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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시간 내에 강한 인상을 주되 장밋빛 전망으로 현혹하지 말라

선장이 바뀔 때 선원들은 뒤숭숭해진다. 함께 끌고 가던 거대한 배가 가던 방향이 180도 바뀔 수도 있다. 키를 잡고 있던 선원이 객실로 보내질 수도 있다. 식당 메뉴가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선원들이 두려워하는 건 이 한마디다. “이제 당신은 필요 없으니 배에서 내리게나.”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 위에서 이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선원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 CEO가 바뀔 때 느끼는 불안은 직위가 높은 임원일수록 더 크다. 지난해 7월 열린 한 기업의 이사회.(사진/ 연합)

외부 CEO 취임 때 임원의 33% 교체

최고경영자(CEO)는 기업의 선장이다. CEO가 바뀔 때 임직원이 느끼는 불안도 선원의 불안과 같다. 세상은 정글이다. 기업 바깥의 시장에 나의 몫은 준비되어 있지 않다. 기업의 보호막에서 벗어나야 하는 임직원의 심정은 배에서 내리는 선원의 심정과 비슷하다. 직급이 높을수록 불안은 더 크다. 직급이 높은 임원은 선장의 지시를 받아 키를 잡고 있던 사람이다. 선장이 바뀌어 배를 지휘하는 스타일과 배의 항로가 바뀐다면, 가장 먼저 배에서 내리게 될 사람은 바로 이전 선장의 지시를 받아 키를 잡고 있던 사람이다.

물론 감에 따른 막연한 불안이다. 그런데 궁금했다. 과연 이들이 갖고 있는 불안은 근거가 있을까?
하버드 경영대학원 케빈 코인 교수 등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 5월호에 쓴 글에서 이런 불안의 근거를 밝혀냈다. 코인 교수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 1천대 기업의 임원 인사 이동을 조사했다. 그랬더니 선원들의 막연한 불안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CEO가 바뀌지 않은 기업의 경우 임원 중 16%가 그해 바뀌었다. 8.5%는 은퇴나 건강 등 자발적인 사유를 댔지만, 나머지 7.5%는 비자발적 교체였다. CEO가 바뀐 기업의 임원 교체 비율은 역시나 높았다. 이 비율은 외부 CEO 영입의 경우 더 올라갔다. 내부에서 승진해 새로운 CEO를 탄생시킨 기업의 경우 교체 비율이 22%로 올라갔다. 특히 비자발적 교체가 12.5%로 크게 올랐다. 외부에서 새로운 CEO를 영입한 기업의 경우, 전체 임원의 33%나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비자발적인 교체의 비율은 26%로 뛰었다.

배에서 내렸는지 여부도 관심사지만, 배에서 내린 뒤의 운명도 관심거리다. 더 큰 배로 옮겨 탔는지, 더 작은 배로 옮겨 탔는지, 갈 곳 없이 떠돌고 있는지…. 코인 교수는 이 궁금증도 풀어줬다.

교체된 임원의 4%만이 비슷한 규모 회사의 더 높은 자리나 더 큰 회사의 비슷한 자리로 옮긴 ‘승자’였다. 교체 임원의 28%는 비슷한 지위를 유지한 ‘수평 이동자’였다. 더 큰 회사의 낮은 자리로 옮기거나, 비슷한 회사의 비슷한 자리, 또는 작은 회사의 더 높은 자리로 옮긴 경우다. 교체 임원의 3%는 1천대 기업 중 더 작은 기업에서 비슷하거나 더 낮은 자리로 옮겼다. ‘후퇴자’의 경우다. 그리고 절대다수인 65%는 아주 작은 기업으로 옮기거나 아예 조사 레이더망 바깥으로 사라져버린 ‘탈락자’의 대열에 섰다.

그림은 분명해졌다. CEO가 바뀌면 임원이 교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외부에서 영입한 CEO일수록 이런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리고 교체된 임원이 더 좋은 자리로 옮겨갈 가능성은 4%밖에 되지 않는다. 자, 그럼 새로운 궁금증이 생긴다. 떠나야 하는 사람과 남아 있게 되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코인 교수는 CEO들을 인터뷰한 결과 발견한 몇 가지 비법을 공개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새로운 CEO가 부임한 뒤 빠른 시간 내에 강한 인상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이 인터뷰한 CEO들은 평균 60일 이내에 어떤 임원과 함께 팀을 이뤄 회사를 끌고 갈지를 결정했다. 부임 뒤 인사 결정을 천천히 하겠으니 불안해하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CEO조차도, 평균 60일 만에 모든 것을 결정했다. CEO가 처음 부임하면, 일단 그의 스타일을 파악하기 위해서 한동안 일을 벌이거나 부닥치지 말고 조용히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무엇보다 첫 며칠 동안의 인상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새로운 CEO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솔직담백한 태도와 겸손한 기획

사실 CEO는 외롭다. 대표이사 방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임직원이 먼저 다가와 어떻게 도울 수 있다고 말해주는 일은 거의 없다. 처음 부임한 회사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럴 때 누군가 먼저 다가와 “완벽하지는 않지만 힘 닿는 데까지 당신의 비전을 돕겠다”며 구체적인 아이디어 몇 가지를 제공한다면 매우 고마워할 수 있다.

새로운 CEO로부터 받을 것에 대해서보다는 도와줄 수 있는 점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하는 것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요령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임직원들이 새로운 CEO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전 CEO와의 관계에서 얼마나 홀대받았는지를 토로하며 더 좋은 대우를 직•간접적으로 요구한다고 한다. 새로운 CEO 입장에서 달가운 대화일 리 없다.

생존에 실패한 사례 중에는 지나치게 장밋빛 전망과 계획으로 새로운 CEO를 현혹시키려 했던 임원들도 발견됐다. 새로운 CEO는 새로 만난 조직에 대해서 경계심을 갖기 마련이다. 어차피 모두 ‘선수’들이라, 겉만 번지르르해 보이는 장밋빛 기획서는 정직하지 못하다는 인상만 주고 버려지기 쉽다. 오히려 솔직담백한 태도와 겸손한 기획이 새로운 CEO에게 더 깊은 신뢰를 줄 수 있다.

윗사람이 바뀌는 일은 큰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이다. 적응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 시간과 노력에 한 가지만 보태자. 윗사람 입장에서도 아랫사람이 바뀌는 일이 큰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려 노력해보는 것이다. 그 작은 차이가 인생 항로를 바꿀 수도 있다.

한겨레21 2007/05/17 6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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