집단이 아닌 중도로 확장하는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에 대한 미국 민주당 안의 논쟁을 일종의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상대의 주장을 왜곡해 전혀 다른 허수아비를 정해놓고 그것을 공격하는 잘못)라고 생각한다. 내가 강조하는 정체성 정치는 전통적 자유주의에 근거를 둔다. 모든 개인은 젠더나 인종, 종교에 관계없이 선거권을 비롯한 국가가 보장하는 권리를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없다. 만약 소수민족이나 종교적 소수자가 그야말로 소수라면, 정치인이 이들의 정치적 평등에 무관심한 것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처럼 유색인종 유권자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을 무시하는 것은 정치적인 자살행위다.”

- 미 연방대법원이 지난 여름 ‘낙태 판결’로 미국 사회를 분열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 연방대법원은 과거(특히 1970년대)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가장 훌륭한 모델 중 하나였는데, 왜 이렇게 됐나?

“전통적으로 미 연방대법원은 여론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왔다. 대법관이 선출되는 과정은 법적으로 동일하게 유지돼 왔지만, 내용적으로는 많이 변했다. 특히 2016년 대선에서 최다득표를 못했는데도 대통령이 된 트럼프가 3명의 대법관을 임명했는데, 이들의 인준 여부를 결정하는 상원도 유권자의 견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그 결과 연방대법원은 미국의 다수 여론을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가 됐다. 만약 최다특표자가 대통령이 되는 제도였다면, 대법원 구성은 지금과 매우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요점은 미국의 ‘반다수주의 헌법’(anti-majoritarian constitution)이 대법원을 여론과 동떨어지게 구성되도록 했고, 대법원의 정당성을 해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 11월 미국 중간선거가 끝난 뒤 미국 정치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가?

“역사적으로 중간선거는 대통령을 배출하지 않은 정당이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되면(공화당이 승리하면), 미국 정치는 극단적인 싸움판이 될 우려가 있다. 바이든에 대한 탄핵도 시도될 것 같다. 안타깝게도 미국 정치에서 탄핵은 일상적인 사건이 돼버렸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cjlee@hani.co.kr

*대니얼 지블랫
· 1972년생 미국 국적
· UC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
·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 2017년 우드로윌슨상 수상

한겨레에서 보기 :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662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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