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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제로 묶여 있는 쇠고기•돼지고기• 닭고기, 경쟁 상대를 파악하라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미국산 쇠고기가 시중에 풀렸다. 유통업체들은 값도 싸고 맛도 좋다고 홍보하느라 야단법석이다. 그럼 이제 한우 생산업계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게 된 것일까?

그런데 처음 들려오는 뉴스가 흥미롭다. 미국산 쇠고기가 유통되면서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제품은 삼겹살이라는 이야기다. 한국산 돼지고기 값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며 떨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 미국산 쇠고기가 유통되면서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제품은 삼겹살이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대체재 관계이기 때문이다.(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한우보다 타격 큰 삼겹살

소비자는 쇠고기를 먹기 위해서 쇠고기를 사는 줄만 알았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먹는 사람들은 삼겹살이 좋아서 그 조합을 찾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저 고기를 찾고 있었다. 주머니 사정이 괜찮으면 쇠고기를 찾았고, 고기를 먹고 싶은데 사정이 조금 빠듯하면 삼겹살을 찾았던 것이다.
경제학의 돋보기를 들이대고 경제학의 용어로 설명하면,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대체재’(substitute goods)였다. 소비자는 쇠고기를 먹다가 쇠고기가 떨어지거나 물리거나 하면, 얼마든지 돼지고기로 바꾸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핵심은 하나다. 고기는 고기일 뿐, 쇠고기도 돼지고기도 없다. 쇠고기는 그저 비싸고 질 좋은 고기이고, 삼겹살은 그저 저렴하고 실속 있는 고기였을 뿐이다. 이게 값싼 미국산 쇠고기가 나오자 한국산 돼지고기가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된 이유다. 미국산 쇠고기와 삼겹살이 ‘저렴한 고기’ 시장의 직접 경쟁자가 된 것이다. 정작 걱정을 많이 했던 한우는 아직 ‘비싸고 질 좋은 고기’ 시장에서 홀로 유유자적할 수 있는 분위기다.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이 이야기는,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특수한 일은 아닌 모양이다.

최근 덴마크 코펜하겐대학의 릴 앤더슨 교수팀은 <저널 오브 푸드 디스트리뷰션 리서치>에 ‘덴마크 돼지고기, 닭고기, 쇠고기 시장에서의 경제동학 관계’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앤더슨 교수팀은 덴마크 시장에서 돼지고기와 닭고기, 쇠고기는 모두 대체재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앤더슨 교수팀은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의 가격이 크게 출렁거리는 시기에 각각 다른 제품의 가격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연구했다. 예를 들면 1995년 영국에서 광우병 파동이 일었을 때의 쇠고기 값 폭락, 2003년 조류독감 파동이 일었을 때의 닭고기값 폭락 등이 다른 고기류의 가격에 끼친 영향을 분석했다.

앤더슨 교수팀의 결론은 덴마크 소비자들은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모두 서로 대체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쇠고기 값의 상승은 돼지고기 값의 강한 상승과 닭고기 값의 약한 상승을 불러왔다. 또 돼지고기 값의 상승은 닭고기 값의 강한 상승과 쇠고기 값의 약한 상승을 가져왔다.

자, 그럼 이런 연구 결과의 전략적 의미를 축산 농가나 고기류 판매업자 처지에서 생각해보자. 텔레비전에서 “미국산 쇠고기에서 뼛조각 발견”이라는 뉴스가 나오면 시장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누가 긴장하고 누가 안도해야 하는 것일까?
우선 가장 긴장해야 할 사람은 돼지고기 생산자이고, 안도해야 할 사람은 쇠고기 생산자다. 미국산 쇠고기에서 뼛조각이 나왔다는 사실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의 가치는 떨어진다. 소비자가 느끼는 광우병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가치가 떨어진 미국산 쇠고기는, ‘비싸고 질 좋은’ 고기류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멀어지는 동시에, ‘저렴하고 실속 있는’ 고기류 시장에 상대적으로 가까워진다. 즉, 미국산 쇠고기와 삼겹살과의 경쟁관계가 더욱 강해지고, 한우와의 경쟁관계가 약해지는 것이다.

거꾸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입증하는 증거가 나온다면 어떨까? 그럼 한우 생산자들이 긴장하고 돼지고기 생산자들이 안도해야 할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성을 방패로 ‘비싸고 질 좋은’ 고기류 시장으로 들어가 한우와 정면승부를 벌이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소득 높아지면 한우 승승장구

미국산 쇠고기가 한국산 돼지고기와 경쟁 제품이라는 전제 아래, 경기가 좋아지고 소득이 높아지면 어떻게 될까? 소비자들이 소비 수준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저렴하고 실속 있는’ 고기류의 수요가 줄고, ‘비싸고 질 좋은’ 고기류의 수요가 늘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된다면 미국산 쇠고기와 한국산 돼지고기가 동시에 고전하게 되고, 홀로 ‘비싸고 질 좋은’ 고기류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한우는 승승장구하게 된다. 거꾸로 경기가 나빠져 소득이 줄면, 한우는 홀로 타격을 입게 된다. 미국산 쇠고기와 한국산 돼지고기는 소득 감소에 따른 전반적 소비 감소로 어려움을 겪겠지만, ‘비싸고 질 좋은’ 시장에서 주머니 사정 탓에 아래로 내려오는 새로운 수요를 잡아 그럭저럭 지낼 만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팔고 있는 제품이 무엇인지, 즉 누구에게 팔아야 하고 누구와 경쟁해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일은 경영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특히 새로운 제품이 시장에 등장했을 때, 그 제품이 누구의 경쟁 제품인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긴장해야 하는 사람은 삼겹살 생산자나 양계업자일지도 모른다.

한겨레21 2007/08/09 6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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