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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초원에 전하는 ‘자립 노하우’

HERI 2011. 10. 21
조회수 9681
가난한 초원에 전하는 ‘자립 노하우’
[한겨레] 이재명 기자 기자블로그

지구촌나눔운동, 유목민에게 축산·농업기술 전수
현지인 리더십 양성 초점…“삶의 질 향상에 일조”

갓 돌이 지났을 법한 딸아이를 가슴에 안은 체랭돈도그(28)의 얼굴에 뿌듯한 미소가 번졌다. 한 달 뒤면 짓게 될 마을회관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그는 얼마전 구청으로부터 마을회관를 세우는 데 필요한 땅과 함께 480만 투그리크(500만원)를 지원받았다. 공사는 주민들이 직접 할 예정이다. “마을 사람들의 회의와 교육 장소로 활용할 겁니다. 공터엔 나무를 심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로 꾸밀 거예요. 앞으로 공동 미용실과 목욕탕도 지을 생각입니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북서쪽으로 60㎞ 떨어진 자르갈란트. 지난 1일 찾은 이곳엔 벌써 첫눈이 내렸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곳곳 야트막한 구릉들 사이로 한 무리의 집들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체랭돈도그가 마을회관을 짓기로 결심하고 재정지원을 요청한 건 올해 초다. 마을 청년 5명과 함께 지난겨울 지역개발교육센터가 운영한 주민지도자 양성과정에 참여한 게 직접적 계기였다. 일주일 동안 영농·축산 기술은 물론 위생, 지역개발의 중요성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합숙’을 통해 이웃마을 주민들과 지역개발, 소득 개선 등에 관해 밤늦은 시간까지 토론을 벌이는 과정 자체가 문화적 충격이었다. 공동체 생활과 교육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결책을 모색했던 경험이 그에게 소박하지만 변화를 꿈꾸고 이를 실천에 옮기게 하는 단초가 된 셈이다.


» 지난 1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북서쪽으로 60㎞ 떨어진 자르갈란트 지역의 초원 위에서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울란바토르/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행복의 땅’이란 뜻의 자르갈란트는 초원의 지독한 가난과 혹독한 자연환경을 피해 도시 진입을 꿈꾸는 이들의 정거장이자, 도시화와 산업화의 그늘로부터 한발짝 떨어진 반정착 유목민 마을이기도 하다.


좀더 나은 삶을 꿈꾸는 이곳 주민들에게 손을 내민 건 한국의 기업과 시민단체, 정부였다. 몽골은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빈곤율은 줄었지만 소득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 특히 유목민들은 잦은 기상이변까지 겹치면서 생계수단인 가축을 잃고 도시빈민으로 전락하거나 절대적 가난에 내몰리고 있는 처지다.


이곳에 도움의 손길을 내민 대표적인 국내 기업으로는 포스코가 있다. 포스코는 시민단체인 지구촌나눔운동, 국제협력재단(코이카)과 함께 지역개발교육센터를 운영하면서 유목민들이 홀로 서는 데 필요한 축산·농업 기술과 생활교육을 하고 있다. 주민공동체를 통해 스스로 빈곤 등 지역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디딤돌의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포스코는 지난해 11월 현지 교육센터 시설부터 새롭게 꾸몄다. 교육프로그램은 1970~80년대 한국 농촌개발의 동력이 됐던 새마을운동과 가나안농군학교를 참고했다. 자조·협동·개척정신의 중요성을 일깨우면서도 몽골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기울였다. 또 강사와 교관 대부분을 몽골인으로 선발해 한국인들이 떠난 뒤에도 홀로 설 수 있도록 현지인 리더십 양성에 초점을 뒀다. 친구이되 간섭하지 않고, 물고기가 아닌 물고기 잡는 법을 교육의 원칙으로 삼은 것이다.


» 한국을 방문한 몽골 연수생들이 지난 9월29일 오전 경북 영천 임고면의 한 블루베리 농장을 찾아 교육을 받은 뒤 농장을 둘러보고 있다. 영천/신소영 기자

지난달에는 경북 영천에 설립한 유기농 영농지원센터 ‘에코팜’에서 몽골 우수교육생 6명을 초청해 연수를 실시했다. 귀농을 희망하는 은퇴자들을 위한 시설과 프로그램을 활용해 한국의 농촌개발 노하우와 친환경 농업교육을 전달하는 교류에 나선 것이다. 지난달 30일 찾은 이곳에선 몽골 교육생들이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채소재배, 농기계 조작법과 블루베리 등 농산물가공·유통 과정을 배우느라 한창이었다. 몽골 농업진흥원 공무원인 세르쓰마는 “몽골에서 최근 채소 소비가 크게 늘고 있다”며 “여기에서 배운 농업 기술이 주민들의 수입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채소는 우유와 함께 자르갈란트 주민들의 주요한 소득원이다.


애초 자르갈란트에 터를 닦은 건 지구촌나눔운동이다. 1999년부터 3년여 동안 이어진 영하 52도의 혹한으로 가축의 30%가 희생된 직후 이 지역에서 가축은행과 사료은행을 시작했다. 주민들에게 젖소를 구입할 수 있는 자금을 대출해 스스로 생계수단을 마련하도록 도왔다. 파르티잔 마을의 어윤체체그 부동장은 “1800가구 중 407가구가 가축은행의 지원을 받았다”며 “주민들의 소득 향상은 물론 자립 기반을 마련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지구촌나눔운동은 가축은행의 성과를 바탕으로 지역개발을 위한 교육사업을 추진했다. 코이카는 재정 지원과 함께 몽골 정부가 각 지역정부와 연계해 교육생을 선발하고 강사를 제공하는 데 협조를 이끌어 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르갈란트의 교육사업은 몽골 안에서도 성공적인 유목민 자립 대책으로 호평받으면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김상일 포스코 사회공헌실 과장은 “몽골 주민지도자 양성교육은 기업과 시민단체, 공공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바람직한 협력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며 “더딜지라도 몽골 농촌사회의 변화와 함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몽골 자르갈란트, 경북 영천/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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